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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건국 초기 사회적 엘리트층 실질적 ‘세습’ 정당화해”
“美, 건국 초기 사회적 엘리트층 실질적 ‘세습’ 정당화해”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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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제8회 한국서양사학회 전국학술대회 ‘서양의 엘리트 집단과 그 역할‘

‘선택된 사람들, 정예, 사회 중추’ 등을 뜻하는 ‘엘리트’라는 말처럼 많은 논난을 거친 단어도 흔치 않을 것이다. 대중과 대척점에 서 있는, 소수에 불과한 사회 계층에 대해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힘에 의해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국제정황이나 비판적 지식인들이 개혁 드라이브에 참여함으로써 형성된 국내의 ‘메인 스트림’ 교체론 속에는 엘리트에 대한 모종의 의심이 깃들어 있다.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 것일까, 사학계에서 ‘엘리트’를 주제로 들고나섰다. 지난 18일부터 이틀동안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양의 엘리트 집단과 그 역할: 역사적 조망과 전망’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근대적 엘리트 통합 고삐는 교양”

대회의 주제는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첫날은 ‘엘리트론’을 주제로 다소 광범위하게 접근했다면, 둘째날은 ‘역사 속의 엘리트와 그 역할’을 주제로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미국 등 서양 각국의 특정 시기에 등장한 엘리트의 형성과정을 짚었다. 이종경 이화여대 교수(사회생활학과)의 ‘초기 기독교의 엘리트 논쟁’, 김덕수 목원대 교수(사학)의 ‘로마혁명에서 신흥엘리트의 등장과 역할’ 등 초기 엘리트 논쟁부터 조용욱 국민대 교수(국사학)의 ‘근대 영국 엘리트의 형성과 역할’, 문지영 숙명여대 교수(사학)의 ‘20세기 전기 프랑스의 신자유주의 엘리트’ 등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분석들이 시도됐다.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사학)의 초청강좌가 첫머리에 놓였다. ‘유럽에서의 근대적 엘리트의 성립’을 주제로 한 이 강연은 대회를 포괄하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신분제 사회가 아닌 이상 근대적 엘리트는 형성되는 것. 이 교수는 “근대적 엘리트를 하나로 묶고 통합하는 고삐는 교양”이라고 보았다. 사실 교양의 이념은 고대 그리스의 ‘파이데이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어져왔다.

그러나 교양인의 범주는 차츰 확대됐고, 이제는 대학마저도  대중교육에 편입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 1970년 전후 유럽과 미국의 대학가를 휩쓴 스튜던트 파워 운동은 대학의 개혁을 실현해 냈다. 이 교수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선별’ 시스템으로서의 교육체계가 과연 얼마나 구조적으로 바로 잡혔는가”라며 교양인으로서의 근대적 엘리트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통박했다. 

박은진 숙명여대 교수(사학)는 미국 건국 초기의 정치 지도자들 및 사상가들이 보여줬던 공화주의 시민과 엘리트에 관한 규정을 점검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했다. 박 교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엘리트론’라는 발표에서 “독립혁명 이후 새로운 공화국은 ‘공익 추구’를 근본적인 이상으로 설정하고 대중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능력있는 엘리트는 타고난다는 것을 강조,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엘리트층의 실질적 ‘세습’을 정당화한 셈이 됐다”라고 정의 내렸다. 이밖에도 황보영조 서울대 교수(서양사)는 ‘스페인 왕정복고기(1875~1923년)의 통치엘리트와 민주화의 한계’라는 논문에서 스페인의 왕정복고기에 있었던 남자보통선거 도입, 지방행정법안 등 민주화를 위한 법적 조건을 만들려는 엘리트들의 시도가 오히려 과두제적 체제를 온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괄호안에 갇혀버린 전망’

그러나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엘리트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조망’과 ‘전망’을 나란히 내세웠지만, ‘전망’은 괄호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과거를 읽는 행위는 현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다. 당대 엘리트들의 운명 속에서 ‘지금 이곳’을 읽는 행위가 좀더 역동적이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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