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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기웃거리는 교수들, 떠난 자리 후유증 크다
모교 기웃거리는 교수들, 떠난 자리 후유증 크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4.21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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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진단] 심화되는 경력 교수의 대학 옮기기

지방 국립대 3학년인 김 아무개군은 개강과 함께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학기까지 전공수업을 맡아 가르치던 교수가 서울의 사립대로 자리를 급히 옮겨서다. 전공수업은 급하게 구한 시간강사가 대신하고 있지만, 속상한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출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나가는 ‘선생님’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걱정도 늘어나고 있다. 가뜩이나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거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다 자신도 편입이나 대학원 진학을 통해 수도권 대학으로 가야하는 건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교수들의 대학이동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2001년 상반기 임용 때만 해도 10%가량이던 경력 교수의 이동율이 2002년 상반기에 16.2%로 급격히 상승했고, 2003년 상반기에는 17.5%로 꾸준히 늘어났다. 한 대학에서 퇴임을 맞던 과거와는 달리, 교수들이 대학을 옮겨 다니는 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대학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것. 지방의 중소사립대에서 지방거점대학으로, 지방국립대에서 서울의 중위권 대학으로, 심지어는 수도권 내 중하위권 대학에서 중상위권대학으로 이른바 ‘좋은 대학’을 향해 헤쳐모여하고 있는 것이다. 

“더 좋은 연구환경 찾아” 떠날 것인가

이들이 대학을 옮기는 요인은 다양하다. 지방 국립대에서 서울의 국립대로 자리를 옮긴 ㄱ 교수는 “더 좋은 연구환경과 교육환경이 가장 큰 이유”라고 꼽았다. 원래 있던 학교의 환경도 좋은 편이었으나, 최상위권 대학에서 교수 공채를 발표하니 은근히 욕심이 났던 것. 수도권으로 돌아오면서 가족들이 누리게 된 편의도 이득이라면 이득이다.

개인적인 이유를 드는 교수도 있다. 지방 국립대에서 서울 사립대로 옮긴 ㅇ 교수는 “서울 출신이라, 연고가 없는 곳에서 지내기 곤란했다”라고 말했다. 본인보다도 주변 가족들이 서울로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다는 것. 국립대에서 사립대로 옮기면서 월급은 많아졌지만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서울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별반 나아진 것은 없지만, 서울 중상위권대학에 재직한다는 사실이 분명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ㄱ 교수는 벌써 학교를 세 번이나 옮겼다. 1996년에 외국대학에서 전임으로 강의를 하다가, 1998년에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 조교수로 임용, 1998년 다시 서울 중상위권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2003년에 다시 서울 최상위권 대학으로 임용됐다. “처음에는 좀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이번에는 모교였기 때문에 학교를 옮겼다”는 것이 그의 대답.

이같은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서열화와 일치하는 ‘교수 서열화’ 때문이다. 지방대가 느끼는 박탈감만큼 지방대 재직 교수가 느끼는 소외감도 심각한 상태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연구지원에서 차별 받고, 각종 학회며 정부위원회에서 소외당하다 보면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게 이구동성이다. “능력 있는 교수가 지방대에 있겠어?”라는 편견을 경험하고 나면, 수도권 대학의 동향을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학계 풍토의 변화에 있다. 대학을 옮기는 것이 ‘직장’을 옮기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미국학계에서 경험을 쌓고 돌아온 젊은 세대들은 업적평가와 계약제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찾아 자리를 옮겨가며 ‘몸값’을 올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전문인’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남아서 가르치는 ‘책무 ’충실할까

그런데 경력교수의 이동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신임교수 채용 발표가 난 후 자리를 옮기고 나면, 그 빈자리는 시간 강사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다시 전임교원을 채용하는 데도 시간이 걸려,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2년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교육의 질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다. 이 소외감과 더불어 학생도 떠나고 교수도 떠나버리는 지방대학의 공동화 현상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제 사람 쓰기가 아니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서울의 상위권 대학일수록 경력교수의 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상당수가 모교출신이다. 서울대의 경우 신임교수 79명 중 32명이 국내대학에서 옮겨온 경력교수이고, 이중 28명은 서울대 출신(87.5%). 연세대의 경우, 신임교수 34명 가운데 11명이 타대학 출신이지만, 국내대학에서 자리를 옮겨온 경력 교수 7명 중 6명은 모교 출신이다. 경력교수의 경우 모교 출신의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앞으로도 경력 교수의 이동비율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경력교수의 대학 옮기기는 추세다. 비난만 할 일은 아니지만, 후유증도 크다. ‘좋은 연구환경’을 찾아 떠날 것인지, 그대로 남아 가르치는 ‘책무’에 충실해야할지 학계의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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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서 2003-05-10 20:56:52
전공수업을 가르치던 교수가 갑작스럽게 떠나야 하는 이유중에 다른 하나는 대학 교수 공채과정이 너무 빨리 이루어 지기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채지원기간은 일주일에서 많아야 이주일이 고작이고 그것도 임기시작학기에 임박해서 채용공고가 나는 일이 다반사 인 것 같습니다. 이런상황에서 교수들이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먼저, 갑작스럽게 떠나가야만 했던 교수들에게 은근한 도덕적 압력을 주기 보다는, 현 교수공채행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손정원 2003-04-29 10:08:05
학교뿐 아니라 모든 직장이 마찬 가지인 것 같습니다. 당장 필요한 사람을 찾기 때문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내일 그만 둘 용의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우리 경제 체제가 원래 자투리 시간 한쪽까지 찾아내어 쥐어짜는 시스템이니까 회사들이 그런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학교는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1년의 여유를 주어, 이전 학교에서 새로운 교수를 뽑을 여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나가다 2003-04-27 18:02:00
물론 단순 비교하는 건 힘들겠지요. 게다가 전공마다 사정이 다르고. 하지만,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미국에서 교수가 자리를 옮길 때 순식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역시 교수의 개인 인간성에 달려 있지만.) 최소한 재직했던 과에 어느 정도 시간을 줘서 그 자리를 대신할 교수(강사가 아니라)를 고용할 시간을 줍니다. 설사 교수급을 못찾더라도 박사 학위자를 찾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좀 더 나은 직장도 좋고, 경력도 좋은데, 일단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교수는 물론 <직업>으로서 인정받고 그럼으로써 professional한 측면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다른 대기업 직원과도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고질적 학벌병을 어서 고쳐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겠지요. 지방대가 죽으면 나라가 죽는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