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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메이저 방송사, 戰勢따라 ‘명분’도 바꿨다…교과서에 실릴 만한 논리적 오류들
백악관·메이저 방송사, 戰勢따라 ‘명분’도 바꿨다…교과서에 실릴 만한 논리적 오류들
  • 박소연 미국통신원
  • 승인 2003.04.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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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리포트 : 부시의 전쟁논리 분석한 미국 대안 언론들

“CNN을 꺼버려라”라는 말은 미국내 반전세력들에게도 전쟁기간 동안 유력한 주장이었다. CNN으로 대표되는 이곳 티브이를 통해서는 단 한번도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없었다.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이라크인들과 미군 진입에 환호하는 이라크인들, 구호물자를 받아들고 ‘땡큐’를 외치는 이라크인의 화면을 통해 얼마나 미국이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가를 역설하려 들뿐.

NBC나 CNN뿐 아니라 메이저 방송사들의 전쟁 ‘포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다. 어쨌거나 뉴스 타이틀이나 화면 편집은 백악관이나 펜타곤 측이 의도하는 전쟁 관련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다. 전세가 바뀔 때마다 전쟁의 ‘명분’도 달랐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백악관과 티브이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정의로운’ 전쟁 메시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3일 워싱턴포스트지의 마이크 앨런과 카렌 드 영은 백악관이 전쟁 메시지를 수정하느라 고군분투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말 바꾸기는 사실상 전략적인 목적이 짙다. 전쟁 메시지 바꾸기에 대한 정치학자 및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대중들이 이라크전쟁에 대해서 받는 인상이 부시 측의 연설·주장과 큰 간극을 보일 경우, 미 정부측의 입장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백악관은,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현재의 모든 사태에 대해서 긍정적인 해석만을 심고 부정적 뉴스들을 무시하려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하버드대의 언론· 정치 및 공공 정책 센터 소장인 알렉스 존스의 말을 인용했다.

4월 5일자 뉴욕타임즈 역시 미국이 그려내고 있는 ‘이라크 해방전’ 이미지가 아랍세계에서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백악관측을 당혹스럽게 한다는  엘리자베스 베커의 글을 싣고 있다.
명분이 덧칠될수록 애드 호크(임시방편적 보조가설)들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논리적 오류’를 비판하는 시각도 종종 눈에 띈다.
사실 이번 이라크 공격을 전후로 부시의 각종 연설들은 그대로 논리학 교과서에 옮겨도 될 만큼 잘 알려진 논리적 오류의 타입을 보여준다. 가령 “우리의 뜻에 동의하지 않으면 적이다”라는 식의 접근은 흑백논리, 허위 딜레마 혹은 허위 이분법의 오류를 보여주며, 이런 오류가 정치적으로 쓰일 때는 ‘협박’용 카드라는 게 정치관련 대안 미디어 시에라풋의 송곳 지적이다.

이처럼 가능한 대안이 배타적인 단 두가지뿐임을 전제하는 오류는 부시의 발언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오류다. 또한 개전 당일 부시의 연설은 전형적인 애드 배큘럼으로 ‘내 말대로 안 하면 유감스럽다’는 논리를 펼치지만 왜 그대로 해야하는 지에 대한 참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오류에 해당된다. “나는 후세인에게 (이틀전) 24시간 내에 후세인에게 이라크를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여전히 이라크에 있으며 이 전쟁의 책임은 후세인에게 있다”는 연설 속에 24시간 안에 후세인이 이라크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제공되지는 않았다.

프린스턴대의 국제법 및 국제정치학 교수인 리쳐드 팰크와 ‘핵무기 시대의 평화 재단’ 회장인 데이빗 크리거는 이런 오류를 비아냥거리며 “부시와 블레어에게 데드라인을 주라”고 말한다. 부시 입장에서야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보조가설이 있지만, 이는 다시 또 다른 논리적 오류를 낳는다. 즉, “후세인 (혹은 UN)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라는 명제에서 “따라서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를 추론하는 것은, 거짓임을 증명하지 못함에서 참을 이끌어내는 오류의 타입(Non-Disproof)에 해당하게 되는 셈. 이런 명백한 오류들은 “인간 이성에 비춰볼 때 부시가 전쟁을 하려는 각종 명분들은 허위”라는 주장의 철학적 바탕이 된다. 물론, 정치는 논리의 영역이기보다는 수사의 영역이다. 그것이 미디어의 화면을 통해 미국인들의 심리를 제어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애당초 내세울만한 명분이 있었다면 말바꾸기나 오류 논란에 휘말릴 필요까진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전쟁의 이유는 “이라크 해방전”으로 귀결된 만큼,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이라크 국민의 해방 사이의 상관관계는 다시 증명의 부담을 갖게 됐다.

박소연 미국통신원 / 버지니아텍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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