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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국이다
우리가 미국이다
  • 김누리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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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이제 끝내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지속돼온 미국의 패권주의가 이제 정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노골적인 협박과 적나라한 폭력 앞엔 유엔의 결의도 전세계의 반전시위도 소용이 없었다. 무소불위의 세계권력엔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다. 인류가 힘겹게 굴려온 문명화의 돌이 졸지에 야만의 계곡으로 추락한 형국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가장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곳은 아마도 한반도이리라. ‘미국의 다음 목표는 북한’이라는 불길한 예상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반세기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이 이번처럼 산산조각이 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충격과 공포’의 교육 효과는 크다. 이제서야 미국을 새롭게 봐야한다는 경각심이 국민들 사이에 시나브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약탈적 패권주의를 경계하면서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를 집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국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부터 새롭게 봐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도, 관행, 의식의 대부분은 사실 미국의 그것이 그대로 이식된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미국의 부정적인 특징일수록 그대로 빼닮았다. 문제는 미국의 제도, 관행, 의식이 결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정치제도를 보자.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제와 보수양당제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한번 꼽아보라. 이런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예외 없이 의원내각제와 보수·진보양당제를 기본틀로 삼고있지 않은가.

엄청난 사회적 불평등도 그렇다. 선진국, 중진국 국가 중에 미국과 한국처럼 빈부격차가 큰 나라가 또 얼마나 있는가. CEO가 일반 국민보다 무려 5백배가 넘는 연봉을 받는 반면, 4천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의료보험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이를 개선할 정치세력의 부재는 또한 유독 미국과 한국에서 기독교가 크게 번성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유럽에서 사회복지제도가 정착되면서 기독교가 점차 약화된 역사적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를 지배하는 의식과 관행들도 대부분 철두철미 미국적인 것이다. 경쟁지상주의와 승자독식주의, 외모숭배풍조와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이나 ‘부자되세요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미국을 너무도 빼닮았다.  
독일의 전총리 헬무트 슈미트는 “미국은 사회적으로 보면 지옥”이라고 일갈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이라는 것이 어쩌면 ‘지옥’을 닮아가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김누리/편집기획위원·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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