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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탈근대사회의 문화, ④ 가족패턴의 변화
<테마기획> 탈근대사회의 문화, ④ 가족패턴의 변화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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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31 00:00:00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률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을 가족해체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부계혈족에 기반하는 가부장적 가족질서는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98년 현재 우리나라에선 매일 1천5쌍이 결혼하고 3백39쌍이 이혼했다. 1인가구 비율이 증가하고 기혼가구 비율이 감소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편 우리나라 출산률은 미국이나 프랑스보다도 낮으며, 가족 이데올로기가 약화되되 이를 상쇄할 제도적 지원이 미미한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 非婚律은 특히 급증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최소한의 가정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양의 의무가 개인의 도덕성에 고스란히 맡겨지기 때문이다. 95년 우리나라 1인가구는 65년에 비해 6배 증가했다.

가부장적 가족질서의 해체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의 또 다른 원인은 자녀기피 현상. 기혼자 중에도 딩크(Double Income No Kid)족이나 싱크(Single Income No Kid)족이 늘어나는 한편, 비혼자 중에선 독신을 선호하는 프리터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주목을 받는다. 프리터란 ‘free’와 ‘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로, 파트타임으로 최소생계비를 마련해서 문화를 즐기는 유형을 말한다. 일본에선 이들의 숫자가 150만명을 넘어섰다. 결혼과 주택마련, 자녀교육 등의 ‘일반적’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이들의 생활패턴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적극적 측면과 함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나름대로 대응한다는 방어적 측면을 갖고 있다. 이들은 돈 대신 시간을 투자하여 문화자본을 축적하며, 세대가 다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보다는 문화적 취향을 공유하는 동세대와의 ‘네트워크 가족’을 선호한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분화로 세대 간극이 첨예화되고 교육비를 포함한 양육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부모의 무조건적 희생에 호소하는 사회재생산 기제는 점차 효력을 잃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 자녀1인당 사교육비만 5천만원, GNP의 6.5%로 추산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녀를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삼으려는 경향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노인들은 자녀와의 갈등이나 재산권 문제 등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경제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우리나라 1년 예산에서 노인복지 비용은 0.3%에 불과하다. 대만 3%, 일본 17%에 비하면, 경로효친이라는 미명하에 노인문제를 역시 개인의 ‘도리’에 밀어붙이는 수준이다.
비혼자과 무자녀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다. ‘非婚’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런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미혼’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에서 가치평가가 개입한 용어라면, ‘비혼’은 가치중립적으로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 영어권에서 ‘spinster’가 사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880년대에 피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임신은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그 당시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불가결한 노동력이었다. 산업화와 함께 사회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분리됨에 따라, 가정은 각박한 현실과 구분되는 안식처로 미화됐으며, 노동력 재생산의 공간으로 정립됐다. 출산과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생물학적 본능이자 행복이라는 ‘집안의 천사’ 신화가 정착된 것도 이때다.
이런 가부장적 가족질서엔 여성과 연소자의 희생과 억압이 수반됐으며, 사회가 다원화되고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피억압 계층은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이와 함께 테크놀러지의 발달이 생식을 위한 성과 쾌락을 위한 성을 구분했으며, 재산권에 기초한 재생산 기능을 담당하던 근대의 성이 그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소비사회에 접어들면서, 자녀는 재산이 아니라 채무였다.
변화하는 가족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서구사회에서 전통적 가족의 해체는 비혼과 무자녀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구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출산, 입양 등 사회재생산 기제가 비교적 원활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제도적인 지원에 의존하는 바 크다는 것. 새로운 가족이란 동거, 同性부부, 독신, 그리고 그런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 형태를 포함한다.

사회재생산을 위한 제도 개선
프랑스에선 동거부부에게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혜택을 제공하며, 동성동거부부에게 이성동거부부와 똑같은 사회보장혜택을 주는 시민연대계약법(PACS)이 통과됐다. 영국에선 동성애 부부에게 유산상속권을 부여했으며, 보수적 중산층의 나라 미국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동성부부가 나왔다. 덴마크에선 일찍이 89년에 동성부부를 합법화했으며, 상속, 연금, 세금 혜택, 입양에서 아무런 차별도 받지 않는다. 독일에선 동거부부 비율이 32%를 넘으며, 영국과 프랑스에선 1/3의 아기가 독신부모에게서 태어난다. 미국에선 자녀가 18세 이하 가정 중 편모가족이 20%를 넘으며, 이중 다수가 자발적 독신모다.
테크놀러지의 발전은 여성을 출산과 육아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한 한편으로, 남성을 포함한 모든 성인에게 출산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상업적인 정자은행이 활성화된 서구만은 못하지만, 올해초 우리나라에서도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공식화됐다. 사회가 재생산되려면, 현실에 맞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호적 및 호주제로는 이혼가족, 재혼가족, 독신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수용하지 못한다. 남아선호와 여아낙태, 그 결과 발생하는 남녀성비의 불균형, 입양아 수출 세계1위의 불명예, 항존하는 아동학대와 노인학대의 가능성에 대한 해법은 개인 차원 해결의 한계를 인정하는 제도개선에 있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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