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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위한 ‘디지털 명예혁명’의 출발지로 삼자
한반도- 평화 위한 ‘디지털 명예혁명’의 출발지로 삼자
  • 이상훈 대진대
  • 승인 2003.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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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 포스트-유엔 시대, ‘한반도평화포럼’을 제안하며

 

이상훈 대진대·철학
UN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미국과 영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략은 바그다드를 파괴하기 이전에 먼저 국제기구와 평화 질서를 파괴하고 말았다. 탈이데올로기 시대 이후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잡는 듯 했던 자유와 평화를 기준으로 한 국제 질서가 한순간에 와해됐다. 이라크 전쟁의 암운은 한반도에도 걸쳐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지금이야말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평화를 향한 근본적 물음이 제기돼야 할 때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으면서, 한반도 평화를 실체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 이상훈 교수의 ‘한반도평화포럼’ 제안은 이점에서 신선한 설득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UN의 동의 없이 무력을 행사한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의 여파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문제로 돌아와 볼 때, 국제평화기구들의 무력화는 북핵 문제를 벼랑에 서게 한다. 국제법 규범에 따른 분쟁 조정이나 해결의 단계가 제거됨으로써 분쟁 당사국가간의 직접적인 실력 행사와 충돌의 개연성이 한층 더 높아진 것이다. 로마시대 이래 국제질서는 법규범에 따라 평화를 추구해왔다. 국제분쟁의 조정에 관한 1899년 헤이그평화회의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UN 역시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합의된 명백한 국제법에 따른 기구였다. 이것이 패권국가의 첨단 기술전쟁 앞에 무장해제 당한 것이다.

바그다드에서 파괴된 국제질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 전략은 단순한 위협용이 아닐 수 있다. 지난 3월 26~27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6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회의에서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 지도층들은 이라크 전쟁을 미국이 다른 나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자행한 주권침해행위로 본다.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부도덕한 전쟁을 감행하는 미국은 오만한 강대국이자 오히려 최대의 깡패국가이며, 따라서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가속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한반도가 처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국제 기구로서 UN은 더 이상 그렇게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평화와 함께 하지 않는 힘은 언제나 억압적이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평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깊은 사고와 전략이 요청된다. 그림은 Jean-Louis Lejeune의 2003년 작품. /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4월 10일부터 효력을 발휘하며, 이에 앞서 9일 UN안보리가 비공식적으로 북핵 문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UN의 전문기구급에 해당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에 대해 우려와 경고의 수위를 시시각각으로 높여가고 있는 만큼,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국제 관심은 자연히 한반도로 쏠릴 것이다.
제6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회의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민족 공조를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정작 핵문제 해결에서는 미국과 양자 구도의 틀에서 풀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제안한 다자대화의 틀은 친미적인 국제 동조세력들을 규합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살하려는 의도로 보고, 분명히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이런 의구심을 갖는 주요 이유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사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점을 먼저 명확히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강대국의 힘과 지위를 행사하기 위해 국제 질서까지 재편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가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맺을 리는 만무해 보인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남북한과 미국이 중심 역할을 하되 여기에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연합 등이 참여하는 다자 대화의 틀을 고집한다. 핵보유국들의 기득권 주장을 최대화하면서 국제 사회를 등에 업고 핵확산의 위험성을 강력히 제기하겠다는 포석이다.

북핵 문제, 서로 다른 해법 사이에서
반면에 남한은 국제 공조의 틀 속에서 한반도 핵문제를 풀어야 함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여기서 남북한의 주도적 참여와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북미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기반 조성을 위해서는 다자간 대화에 앞서 미국의 불가침선언이 중요하며, 이에 상응하는 북핵 활동 동결과 종국적으로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을 열어가는 데도 남한의 적극적 참여와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런 해법들에서 어떤 경우도 국제기구로서의 UN의 중재와 관여가 그리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일본과 EU를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의 재편에 관심이 있는 듯하며,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지분을 강대국과 거래할 심사이고, 북한은 미국과 담판 승부 외는 배제를 천명한다. 자연히 남한은 가장 큰 위험의 당사자이면서도 어디로부터도 따돌림받는 어처구니없는 신세다. 9·11 테러 이후 국가간 질서는 UN의 보편주의를 걷어치우고 패권에 따른 철저한 쌍무적 이해관계에 의해 ‘거래’ 되고 있는 것이다.

초강대국을 UN의 규범 아래 두는 것이 힘들다면, 세계 평화는 무엇을 통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은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사상적 문제를 제기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섬광과 고막을 찢는 포성 속에 참혹한 주검들이 나뒹굴 때, 우리는 살아있음의 존엄성과 평화를 처절하게 갈구한다. 과학 기술은 무기를 녹여 보습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없는가.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국제 여론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각국 정부의 전쟁 동참과는 달리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에 걸쳐 고조되고 있는 시민사회의 반전 분위기다. 국가기구를 주축으로 하는 UN의 틀이 패권국가의 행보에 무기력한 반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전자 세계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은 사적 대화와 사회 관계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어,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적 정치 기구로 변신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이래 인권과 인종 문제, 기아와 환경 문제 등을 통해 우리는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인식의 세계적 지평을 가꾸어왔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의 결합은 지구적 시민사회의 가능성을 열었다. 각국 정부의 현실주의 정책에 맞서 부도덕한 선택에 반대하는 사이버 시민 권력,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e-평화네트워크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첨단 과학 기술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미 50년 전에 하이데거가 언급했듯, 기술에 대한 인류의 태도가 항상 더 숙명적이었다.

온라인 한반도평화포럼 왜 필요한가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국가 권력에 파괴와 단절로 가는 통제 수단을 주는 한편, 세계 시민을 무관의 제왕으로 만들고 국제사법재판소의 평결 수준으로까지 높였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은 첨단병기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문화산업을 생산자 지향에서 정보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기도 했다. 숙명을 자유로운 운명적 선택으로 바꾸는 온라인 반전 평화 운동은 점차 고전 철학이 말한 시대 정신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골리앗의 독점 아래 국제질서가 전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 세계 시민의 힘을 온라인을 통해 발휘하자. 국가기구로서의 한국은 작지만, 한반도는 세계 여론을 환기하고 평화에 대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아고라 광장이 됐다.
북핵 문제는 더 이상 무력과 같은 아날로그적 방식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디지털 대화로 평화적 해결책을 찾자.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e-Korea’를 넘어 ‘u-Korea’로 가자는 IT강국에 대한 상업적 자랑을 이제 성숙한 세계 정신을 모으는 데 선용하자.
새로운 디지털 명예혁명의 출발점이 한반도에서 시작되게 하자. 이것이 새 천년 지성인들이 선택해야 할 운명이다.

북한은 미국에 매달리면서도 믿지 못한다. UN은 WTO 체제이래 보편주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 당한 국제관리대상기구로 전락했다. 각국의 국가기구들은 퍼스널 컴퓨터 수준의 국익계산에 정신차리지 못한다. 미국에서 반전 여론을 일깨우는 ‘지-넷(z-net)’처럼 시대의 등에 역할은 깨어있는 민주 시민들의 몫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산술적 개인이 아니라 영구 평화를 논하는 지구촌의 비판적 지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e-평화네트워크가 구호 차원이나 여론 환기를 넘어 국가 기구들을 견제하고 이끄는 현실 정치력이 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자.
우선 UN을 거듭나게 하는 뜻에서 이 기구의 명칭을 ‘e-UN 평화네트워크’로 부르자. 그리고 우선 과제가 이라크 전쟁 과 북핵 문제 해결이기에 온라인 ‘반전평화포럼’과 ‘한반도 평화포럼’이란 비상설기구를 만들자.
반면에 상설 기구로 분쟁의 쟁점과 당사자들의 이견을 사실 인정 차원에서 정리해 전세계에 알리는 ‘국제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아울러 각국의 민주 시민들이 추천한 양심적인 지성인 약간 명으로 하여금 ‘전문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해결책을 찾게 하자.

그리고 이 해결책과 국가기구들 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을 경우 최종구속력을 갖는 ‘e-사법위원회’를 두며, 여기서는 국가별 대의원을 통한 국제적인 인터넷 배심 투표를 하게 하자.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되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렇게 바뀔 필요가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평화 제안을 구체화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지금 시작할 경우 한반도의 평화가 새 천년 평화를 지키는 눈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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