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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리뷰 : ‘서남동양학술총서’(문학과지성사 刊)와 ‘한국철학총서’(예문서원 刊)
총서리뷰 : ‘서남동양학술총서’(문학과지성사 刊)와 ‘한국철학총서’(예문서원 刊)
  • 이상호 경산대
  • 승인 2003.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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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학 1.5바퀴 시대를 접는다

이상호 / 경산대·동아시아학

 

“동양학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1995년에 출간된 서남동양학술총서 첫 권의 서문 첫 구절이다. 서남재단에서 지원하고 문학과지성사가 출판 실무를 맡아 출간하는 서남동양학술총서의 기본적인 지향은 말 그대로 동양학의 부흥이다. 빈사 지경에 빠져 있는 동양학의 전통을 다시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양학의 부흥이라는 명제가 자칫 국수주의의 확대판과 혼동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동서양 통찰한 외국학 지향
그에 따르면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서양 숭배로 시종해온 한국 서양학이 진정성을 획득하는 데 교정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동양학과 서양학은 외국학의 두 바퀴인데 전자의 부흥은 우리 외국학의 외바퀴 시대 또는 1.5바퀴 시대의 파행을 마감하고 균형적 시각을 회복할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양학과 서양학의 상호보완적 정립에 기초한 외국학 시대를 열고 더 나아가 국학의 전진을 촉진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국학과 외국학은 분리될 수 없는 쌍생아에 비견될 수 있는데, 동양학의 부흥은 서양학의 올바른 정립을 자극할 것이고 더 나아가 국학의 비약을 가능케 하리라는 것이다.
서남동양학술총서는 이런 기획 의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세 권의 편저를 비롯해 총 19권이 발간됐다. 동양학이라고 하면 동남아시아권, 인도권, 아랍권 그리고 중앙아시아권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 여건상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관한 인문학·사회과학 분야를 우선 다루고 있는데, 연구과제의 특성상 학술총서가 아니면 출간되기 어려운 주제들을 일관되게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발견으로서의 동아시아’ 등 세 권의 편저에는 동아시아 전반에 관한 동서양 학자들의 글을 엮어서 수록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중국역사지리’, ‘근대 일본의 두 얼굴 : 니시다 철학’, ‘한국 중세의 불교의례‘, ‘식민지의 경제 변동 : 한국과 인도’ 등 나머지 책들은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과 관련된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정치, 경제, 외교 분야의 연구서들이다. 연구비 신청을 받아 심사 후 선정한 만큼 내용 면에서도 깊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연구 과제가 완료돼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도 여럿 있다.

고답적인 철학연구 분위기 깼다
서남동양학술총서에 비해 한국철학총서는 출판사 예문서원이 자체적으로 기획해서 발간하고 있는 학술총서다. 예문서원에서는 한국철학이라고 하더라도 총서별로 달리 분류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철학총서의 기획 의도는 고답적인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철학 연구 풍토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역량 있는 국내의 젊은 필진을 계발하고, 국외의 연구 성과 중에서도 꼭 참고해야 할 것들을 엄선해 출간할 것을 기약하고 있다.
이는 우선 동양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이 출판사의 기본 지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값싼 상업주의와 신비주의를 감춘 무비판적인 전통 부활의 풍조를 거부하고 올바른 동양철학을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철학총서도 서남동양학술총서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한국철학총서는 이런 기획의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3권의 번역서와 5권의 편저를 포함해 20권이 발간됐다. ‘기호학파의 철학사상’, ‘실학파의 철학사상’, ‘실학사상과 근대성’ 등 각각의 권들은 나름의 기획 아래 연구, 집필된 성과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필진의 구성도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사’나 ‘해월 최시형과 동학사상’ 두 권 외에는 모두 한국유학에 관한 연구서들이다. 한국철학총서이면서도 한 분야에만 집중돼 있는 것이 아쉽지만 이는 일단 한국유학에 관한 연구 성과들을 정리하고 그런 후에 다른 분야로 넓혀가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선유학의 학파들’, ‘조선유학의 자연철학’, ‘도설로 보는 한국유학’처럼 주제를 특화시켜 기획발간하고 있는 까닭에 내용 면에서도 역시 깊이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서의 기획과 출판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상업성을 기대할 수 없는 학술총서는 말할 것도 없다. 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한두권 나오다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경우가 어디 한둘인가. 탄탄한 기획과 재정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학술총서가 나오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학술총서를 발간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며, 또한 그런 학술총서를 조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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