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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관 잣대로 한 이념구분 안돼…새로운 이념지형 필요 n“자유없는 자유주의의 한계…범주적 사유에서 ?
대북관 잣대로 한 이념구분 안돼…새로운 이념지형 필요 n“자유없는 자유주의의 한계…범주적 사유에서 ?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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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묻는 좌담에 초대된 참석자들은 한국에서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더 이상 유효성이 없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정권 등장 전후로 생긴 한국 정치사회의 지각변동과 관련해 진보-개혁적 자유주의-냉전적 자유주의의 삼분법적 지형이 현실과 더 부합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에 기반한 신보수의 등장 등 이념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보수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북한에 대한 태도 등 민족주의적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존의 관행이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다며, 이를 끊는 데 지식인들의 역량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됐다.

일시 : 2003년 4월 4일
장소 : 교수신문사 회의실
사회 :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학)
참석자 :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역사학)

손호철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야기를 나눌 주제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진보와 보수입니다. 제가 보기에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입장이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변화에 대한 반대 여부죠. 이것은 정세적인 이해에는 좋지만, 이념적 내용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진보와 보수를 연속체 상의 정도 차이라고 보는 것이죠. 일종의 계층론적 사고입니다. 세번째는 좀더 이념적, 절대적 기준을 갖는 구분법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대한 찬반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경우입니다.

김일영 : 연속선상의 진보와 보수가 신문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 같아요. 그 방법이 시각화, 수치화, 객관화시키기 좋다는 명분 아래 쓰이고 있는데,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죠. 저는 쟁점에 따라서 분석적으로 어떻게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나눠볼 수 있을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국가와 시장 사이의 관계입니다. 시장 위주로만 가자는 신보수주의가 있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있죠. 시장개입은 다시 두 가지로 갈리는데 개발을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개발시대 지배층들의 생각이 있고, 또 하나는 재분배와 복지를 위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구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여기서 생겨나죠. 다음은 개인의 인권을 도대체 어느 정도나 국가에 의해서 제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게 또 다른 차원의 문제죠. 문제는 이 각각의 이슈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국내적 차원에서만 생각할 것이냐, 아니면 국제적 차원에 놓고 생각할 것이냐에 따라서 각각의 이슈에 대한 이념적 입장이 또 복잡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윤평중 : 제 생각에는 구체적인 정치형태나 국가의 차이를 불문하고 진보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태도는 아무래도 평등을 좀 지향하는 것 같고, 그리고 공동체적 정의라고 할까, 분배정의를 좀더 중요한 선차적 가치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칭 보수는 자유를 강조하는 쪽이고요. 물론 양쪽 다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인 의미에서 선차를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발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만.

손호철 : 다시 화두를 던져보죠. 총체적 범주로서 진보-보수라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가. 진보와 보수를 각론으로 나눠서 보자는 것이 김일영, 정현백 선생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저는 해체론적인 것이 옳은 것인가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덩어리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경제적인 문제에서의 진보가 평화, 여성, 인권에서의 진보와 일치하진 않고, 그 각각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분리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두 번째 저널리즘에서 많이 사용하는, 진보-보수의 구분으로 노정권의 집권이 진보의 집권으로 그려지는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겁니다. 즉, 보수와 진보, 또는 개혁과 진보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고 말이죠. 그럼으로써 노무현 정권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념사적으로 짚어보는 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일영 : 아직 덩어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조직화해서 어떤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운동에서는 인정을 하는데요, 위험성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일간지 설문조사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당신은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물어봤는데 50%가 넘게 자기가 진보에 가깝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는 이런 겁니다. 보수는 칙칙하고 어딘가 움직이질 않고 정적이고 진보는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고 변화를 추구하고 이런 내용 말이죠. 분석적으로 분화된 생각 위에서 내가 보수냐 진보냐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정현백 : 세계화 문제가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위협이기 때문에 덩어리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과거에 맑시스트였던 사람이 에콜로지나 젠더에서도 앞서가고 있는 측면도 고려해야죠. 문제는 한국의 진보세력이 거기에서 큰 괴리를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글로벌 퍼스펙티브를 가지면서도 이게 한국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판단하는,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러면서도 제가 포스트류의 사고에도 굉장히 동감하는 부분은, 이 사람들이 차이를 주장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이번 파병안도 보면 딱 절반으로 나눠지는데, 그러면 나머지 절반은 항공모함에 태워서 다른 나라로 보낼거냐, 아니라는 거죠. 같이 살아야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진보와 보수가 갖고 있는 상호간 헤게모니 확장이라는 것 자체가 전환될 계기도 마련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김진석 : 요즘은 해체적인 경향이 지배적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정치지형에서의 커다란 덩어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고요. 저 같은 경우는 지금 상황에서 진보와 개혁이 어떻게 구분될 것이냐의 문제가 상당히 폭발성이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제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얘기들을 했으니까 좀더 한국적인 상황으로 들어가서 얘기해보죠.

윤평중 : 한국 보수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은 개인의 자유, 인권 등등을 양보할 수 있는 불가침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해야만 마땅한데, 계속 그런 것을 침해하고 억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보수적인 영역을 쌓아왔다는 생각이죠. 이념적으로 파고 들어가다보면, 권력 추수와 기회주의가 남거든요. 현실적 권력투쟁 세계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살아남을 것이냐라는 것에 모든 것이 가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들이대면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이 보수의 현실입니다.

정현백 : 저는 약간 다른데요. 학교에서나 일상적인 지식인 세계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보다 보수적인 지식인이 훨씬 자유주의적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걸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실 수구세력과 자유주의자와 진보세력으로 나누는 삼분법이 맞다고 봅니다. 윤 선생님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저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건 5공, 6공 시절에 소위 경제관료로 알려진 사람이나 재벌들 중에서 개인적인 바이오그래피를 조사해보면 상당히 건강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김일영 : 그림을 그려보면 지도가 정확해질 것 같습니다. y축의 위를 국가로 놓고 밑을 시장으로 놓고요, x축의 우측을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 허용하는 것으로 놓고 좌측을 약간의 제한을 가해야한다는 것으로 해놓고 보면, 좌측상단에 과거의 구보수에 해당되는 개발세력이 옵니다. 좌측하단은 재벌, 우측 상단은 진보, 우측 하단은 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볼 수 있겠죠. 윤 교수님이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수구세력을 구별해야되지 않느냐 그러는데, 이념적 좌표상 어느 정도 구분이 되거든요. 이렇게 보면,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자각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개발세력은 여전히 힘을 좀 지니고 있어요.

윤평중 : 재미있군요. 그러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아마도 합리적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독해돼야 마땅하다고 봅니다만.

김일영 : 저는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보긴 힘들 것 같고, 굳이 위치를 시켜보자면 여전히 진보의 바로 아랫부분에 위치할 것 같아요. 시장 쪽으로 완전히 오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손호철 : 노무현 정권을 볼 때는 진보와 개혁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할 것이냐가 중요한데, 절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총련, 준법서약서, 국가보안법 문제에 전혀 손 못 대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양김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은 극우로 왜곡돼있는 한국의 보수를 국제적 수준의 보수로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정치사회 수준에서 노무현 정권이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봅니다. DJ와 YS는 봉건적 자유주의 세력이거든요. 저는 노사모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다양한 풀뿌리의 지지기반이 시민사회 수준에서 취약했던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들이 자리잡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더 중요한 것은 좌파나 진보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떳떳한 자유주의, 보수주의 세력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진석 : 논의가 거기까지만 가면 대부분 다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몰아가는 곳이 어딥니까. 조선일보, 동아일보 이런 곳이고, 그런 쪽에게 왜 그러는지를 물어야되는데 묻지 않고 있거든요. 저는 묻는 게 진정한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평중 :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명제화시키면 진보와 보수라는 것 자체를 더 이상 명사로 쓰지 말고 형용사나 부사로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 명제가 한국사회에서 중요하나면, 그것이 하나의 명사적 실체로, 범주적이고 보편적인 실체로서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개혁을 어렵게 만든 측면이 너무 강했다는 겁니다.
논의를 좀 틀자면 한국의 진보가 신자유주의적으로 편향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얘기해보죠. 과연 그들이 근본적인 질서변화라고 하는 것을, 이를테면 양보할 수 없는 실제내용으로 갖고 있는 것인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손호철 : 저는 일단 억압, 차별, 착취, 배제를 반대하는 것은 진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중심 축에 있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라고 생각하죠. 지금의 국면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고요. 다만 그것은 계급론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단순히 계급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또 문화와 환경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윤평중 : 진보의 대표주자로서 야심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좋은 것은 다 가지고 가는데, 그런 강령적 진술에서 자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이 반대할 만한 것이 얼마나 될까요.

김일영 : 보수세력이 지향하고 있는 것을 시장이라고 하는 명확한 메커니즘이라고 단정을 해놓고 말이죠. 그러면 그 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말씀이죠. 반대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결국 가자고 하는 지향점이 어디냐는 것은 여전히 불분명한 거죠.

손호철 : 저는 전체적인 측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봐요. 민중연대나 또는 시민사회, 연대회의나, 이들이 투쟁을 하게 되면 같이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선험적으로 전선이 있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싸워보니까 사회적 약자들이 거대한 권력과 싸울 때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정현백 : 이러면 얘기가 복잡해지는데, 장애인 영역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나눠지거든요. 소위 급진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진보를 얘기하느냐. 그게 아니라 진보에 대해서 아주 방어적이고 싫어하거든요. 동성애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손호철 : 저도 대립이 있다고 봐요. 대표적인 게 환경단체와 노동운동의 대립, 한전 민영화였어요. 한전이 에콜로지에 무엇을 기여했느냐.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그래서 환경단체에서는 민영화를 주장하고 나왔단 말이에요. 이 문제는 토론을 해서 결국 합의를 봤는데 환경친화적이면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죠. 중요한 건 합의를 했다는 겁니다. 여성과 문화 분야에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다. 무슨 소리냐. 이것은 반여성적인 것이다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 상존한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은 부딪히면서 투쟁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선험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현백 :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남북문제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경향이 큽니다. 노무현 정부도 그래서 진보라고 보는 거죠. 저는 지식인들이 이런 관행을 깨는 데에서 아주 격렬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에 대한 문제도 저는 어떤 일치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우리 사회에서 공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북에 대한 문제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윤평중 : 민족주의도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신성화된 담론이거든요. 그럴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는데, 약소국으로서 강대국들에 지정학적으로 둘러싸여 가지고 당해온 역사거든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강력한 민족주의 색채를 띤다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한국 진보의 특이성 내지는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는 민족주의가 실제화될 때의 효과들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속성이 해방적이고 민주적인 차원에 비해서 월등히 높거든요. 민족주의 담론의 탈신화화는 한국 진보의 내실화를 위해서도 시급합니다.

김일영 : 지금은 통일을 얘기하면 보수진영의 흡수통일로 인식되고,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장기적인 평화공존을 얘기해고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진보진영이 통일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무슨 집회를 하면 항상 통일이라는 용어는 앞에 나온다는 말이에요. 제가 볼 때는 진보진영의 도덕적 우월성의 많은 것은 사실 반사이익이라고 보여집니다. 비판받고 있는 세력이 워낙 불건전해서 얻는 상대적 우월성이라는 거죠. 물론 그 우월성과 민주화 세력의 현실적 어려움을 과거에는 인정해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안에서 민주주의의 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죠.

정현백 : 최근에 시민불복종 운동이라는 것은 서구에서도 일어나긴 하지만, 국회에서 결정난 사항에 대해서 문제삼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법치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을 확고히 밟아야 하는 나라에서는 자제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파병안에 관해서도 국회에서 결정난 것을 힘으로 반대하는 것은 국회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봐요.

김진석 : 진보주의가 민족주의자라 했는데, 이게 역전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번 파병문제를 보면 진보주의자들이 또 보편주의를 표방하고 있거든요. 기존의 진보와 보수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분열적인 현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떤 종류의 폭력이 있을 때 이것을 명분으로만 해결하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것이 진보라면 저는 그것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요즘 진보주의자들이 국익이라는 것을 너무 소홀하게 다뤄 사실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윤평중 : 저는 파병반대 평화운동이 보편적 실체 담론으로서의 진보-보수 구분이 무화되고 극복되는 생생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케이스 바이 케이스, 구체적인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판단을 해야한다는 사례로 말입니다.

손호철 :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추상적 담론의 이분법이 오히려 잘못된 게 아닐까요. 왜냐하면 좌파나 진보의 담론은 철저하게 국제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우리가 제3세계적인 문제의식의 경험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한국이 아시아 제국주의가 되면서 비판받는 부분들이 생겨났다고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민족주의는 유지해야돼요. 지금은 반세계화 운동이거든요. 세계화 투쟁을 어떻게 할수 있을까요? 세계화의 강한 힘이 있을 때 방어적인 열린 민족주의는 진보성을 담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과 파병에 대한 반대 등 두 흐름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이죠.

김일영 : 저는 최근 반전시위를 보면서 한국의 민족주의적인 진보세력이 전세계적인 보편가치인 인권의 문제를 하나 잡았다고 봐요. 그런데 그런 인권의 문제를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민스럽겠지만 이제 진보진영이 커밍아웃을 해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반전 평화운동은 분명히 명분이 앞서 있어요. 그런데 리얼하게 세력관계로 들어와서 보면 반전에 비해 반핵은 상대적으로 강조가 안 되는 게 확실해요.

윤평중 : 한국 진보가 자기정체성, 내적인 일관성, 투명성의 제고를 위해서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전략적 고려는 정치인들이 하게끔 놔두고 학자나 시민사회는 보편적 인권이나 평화의 관점에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지 않습니까. 북과 관련해서도 분명히 그런 게 있다고 봐요.

정현백 : 얼마 전 북핵 문제에 관해 참여연대, 여연, 환경연합 등 1백80여개 시민단체가 비판성명을 낸 적이 있죠. 물론 아직 소수이고 어려운 설득작업이 있었습니다만 북한 문제, 민족주의 문제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희망적입니다.

윤평중 : 저의 바람은 그런 것에서 더 나아가서 북한체제의 성격 같은 것에 대해서도 좀더 선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됐나는 것이죠. 남한사회에 대한 비판에서 성역이 없다면, 북한도 원칙적으로는 성역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손호철 :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이 현실적으로 발산되지 못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진보진영의 다수파와 주류가 NL이라는 데 있습니다. 하다못해 노무현과 정몽준도 통합을 했는데,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합치지 못했거든요. 여기엔 북한 문제가 큽니다. 민노당은 NL과 PD가 합쳐진 것이고, 사회당은 PD당이죠. 그러니까 사회당은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우리는 못 들어간다 이겁니다. 북한이 무슨 사회주의냐는 거죠. 그런데 민노당은 반 이상이 NL이란 말이에요. 즉, 그런 입장으로 갈 경우 지지기반의 반 이상을 잃게되는 지라 어렵다는 거죠.

윤평중 : 한국에서 NL이 과연 진보의 이론임을 자임할 수 있습니까.
손호철 : 1987년 이후의 과정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1980년대의 시대적 맥락에서는 종교처럼 믿고 싸울 수 있는 투구로서 의미가 있었죠. 지금은 또 거꾸로 반전평화로 이어져서 효선, 미순하고 다시 NL적 목소리가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도 있어요.

정현백 : 저는 그게 단지 우리가 주체적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고 봐요. 무슨 NL적 문제의식으로 뭉쳐진 것이 아니라는 거죠. 최근 촛불시위가 두 가지로 분열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봅니다. 반미라고 공격이 들어오니까 그냥 갈라져버리고 말잖아요. 물론 그래도 굉장한 변화 속에 한국사회가 있는 겁니다.

손호철 : 희망은 있죠. 지금 흐름을 보면 한국은 이념적 삼분구도로 가는 것이라 보여지네요. ‘진보-개혁적 자유주의-냉전적 자유주의’, 혹은 ‘진보-보수-수구’의 구도로 가는 것 같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비교적 젊은 진보적인 진영이 문화 문제나 북한 문제, 미국 문제에서는 진보적인데,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색맹 같은 측면이 있거든요. 앞으로 이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 진보의 향방을 크게 좌우할 것 같습니다.

김진석 : 한국에서는 한번도 자유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와 묶여져서 자유주의 자체가 적대시되는 분위기는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호철 : 저도 불만이 그거예요.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위해서 자유주의자들이 너무 안 싸웠다는 거예요. 이번 8월에 불거져 나올 양심수 문제를 한번 지켜보려고 합니다.

정현백 : 저는 진보진영에 유럽이 내면화했던 시민사회의 룰이 정착됐으면 합니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이런 부분을 굉장히 내면화했거든요. 실제로 그것이 유럽 노동운동의 훈련에 큰 역할을 했고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사적 영역까지 확대해서 실현하는 노력이죠.

/정리 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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