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언론의 사설에서는 독일 평화운동의 ‘경이로운’ 르네상스에 감탄하는 평가가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시위자들, 무지개색 바탕의 깃발과 시위 차량에 새겨진 ‘Peace’ 등의 반전 표명과 슬로건들,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월요시위’의 재부활은 역사적 신호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 차이트’의 편집장인 베른트 울리히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는 독일에서 파시즘은 죽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전에 직면해 입증됐듯이 그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즉 각계 각층의 다양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 이라크 전에 대한 ‘일률적인’ 목소리에 대해 우려 반 찬사 반의 주장을 펴는 것이다. 사실상 1980년대 초 반핵을 이슈로 한 대중시위의 시대로 진입한 이후 독일 내에서 모든 이데올로기적 입장이나 정당, 그리고 세대를 망라하는 국민적 여론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독일의 작가 협회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수상과 외무부 장관 요쉬카 피셔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천거하기까지 했고, 무지개 색 깃발 위에 적힌 ‘Peace’ 모토와 평화 슬로건들은 독일의 국가적 상징으로 격상했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반전 행보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작가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전쟁준비로 혈안이 된 미국의 거친 행보’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인 외르크 프리드리히는 독일의 반전 기세에 대해 “독일의 태도와 정신적 광장은 폭탄이 쏟아지던 1945년 이후 계속 존재해 왔고 정당한 행위이다”라며 이라크 전에 대한 명료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젠스베르거는 침묵을 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엔젠스베르거는 “확신이 없을 때 나는 입을 다문다”라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런 배경은 지난 1991년 그가 출간한 에세이의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유추된다. 그 에세이의 내용은 사담 후세인과 아돌프 히틀러를 동격으로 비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 후 또 다른 전투 예견
지난 4월 4일 진행된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 재앙’을 언급했던 귄터 그라스는 나아가 “빈 라덴과 부시의 연설들은 서로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라고 언급했다. 즉 미 대통령이 ‘근본주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 함께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가 부시의 입장에 동참한 것을 질책하면서 “블레어는 영국 식민통치의 전통을 추종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 전날인 4월 3일, 그라스는 이미 24시간 뉴스 전문채널 n-tv의 ‘마이쉬베르거’에서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해 “미국은 항상 전쟁범죄를 일으킨다”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이라크 전 후 미국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지식인 및 예술가들의 반전운동과 공식적 표명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일 지식인의 대다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특히 개전 이후 독일 내의 반전운동이 계속 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지식인들은 “유일한 경고자로서의 전통적 역할은 훼손됐는가?”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역동적인 현실 참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에 대해 독일 지식인들이 실질적인 문제제기를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지식인들의 “마비된 투쟁의욕”에 대한 비판과 자성적 촉구에서도 기인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담정권의 붕괴 이후 이라크의 재건과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또 다른 전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