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8:41 (목)
DNA 만이 전부가 아니다
DNA 만이 전부가 아니다
  •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 승인 2003.04.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학계 동향] DNA구조 발견 그뒤 50년, 새로운 학설의 도전

1953년 4월 25일 ‘네이처’지에 당시 유전물질로 주목받고 있던 DNA의 구조에 대한 세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젊은 두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핵산의 분자 구조: DNA의 구조’라는 논문과, 이에 뒤이은 윌킨스, 스토크스, 윌슨의 ‘DNA의 분자 구조’ 등은 각각 한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사이에 불과한 짧은 논문이었다. 그러나 라이너스 폴링이나 로절린드 프랭클린 등 당대 학자들과의 아슬아슬한 경쟁에서, 간발의 차이로 먼저 이중 나선이 DNA(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일 것이라고 제안한 왓슨과 크릭의 논문만이 분자생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 기념비적인 논문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1944년에 이미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점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터라, 왓슨과 크릭의 DNA 분자구조 해명은 생물의 유전과 발생현상 등을 그 물질적인 실체가 밝혀진 ‘유전자’의 작용 차원에서 접근하는 분자생물학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왓슨과 크릭은 첫 논문 발표 후 5주만에 자신들이 밝힌 DNA의 구조가 유전물질에 요구되는 자기복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준다는 내용이 담긴 ‘DNA 구조의 유전적 의미’라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또한 그들은 이 논문에서 DNA 이중나선을 구성하고 있는 염기의 서열이 유전정보를 운반하는 부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1957년, 크릭은 DNA야말로 세대간 유전을 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한 개체의 형성을 지휘하는 물질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중심 원리’를 발표했다. “DNA는 RNA를 만들고, RNA는 단백질을 만들고, 단백질은 우리를 만든다”는 것이 이 원리의 내용이다. 그리고 1966년, DNA로부터 만들어진 RNA의 염기 세 개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하나와 결합한다는 것이 발견됨으로써 ‘중심 원리’는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결국 정보의 흐름이 일방향적으로 이뤄짐을 강조하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중심 원리’에 의해 이제 ‘유전자’로 작동하는 DNA의 염기서열들과 여기에 담긴 정보들을 분석하는 것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생물학 부문에서 핵심적인 연구과제가 됐다. 그리고 이렇게 ‘유전자’ 분석 중심적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최근 인간유전체 연구사업이나 각종 질병들이나 비만, 심리적 기질의 ‘물질적 원인’으로서의 유전자를 다루는 언론들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자기복제 가능한 단백질 발견
그러나 마치 물리학에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단위로서의 원자(현재는 그보다 세분화된 소립자들)처럼 대중들에게 인식돼 있는 DNA는, 그 자체로 ‘유전자’라고 부르기도 애매할뿐더러 ‘중심 원리’의 기대에 부응해 일종의 ‘사령관’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그간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1959년 프랑수아 자콥과 자크 모노가 단백질을 만드는 부호를 포함한 DNA 부분(구조 유전자)과 이를 조절하는 DNA 부분(조절 유전자)를 구분해 DNA의 염기서열이 모두 단백질을 만드는 부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0년대 후반에는 단백질 부호를 지닌 유전자들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듯한 DNA 부분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리고 DNA에 따라 만들어진 RNA가 단백질을 만들기 전에 다양한 편집과정을 거쳐 필요 없는 DNA 서열 부분들에서 만들어진 RNA 부분들은 제거함은 물론, 편집이 완료된 RNA 상태에서도 염기서열에 변화가 일어나 최종적으로는 DNA에 존재하는 부호서열과 일치하지 않는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특히 테민, 볼티모어, 둘베코 등은 RNA에서 D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197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제 RNA는 DNA와 단백질의 매개물질일 뿐 아니라 특정 바이러스에 있어서는 유전자로서 기능하며, 단백질처럼 효소의 기능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반세기만에 흔들리는 ‘중심원리’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 분자구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50년, 새로운 학설이 이어지고 있다. /
그리고 최근에는 DNA나 RNA 등 핵산 뿐 아니라 유전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1982년 미국의 프루시너는 최근 광우병의 원인물질로 널리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이 자가복제 및 감염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해 근 10년이 넘도록 학계의 ‘이단’으로 비판받았다.
여전히 프리온 단백질이 어떻게 자기복제 및 감염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작이 전부 밝혀지지 않았지만, 프루시너는 프리온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또한 인슐린 단백질의 3차원 구조 정보는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의 환경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모든 정보가 DNA 상의 유전자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전자인가. 분명한 것은 단순히 DNA 서열부호를 알았다고 해서 유전의 신비와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중심 원리’가 지켜지지 않은 경우를 단순히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유전체 전체의 구조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각을 넓혀야한다는 주장이나 DNA, RNA, 단백질 등이 명령이나 자료, 세포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다르게 기능하는 역동적인 개념의 고안이 필요하며 따라서 기존의 ‘유전자’ 개념은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는 것. 물론 이러한 대안적인 주장들에는 아직까지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으며 많은 연구프로그램들의 기반이 되고 있는 ‘중심 원리’와 같은 단순하고 완결된 이론의 아름다움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