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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독자를 가진 행복한 신문
수준 높은 독자를 가진 행복한 신문
  • 한윤정
  • 승인 2003.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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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교수신문 : 저널리즘의 현장에서

수준 높은 독자를 가진 신문은 행복하다. 그런 면에서 교수신문은 가장 행복한 신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신문을 제작하는 동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동정(?)의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개념 하나, 이론적 연결 한 부분을 일일이 따지는 학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려면 얼마나 고심해야 할까 하고. 

그래도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고매한 학자와 수준 높은 지식인이라고 하더라도 교수신문의 저널리즘이 전달하는 논제에 대해서는 행복한 독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 지식담론의 흐름이 궁금한 일반독자의 입장에서는 교수신문의 역할이 더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교수신문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두 대목이다. 일단 교수사회, 대학사회의 이슈가 궁금하다. 새로운 지식담론이나 학술논쟁을 소개해주는 경우 어깨 너머로나마 다양하고 참신한 사유의 방식을 엿볼 수 있어서 좋고, 우리사회의 논쟁적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면 삶에 스며드는 지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어쨌든 다른 지면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을 기대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일반독자까지 폭넓게 끌어들일 수 있는 교양이다. 교수필자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서 쓴 원고나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한 전문적 서평은 그 자체로 고급의 읽을거리가 된다. 특히 서평의 경우 일간지가 이미 훑고 지나간 식의 단순소개가 아니라 좀더 자세한 학문적 맥락이 소개될수록 소중하게 여겨진다. 막 끝맺은 연중학술기획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같은 시리즈는 교수신문만의 독자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11살이 된 교수신문은 연륜만큼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앞으로는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사고의 힘을 발휘해서 큰 나무로 자라라’고 응원하고 싶다. 아울러 사회일반의 이슈에 대한 교수사회의 입장이나 여론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수신문에서만 읽을 수 있는 풍성한 읽을거리를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역시 동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쉽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행복한 신문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위로하고 싶다.

한윤정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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