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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세계화 시대에 다시 보는 미국
[테마]세계화 시대에 다시 보는 미국
  • 교수신문
  • 승인 2001.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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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19 16:23:12
『거대한 체스판』(브레진스키 지음, 삼인 刊),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 지음, 당대 刊), 『세계와 미국』(이삼성 지음, 한길사 刊)

미국 다시보기, 미망과 계몽의 20세기를 넘어서

권용립 / 경성대·정치학
‘탈냉전’이 슬그머니 ‘미국의 패권’을 뜻하게 된 걸프전 이후, 소련 없는 단극체제에서 미국이 구사할 세계정책을 둘러싼 예측과 처방이 난무했다. 그러나 세계체제의 진화 양태, 미국 세계전략의 지도원리에 대한 탁상공론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클린턴 행정부는 전통적인 군사패권에 기반해서 나토의 확장을 추진하는 한편 ‘확대와 개입’을 기치로 내세워 미국의 전략과 연관된 모든 지역분쟁에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와 동시에 세계교역과 금융체제의 제도화도 주도했다.

이 와중에 자본이동과 교역의 자유화는 ‘세계화’로 포장되면서 상품과 정보 이동의 효율성만 부각되었고 세계사의 흐름에 둔감한 변방의 우매한 지도자들은 철 지난 개발과 발전 대신 세계화라는 이념을 새로운 종교로 신봉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의도하든 아니하든 과학의 탈을 쓴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을 엮어 세계정치의 판을 패권적 질서에 순치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 기술이 과학의 자리를 찬탈하면서 기술문명은 과학의 인본적 윤리 대신 자본을 선택했고 미국은 더 이상 윤리적 부담 없이도 경제와 기술의 메카이며 군사, 금융의 종주국이다. 이것이 세계사요 현실이다.

모든 ‘윤리적 부담’ 벗어던진 미국

윤리적 부담에서 해방된 미국의 안목을 드러낸 대표적 저작이 정치학자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이다.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시절부터 냉전적 전사(戰士)로서 미국외교의 매파를 대변한 브레진스키는 강국정치론자답게 지정학적 관점에서 세계지배전략을 제시한다. 미국이 주도할 패권적 질서에 저항할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 지역별(서유럽, 동유럽, 구 소련지역, 극동) 정세를 예측하고 대책을 처방하는 그는 미국의 이익을 패권적 의무로 위장하는 위선적인 논객들보다 차라리 솔직하다.

유라시아대륙을 미국이 장악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거대한 군사지정학적 도면만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이나 기술과 같은 21세기 세계정치의 다양한 층위와 동력을 고려하지 못하고 일원론적인 서술에 머무른 약점은 있지만 이 책은 다양한 관점들이 병존하고 또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워싱턴의 수면 밑을 흐르는 강국의식의 핵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미국 연방정부나 양대 정당 내부의 다양한 입장을 포괄하는 보편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고 이것이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식이다.

반면, 애국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역사학계의 비주류로서 미국의 치부를 보여주는 하워드 진의 계몽적 역사서는 언어학자 촘스키(N. Chomsky)의 말처럼 미화 일변도로 왜곡된 냉전시대 미국 이미지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만한 제국’이라는 타이틀로 번역됨으로써 미국의 대외관계만 다룬 것이라는 착각은 주지만 이 책은 그 원제대로 미국사회를 ‘무늬만 민주적인’ 불평등사회로 만들어온 기존의 경직된 지배 이념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식인의 ‘독립선언’이기도 하다. 즉 1776년의 독립선언이 미국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미국적 프로파갠더를 야유하면서 패러디한 것이다.
흑인, 노예, 이민 등 소외된 자들을 조명하면서 미국의 불평등과 불의를 비판해 온 그는 이 책에서 경제적 불평등, 인종차별, 제국주의적 전쟁 등 문명의 거적 뒤에 숨겨진 야만의 풍모를 소개한다. 원폭 투하, 중남미간섭 등 냉전시대 미국 외교에 나타난 마키아벨리즘, 2차대전 중에 저지른 잘못, 시민불복종에 대한 탄압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도대체 미국에서 법과 정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반문하고 있는 한편,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극단적 반공 히스테리 등도 그리고 있다.

사실, 상식과 달리 미국은 근대 자유주의보다는 고대 공화주의에 근거한 나라다. 그러니까 사상적으로 미국은 공화주의의 권력분립사상, 군사적 덕성의 숭배, 캘빈주의의 세속적 위계관념과 선민의식이 융합된 독특한 보수성이 지배하는 나라다. 사회주의와 같은 평등사상을 혐오하고 절대적 선악관에 근거한 외교를 당연시하는 미국의 정치문명적 속성은 ‘미국적 예외성’의 일부일 뿐이다.

또 기술문명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사상과 이념은 가장 보수적인 미국의 특징은 주류 미국사학에서도 널리 인정하는 바다. 그래서, 미국의 보편성에 대한 맹신 대신 그 특수성을 발견하면서 균형 잡힌 전체상을 그려보는 것은 미국 읽기의 또 다른 재미다.

80년대 관성 벗지 못한 ‘세계와 미국’

‘세계와 미국’은 미국외교사, 현대세계사, 미국외교정책이론, 그리고 핵문제, 환경, 패권이론 등 미국외교와 세계정치의 모든 접점을 국제정치경제 영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건드리고 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가 백과사전식 편집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미국이 세계질서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조율해나가는지를 추적하는 집요함이 요구된다.

편저가 아닌 저서의 강점은 바로 이 추적의 틀을 저자가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틀 없이는 내용이 방대한 만큼 논점은 희미해진다. 즉 세계정치의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한 기존 이론의 소개, 외교사 설명까지 곁들이는 등 과잉 친절이 빚은 비만한 서술내용 때문에 미국의 패권적 정책과 시각을 비판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오히려 희석되었고, 결국 이 책은 주제별 소론(패권이론, 미국의 세계인식, 군사 및 핵전략, 인권정책, 인도적 개입주의와 코소보 사태, 유엔과 미국, 세계환경위기와 미국)을 모아 놓은 교과서의 범주에 머물렀다. 일관된 미국 보기 작업을 해 온 저자의 노력은 알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미국 보기의 방법이 아니라 미국 보기 그 자체를 계몽해야 했던 1980년대의 관성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함을 다시 느낀다.

강조하건대, 대서양 연안의 13개 식민지 연합으로 시작해서 북미대륙의 중심부를 서쪽과 남쪽으로 석권해나가면서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이르는 영토제국을 150년만에 완성한 미연방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일관된 팽창과 개입의 역사다. 먼로 시대부터 이미 미국은 남북아메리카대륙의 유일한 맹주를 자처했으며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과 일차대전을 거치면서 19세기 미국영토 확장의 이데올로기였던 ‘명백한 미국의 숙명’이 세계로 뻗어나갈 이념적, 물적 토대를 갖추게 된다. 그 이후 냉전과 탈냉전을 관통해 온 미국의 자의식은 자신을 유일한 보편적 모델로 삼는 미국 중심 세계의 창출과 유지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다.

‘계몽 그 이후’의 윤리에 충실할 때

이렇듯 위아래 없는 기독교권의 현실주의와 제도화된 패권이 불문율인 세계에서 長子의 책무를 미국에 부과하면서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자비를 기대하거나 그 책무의 배반을 꾸짖는 유교적 순진함은, 뒤집어 보면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 박제된 냉전시대의 미국상에 아직까지 경배하는 인습 즉 사대주의의 표출이다. 이것은 미국을 보는 당당한 자세가 아니며, 아직까지도 ‘우방의 의리’를 앉은 채로 기다리는 것은 백척간두에 선 고종이 미국에 기대려고 했던 백년 전의 실수를 인간복제 시대에 이르러서도 되풀이하는 역사적 미망이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의 의무를 속절없이 외치는 공허한 윤리나 미화된 미국상을 교정하는 계몽의 재미를 넘어 미국 패권의 춘추전국시대에 일어날 세계적 변화에 한반도의 정치경제적 장래를 어떻게 얽어 나갈지 그 방책에 시선을 보내는 ‘계몽 그 이후’의 윤리에 충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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