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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금기와 생명의 연대
문명의 금기와 생명의 연대
  • 권혁범 대전대
  • 승인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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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우리사회의 反戰

80년대 유학시절 그곳 외국 땅에서 벌어지는 반전평화시위에 ‘코리아’의 이름으로 내가 친구들과 참여할 때마다 외국인들은 이런 곳에서 한국인은 처음 만난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랐던 것은 한국의 당시 정치문화가 얼마나 국제연대 및 평화와 먼 거리에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라크전의 야만성과 부당함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연일 한국의 거리를 강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확실히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베트남전 이후로 이렇게 전세계의 시민들이 국적과 인종을 넘어서 전쟁반대를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인 듯 싶다. 80년대 엘살바도르 또는 니카라과 내전에 대해서도 이 정도 규모와 강도의 시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녀복장의 인도네시아인, ‘No Mas!’ 피켓을 든 남미 사람, 뉴욕 한복판에 드러누운 미국시민, 성조기를 태우는 프랑스인. 거기에 이제 국제연대적 반전과는 거리가 멀던 코리안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여남 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 초등학생, 농민, 교사, 교수, 의사, 변호사 그리고 상당수 국회의원들까지도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한반도 백년사에서 남의 나라 전쟁에 이토록 가슴을 졸이고 격렬하게 반대한 적이 있었던가. 60년대 중반 베트남전 당시에도 박정희정권의 파병에 반대하는 여론은 강했지만 그것이 국제 평화와 베트남의 인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월드컵 응원이나 촛불시위까지는 전지구적 수준에서 보면 그렇게까지는 감동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전자는 승리주의 내셔널리즘과 축제의 혼합물이었고 후자는 ‘우리’의 어린 딸들이 희생됐다는 의식이 상당히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대 국민국가가 주입하고 강제하는 ‘네이션’ 의식의 자동적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전시위는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다. 수천 킬로 떨어진 사막지대의 다른 ‘비백인’ 민족에 대해 연대를 표시하는 능력은 자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서거나 아니면 최소한 보편적 가치에 대해 열린 민족주의를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정서적 이성적 국제연대가 지금 이 땅에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여러 코리안들이 ‘인간방패’가 되고자 기꺼이 이라크로 떠났고 지금도 몇 명은 거기에 목숨을 걸고 남아있다. ‘우리’ 생명만큼 남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인식,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문명의 금기’여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 한국사회에서 퍼져나가고 있는 걸까.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해도 한국은 전쟁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군사주의자들의 구호가 아무런 성찰 없이 수용되는 사회였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애국’과 ‘반공’의 주술에 홀려서 ‘국가안보’의 신화를 창조하고 동시에 소비하는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 밑바닥까지 스며든 전쟁 문화는 다음 다섯 가지의 내용을 갖게 됐다. 1)전쟁은 인간의 본성 상 어쩔 수 없다. 2)전쟁을 통해 문명은 발전했다. 3)국가는 생존을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하며 유사시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다. 4)자민족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민족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5)전쟁반대는 나약함과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의 표상이다.

50년간의 분단, 군사독재, 지구적 냉전 그리고 징병제는 한국사회에서 지독한 군사주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핵심은 다름 아닌 ‘전쟁 불사론’이 아니고 무엇일까.

‘주적’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 코리아, 수백만의 군대가 1백55마일의 경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생명 및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싹트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한국전쟁이 끝난 지(물론 정확하게는 휴전!) 꼭 50년만에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사상이 이 땅에서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 물론 2003년의 반전평화시위는 한반도에서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전초전의 성격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한국 시민사회의 민주적 역량은 아마도 한반도의 위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라크의 이름 없는 수많은 생명들과 기꺼이 연대하고 그들을 아픔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것은 극우대결주의자들이 딱지 붙이려는 ‘맹목적 반미주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미국 국가의 테러적 행위와 협의적 국제질서의 붕괴라는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여기 한국에서 싹트는 반전문화에서 희망을 본다. 그것은 다른 사회의 반전행동과 더불어 ‘팍스 아메리카나’와 전쟁불사론자들이 유발하려는 군사적 충돌에 대한 강력한 방패가 될 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한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드디어 한국사회에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권혁범(대전대·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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