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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재벌을 지주회사화해 재벌 형태 전환하자”
[학술대회] “재벌을 지주회사화해 재벌 형태 전환하자”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4.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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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경제학회 봄 학술대회 ‘신자유주의와 공공성의 정치경제학’

▲재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제기되자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은 재벌개혁이었다. 정실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주주중심의 자본주의를 이룩하자는 것은 어느 정도 공유된 지향점이었다. 그런데 다소 도발적인 주장이 나왔다. “과연, 재벌 해체가 궁극적인 대안일 수 있느냐”라는 것. “재벌을 지주회사화 해서 재벌의 형태를 전환하자”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발표자는 정승일 대안연대 정책위원. 지난달 28일 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 장상환 경상대 교수)가 ‘신자유주의와 공공성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봄 학술대회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시장과 공공성의 양립은 가능한가
이번 학술대회는 시장성과 공공성의 양립가능성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와 김영용 국민대 강사가 발표한 ‘내부화와 외부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의 일반이론’과 김균 고려대 교수가 발표한 ‘시장과 공공성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두 논문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순수한 이론적인 고찰을 시도했다면,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정보통신혁명과 신자유주의의 모순’이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쟁점을 소화했고, 장상환 경상대 교수의 ‘공공성 확보와 체계론적 대안’과 정승일 정책위원이 발표한 ‘증권시장 자본주의 비판과 재벌 및 은행개혁 대안’은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그야말로 단계적인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한국사회경제학회가 단독으로 개최한 학술대회인 까닭에 발표자와 논평자들이 가진 기본적인 입장은 일치했다. 신자유주의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 그리고 그 한계는 사회의 공공성 확보를 통해 뛰어넘을 수 있다는 공감 말이다. 맑스와 폴라니 등을 중심으로 논의한 이론적 재해석은 이런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합의를 넘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더군다나 실질적인 경제영역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대안을 모색했던 장상환 교수는 민주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정립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유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결합한 경제 체제로서, 효율과 안정의 달성과 노동자를 비롯한 직접 생산자들에 대한 ‘공평한 분배와 복지(형평)’의 실현을 경제 정책의 목표로 한다”는 그의 설명처럼,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적 소유와 시장 조절을 용인하면서도, 국가의 경제적 조절과 조절 수단을 기본적인 물질적 토대로 하는 체제다.

 장 교수가 공공성 획득을 위해 내 놓은 방법들은 시장을 감시하기 위한 ‘국민경제정책위원회’ 설치, ‘누진적 조세제도 강화’, ‘금융기관 운영의 공공성 강화’, ‘사회복지 확충과 공공성 강화’ 등이었다. 사유를 사회화하고 의사결정을 민주화하자는 거대한 틀에 대한 공감이 사회적으로 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실에 적합한 논의의 수준이 무엇인지 고민되는 대목이었다.

토론은 마지막 발표에서 불이 붙었다. 정승일 정책위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재벌개혁의 방향은 미국식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인데, 이것이 진정한 개혁방향일 수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통합적 자본주의를 원한다면, 재벌개혁도 서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주회사’로 묶고, 가족(총수)지배를 허용하면서 그 대가로 엄중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부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었다.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정 정책위원의 의도는 현재 국내 상당수의 대기업의 지분이 외국기업에 있다는 것을 염려해, 국내기업이 외국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 참여하는 학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방식으로 재벌을 유지·강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개념적인 이해 차이에 대한 공방이 오고갔다. 그러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라는 점과 차후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이 형성되는 듯했다. 여전히 ‘인정할 수 없는 견해’라는 이들도 많았다.

“민족적 소유-통제 유지 위해 재벌 유지해야”
김균 교수는 이 토론에 대해 “최근 한국사회경제학회가 사변적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반성과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한 방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보는 편이 적절한 것 같다. 이대로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는 세상이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이들이 만들어 낼 또 다른 가능성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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