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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과학 사이에 뜨거운 이슈를 던지다
페미니즘과 과학 사이에 뜨거운 이슈를 던지다
  • 교수신문 기자
  • 승인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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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열린 3개의 컨퍼런스, 과학기술을 조명하다

각종 신무기 시연장을 바라보는 듯한 현대의 전쟁은 첨단 기술의 어두운 측면을 어느 때보다도 크게 부각시킬지 모른다. 과연 ‘기술’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미래로 인류를 인도하는 무엇인가. 아니면 이러저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기술과 더불어 진보하고 있는가. 어쨌거나 기술이 우리에게 어떤 것으로 존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반성과 모색이 보다 절실한 때임은 분명하다. 때마침 버지니아텍에서는 ‘테크놀로지’를 화두로 하는 학회, 컨퍼런스가 여성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나란히 열렸다.

그 출발은 지난 20일에서 22일까지 SEWSA(미 남동부 여성학 협회; South Eastern Women’s Studies Associaton)가 개최했던 ‘젠더 & 테크놀로지’ 컨퍼런스. 북미의 페미니스트들이 젠더와 과학이라는 주제를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인 지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그간의 성과라면 무엇보다도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맹목적 신화를 벗겨낸 각종 페미니스트 인식론과, 여성과학자 발굴, 보다 많은 여성을 과학자 사회로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적 노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결과와 과정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이 기술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컨퍼런스에 부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혹은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기술에 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 지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끌어낼 수 있었던 점.

이 컨퍼런스에서는 성정치적인 관점에서 각종 테크놀로지 현상을 논하는 60여 편에 이르는 논문 발표와 토론이 3일 내내 진행됐다. 발표논문들을 통해 미디어, 다이어트 산업, 몸의 정치학, 재생산기술, 인터넷·컴퓨터 기술과 여성, 여성과 농업 기술, 공학교육과 여성 등의 주제가 다뤄졌다. 특히 한국 학자 중에서는 하정옥 씨(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가 발표자로 참가해, ‘출산 기술: 한국에서의 시험관 시술’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편, 패널토론 ‘기술연구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공헌’과 주제강연 ‘페미니즘을 테크놀로지에 대한 렌즈로 사용하기’는 ‘남성들의 기술은 전쟁을 만들었지만 페미니스트들의 기술은 미래를 만든다’는 선언을 낳기도 했다. 3일간의 컨퍼런스 기간 내내 ‘인공물에 성정치가 있는가?’라는 주제의 컨퍼런스 특별전시도 함께 했다.

두 번째 버지니아텍이 1985년부터 매년 개최해오고 있는 ‘선택 & 도전’은 과학·기술을 사회적, 윤리적 지평에서 논의하는 행사로 매년 한 주제에 대한 대중강연과 패널토론, 세미나 및 토론이 하루 종일 진행된다. 이 행사는 시험관 아기와 대리모 등 출산 기술의 변화에 동반하는 이슈들을 다뤘던 첫해에서부터 ‘유전자 조작 식품과 식품 안전’, ‘인간을 다시 만든다? 육백만불의 사나이’, ‘지구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삶의 질’ 등 과학·기술을 둘러싼 뜨거운 이슈들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모색하는 자리로 기획돼왔다.

올해의 ‘선택 & 도전’은 지난 3월 27일에 열렸다. 주제는 ‘빅브라더 테크놀로지’. 빅 브라더 테크놀로지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한 ‘빅브라더’에서 연원한 개념이다. 거대화된 컴퓨터 기반 감시기술이나 생체인식기술, 개인의 구매 성향, 소득을 비롯한 사회적 수준을 분석해 마케팅에 이용하는 개인 마케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각종 빅브라더스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관련되기 때문이다. 특히 9·11 이후 ‘공중의 보안’, ‘테러로부터의 자국민 보호’가 정보기관의 통제 없는 개인정보 수집과 공유의 명분이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는 맥락을 짚고 보면, 시의적절한 주제였음이 분명하다.

빅브라더스 테크놀로지가 어떤 기원을 가지며 법적, 윤리적, 역사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의 배경을 제공하는 세미나들, 윤리학자 및 기술철학자를 필두로 한 비판적 그룹의 패널들과 보안 기술 및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찬성하며 이를 이끌고 있는 패널들이 함께 진행하는 토론, 주로 학생들이 참여한 대중과 함께 토론으로 진행하는 소그룹 세미나 등이 이어졌다.

이어 3월 28일, 29일 양일간 버지니아텍 과학학과에서는 ‘기술/도덕 : 기술 체계의 윤리적 문법’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열렸다. 생명공학, 정보공학, 대안 기술 등을 주제로 한 논문들이 발표된 이 워크숍에서는 ‘선택 & 도전’에 패널로 참가했던 응용 윤리학자 데보라 존슨과 기술철학자 앤드류 핀버그, 과학학자 브라이언 마튼 등이 강연과 토론에 참석했다. 한편 세 행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Me & My Google’이라는 현대 정보 기술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창작 연극이 상연돼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박소현 미국 통신원 / 버지니아텍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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