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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주목한다]『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김호기·신광영·이수훈 외 지음, 한울 刊)
[이책을주목한다]『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김호기·신광영·이수훈 외 지음, 한울 刊)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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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부재의 시대, 비판사회이론은 어디로 가는가
‘대안이 없다’는 탄식은 더 이상 비관주의자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오죽하면 TINA(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지금의 추세라면 ‘비판’이란 행위 역시 머잖아 ‘대안이 뭐냐’ 따위의 골치 아픈 요구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날을 맞게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비판행위를 둘러싼 모든 제약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인간의 사고구조는 보다 우월한 ‘타당성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 한 어떠한 주장과 비판의 효력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비판의 준거를 불가피하게 요청한다. 하지만 ‘과학의 확실성’에 대한 신뢰나 ‘유토피아를 상정한 역사철학’의 호소력이 현저히 축소돼버린 지금, 비판이 의지할 수 있는 정당성 근거란 대체 무엇인가.

지난달 선보인 ‘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당대의 일급 사회이론가들이 펼쳐 보이는 학문세계는 물론, 비판이란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판사회이론의 고투를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확인해볼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사회이론가는 모두 14명(3장의 페미니스트 이론가 3명 포함)이다. 월러스틴, 기든스, 푸코, 하버마스처럼 비전공자들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E.O.라이트나 에스핑 안데르센, 클라우스 오페처럼 다소 생경한 이름도 있다. 집필에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 신광영 중앙대 교수, 이수훈 경남대 교수(이상 사회학과) 등 12명의 국내 학자들이 참여했고, 책의 구성은 대부분의 사상사 텍스트들이 그러하듯 인물에 따른 목차분류방식을 따르고 있다.

구성상의 특성 탓에 책의 내용 전체를 개괄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다루어진 이론가들의 지적 편력과 그들이 던진 핵심적 전언들을 통해 현대 비판사회이론의 전반적인 ‘흐름’을 유추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일종의 ‘징후적 독해’가 요구되는 셈인데, 다행스럽게도(?) 서두에 첨부된 편집자 서문이 적절한 독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편집자에 따르면 60년대 후반 이후 융성해온 현대의 비판사회이론에서 ‘비판’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가 ‘기존 사회이론의 정통적 합의에 대한 비판’(협의의 비판)이라면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대성에 대한 비판’(광의의 비판)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하버마스·오페로 대표되는 독일의 ‘비판이론’뿐 아니라 기든스와 부르디외의 ‘성찰적 사회학’, 월러스틴의 ‘역사적 사회과학’, 푸코의 ‘계보학’ 등을 모두 ‘비판사회이론’이란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비판의 정당성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이 풀어야할 문제다.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과도한 도식화’란 비난조차 감수하는 것이 신문서평의 운명 아니던가. 소략하면,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존의 윤리학’에 기반한 정당화다. 지구화된 생태위기와 전쟁의 산업화 등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위기상황은 일정한 공존의 룰을 불가피하게 요청하는데, 이러한 상황의 절박성이 인류의 ‘평화로운 생존’ 자체를 비판의 궁극적인 지향이자 규범적 근거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성의 제도적 차원과 변동과정에 대한 탐구에 기초해 탈현대적 질서의 규범적 윤곽을 제시하는 기든스의 성찰적 사회학(4장), 환경담론을 사회정의의 문제에 연결지음으로써 새로운 규범적 공간의 생성 가능성을 탐문하는 하비의 지리적 유물론(6장), 그리고 철학적 논변이론에서 추출한 ‘타당성’ 개념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분출되는 각종 정당성 요구들의 통합을 모색하는 하버마스(10장)의 시도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또다른 대안은 실증적 연구의 축적을 통해 비판의 근거를 경험주의적으로 정립해나가는 것. 주류 사회과학에서 발전된 계량적 연구와 분석기법을 수용, 맑스주의 계급이론의 경험론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라이트(2장)와 그것을 복지국가가 권력자원의 분배와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는 에스핑 안데르센(12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여기엔 세계경제의 상품연쇄와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경험적 분석으로 세계체제론의 정교화를 시도하는 월러스틴(1장)과 교육제도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문화와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객관적 분석을 통해 드러내 보이려는 부르디외(8장)의 시도 역시 포함된다.

상술한 두 가지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우월한지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가치판단이 부재한 사실판단의 ‘맹목성’ 만큼 사실판단이 결여된 가치판단의 ‘공허함’ 역시 문제적이긴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역시 하나다. 생산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 두 개의 방법을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것. 이것은 이 책이 ‘침묵’을 통해 전달하는 핵심적 전언 가운데 하나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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