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풍경 : 『시민과 세계』 제3호(참여사회연구소 지음, 당대 刊)·『유럽 자본주의 해부』·『미국 자본주의 해부』 (이상 김진방 외, 풀빛 刊)
이번 이라크 전쟁의 후방에 석유자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석유이권 확보를 통한 미국의 자국경제 부흥 프로젝트라고 해석되고 있다.
중남미와 유럽의 중간지점에서 새 모델 찾자
그렇다면 이 전쟁의 원인은 좀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회계부정 사건으로 연줄망 자본주의와 고거품-고위험의 카지노자본주의가 들통나버린 그 현실, 그 신자유주의의 메카 말이다. 이번 전쟁으로 과연 ‘제국’의 우환이 해결이 될까. 그러면 다행(?)이지만 안되면 어쩔 것인가. 폴 크루그먼 같은 자국의 경제학자마저도 향후 몇 십년의 적자재정을 예언하는 판에 말이다.
결론은 자율시장에 민주주의라는 제어장치를 성공적으로 결합해보자는 것. 신자유주의적 지형에서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나라가 세계금융을 온몸으로 통과시키는 것으로 자립경제를 꿈꿀 때, 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외채와 고용불안,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것을 중남미 국가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우리와 중남미는 상황이 몇 차원은 다르다. 개발독재의 유일한 긍정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갱생력 강한 국민경제가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덜란드 기적도 믿을 건 못돼
물론 네덜란드 모델을 보는 시각은 조심스럽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와 전창환 한신대 교수가 함께 쓴 ‘네덜란드 경제모델의 제도적 조응과 그 시사점’을 보면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즉, 이 나라의 고용창출이 사실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권리를 헐어 여성 파트타임노동자로 대체한 노동력 재분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네덜란드가 제조업의 생산기반이 크게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등이 매력을 상당 부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서구유럽이 자본주의 현실에서 앞서나간 부분은 과거의 공화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전통에서 숙성돼 온 절차와 합의의 문화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최근 월차를 내려다 상사에게 폭언을 당하고, 반항하다가 식칼로 폭행 당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유연화된 노동의 불만으로 사회통합의 심각한 균열이 예상되는 현실에, 나름대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호존중의 태도 같은 것을 배우자는 것. 나머지는 누가 더 그 나라의 현실에 밀착한 분석과 대안을 내놓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이번 기획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뒷부분에 나오는 논문에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경제 중심국가 건설 전략은 참여경제적 지향과 국민통합에 상충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은 이 부분에서 시사적이다.
유럽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운영원리,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도형태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면 ‘미국 자본주의 해부’와 ‘유럽 자본주의 해부’가 적절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가령 유럽통화동맹이 단일시장 및 단일통화체제를 확보하면서 따를 수밖에 없었던 각 국가들의 무리한 희생, 그리고 경제강박으로 점점 축소되는 정치적·사회적 권리, 그 부메랑 효과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