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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한국자본주의 모델은 참여경제시스템
[책들의 풍경]한국자본주의 모델은 참여경제시스템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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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식 합의전통 배우자

●책들의 풍경 : 『시민과 세계』 제3호(참여사회연구소 지음, 당대 刊)·『유럽 자본주의 해부』·『미국 자본주의 해부』 (이상 김진방 외, 풀빛 刊)

이번 이라크 전쟁의 후방에 석유자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석유이권 확보를 통한 미국의 자국경제 부흥 프로젝트라고 해석되고 있다.

중남미와 유럽의 중간지점에서 새 모델 찾자


그렇다면 이 전쟁의 원인은 좀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회계부정 사건으로 연줄망 자본주의와 고거품-고위험의 카지노자본주의가 들통나버린 그 현실, 그 신자유주의의 메카 말이다. 이번 전쟁으로 과연 ‘제국’의 우환이 해결이 될까. 그러면 다행(?)이지만 안되면 어쩔 것인가. 폴 크루그먼 같은 자국의 경제학자마저도 향후 몇 십년의 적자재정을 예언하는 판에 말이다.

결국은 세계의 경제시스템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최근 신경제 비판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녹색표지로 산뜻하게 나온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제3호가 마련한 주제기획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가 관심을 끄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여기엔 총 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전환기의 경제시스템을 개괄한 글과, ‘지구화’를 ‘상품화’로 읽어내고 그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글이 총론을 이루고, 신자유주의의 외부에서 악전고투중인 유럽의 나라들을 분석한 몇편의 글, 최근 폐허 위에 희망의 집을 차린 룰라의 브라질을 해부한 글, 이런 외부의 딜레마와 내부의 딜레마를 접합시켜본 두편의 글이 세 뭉치로 각론을 이루고 있다.

결론은 자율시장에 민주주의라는 제어장치를 성공적으로 결합해보자는 것. 신자유주의적 지형에서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나라가 세계금융을 온몸으로 통과시키는 것으로 자립경제를 꿈꿀 때, 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외채와 고용불안,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것을 중남미 국가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우리와 중남미는 상황이 몇 차원은 다르다. 개발독재의 유일한 긍정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갱생력 강한 국민경제가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두 발로 걸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민주화의 요구가 대두해 있다. 또한 신경제라는 것의 말로가 더이상 자유경쟁이 아니리라는 게 예상되는 이상 대안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초국적 거버넌스의 국내용 억압기제로 작동하는 민족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경제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총론을 쓴 이병천 강원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같은 기세가 한풀 꺾이고, 유럽의 사회적 복지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한 여러 실험들이 미로를 헤매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래도 유럽식 경로를 한번 따라가 보자고 과감히 제언한다. 네널란드의 기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성장의 한계가 드러난 스웨덴이나 일자리 없는 복지국가란 비아냥을 들은 독일처럼 네덜란드도 몇 년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나라의 노사간 합의를 통한 고용창출과 경제성장이 현재로서는 가장 매력적인 모델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기적도 믿을 건 못돼

물론 네덜란드 모델을 보는 시각은 조심스럽다.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와 전창환 한신대 교수가 함께 쓴 ‘네덜란드 경제모델의 제도적 조응과 그 시사점’을 보면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즉, 이 나라의 고용창출이 사실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권리를 헐어 여성 파트타임노동자로 대체한 노동력 재분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네덜란드가 제조업의 생산기반이 크게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 등이 매력을 상당 부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서구유럽이 자본주의 현실에서 앞서나간 부분은 과거의 공화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전통에서 숙성돼 온 절차와 합의의 문화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최근 월차를 내려다 상사에게 폭언을 당하고, 반항하다가 식칼로 폭행 당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유연화된 노동의 불만으로 사회통합의 심각한 균열이 예상되는 현실에, 나름대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호존중의 태도 같은 것을 배우자는 것. 나머지는 누가 더 그 나라의 현실에 밀착한 분석과 대안을 내놓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이번 기획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뒷부분에 나오는 논문에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경제 중심국가 건설 전략은 참여경제적 지향과 국민통합에 상충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은 이 부분에서 시사적이다.

유럽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운영원리,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도형태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면 ‘미국 자본주의 해부’와 ‘유럽 자본주의 해부’가 적절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가령 유럽통화동맹이 단일시장 및 단일통화체제를 확보하면서 따를 수밖에 없었던 각 국가들의 무리한 희생, 그리고 경제강박으로 점점 축소되는 정치적·사회적 권리, 그 부메랑 효과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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