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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폭력에 동참하나
왜 폭력에 동참하나
  • 논설위원
  • 승인 2003.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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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의 흥망, 알렉산더나 사산 왕조 페르시아 등과 같은 외침과 정복의 파노라마가 새겨놓은 장구한 인류 문명의 기록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지금 포연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1968년, 독특한 이슬람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사실상 1당독재가 유지되고 있는 이라크는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추지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폭격이 쏟아지고 있는 곳은 그러니까 바로 이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 셈이다. 이를테면, 문명의 유산에 대한 제국의 역습인 것이다.

과거의 세월이 남긴 흔적에 대한 폭격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것은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다.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이 예고된 전쟁은 ‘명분없는’, ‘정당성 없는’ 전쟁이라는 세계적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파병 논란이 거세다. 교수사회와 시민단체의 여론이 국회 파병안 처리를 연기시켰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때의 국내 상황과 비교해보면,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숙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질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미공조 관계를 역설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국익 차원에서 비전투부대 파병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볼 때, 대통령의 결정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내린 ‘勇斷’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를 표방하는 개방 시대의 대통령, 백척간두의 북핵문제를 해결해야할 과제를 짊어진 대통령으로서는 ‘파병 결정’을 지나치게 빨리 내린게 아닌지 우려가 된다.

워싱턴의 매파들이 주도하는 전쟁 게임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밖에 없다면, 국제사회의 정서와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한 목소리를 경청한 뒤에 개입 여부를 밝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교수 사회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파병 결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하고, 대통령의 재고를 요구한 일은 중요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평화에 대한 적극적 해석, 한미관계의 재정립, 남북관계 개선 바람을 읽어낼 수 있는 교수들의 성명은, 힘에 의해 과포장된 ‘폭력’, ‘야만’과 평화의 궁극적 의미를 묻고 있어서 신선하다. 지식인들의 고뇌 역시 국가의 장기적 관점과 국익을 거스르지 않는다. 여야 의원들도 명분없는 전쟁의 들러리가 되지 말자고 하지 않는가.

美·英 두나라가 주축이 된 이번 전쟁은 인류 문명과의 전쟁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정당성 없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야만의 습격이기도 하다. 지금은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과 사고, 국제사회의 反戰여론과 연대하는 느린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지, 야만의 습격에 발빠르게 동참할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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