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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와 전사의 후예
‘오티’와 전사의 후예
  • 박명진 중앙대
  • 승인 2003.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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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대학 ‘입사식’, 변하지 않는 풍경들
해마다 3월이 되면 대학가는 ‘입사식’ 행사로 떠들썩해진다. ‘오티’로 불리고 있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학과 선배들의 환영식, 동아리 회원들의 환영식, 고등학교 선배들의 환영식 등이 3월 한 달을 가득 채운다. 해가 지고 나면, 교정 안은 물론이고 학교 앞 골목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학생들의 행렬로 거대한 카니발이 시작된다.

오랜 고통과 방황 끝에 겨우 대학에 직장을 얻은 나로서는, 대학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젊은이들의 축제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들처럼 새로운 환경에 첫발을 내딛는 기대감과 두려움으로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신없이 지냈다. 신입생 ‘오티’에 쫓아가 새로 입학한 학생들을 만나고, 학과 선배 교수들과의 회식에 참석하고, 각종 학교 행사에 불려나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고등학생 딱지를 떼고 실질적으로 성인 대접을 받게 되는 새내기들이나, 오랜 시간 강사 생활을 하다 대학에 적을 두게 된 나는,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입사’ 행사를 치루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특정 대학 사회에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점에서 신입생이나 신임교수나 그리 큰 차이는 없을 듯싶다. 이는 직장에 취업해 사회인이 된 대학 졸업생도 같은 처지일 것이다.

‘입사식’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은 기존 공동체의 성원이 되기 위해 특정한 수련과 자격 시험을 치르고, 기존 공동체의 빈 곳을 채워주는 ‘젊은 피’가 된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젊은이는 그 공동체의 새로운 戰士로 활약하게 된다. 호주 수렵민의 경우, 젊은 남자는 성대한 입사식을 거치게 되는데,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캠프에 들어가 각종의 환영의식과 전투의식을 거쳐야만 한다.

동시에 이 기간 동안 젊은이들은 부족의 관습, 신화, 전통을 내면화시켜야 한다. 말하자면 ‘입사식’을 통해 젊은이들은 부족의 성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나 같은 경우야 대학 행정 업무에 관련된 교육을 받거나, 기존 교수들과 회식을 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대학교 새내기들의 경우는 나와 사뭇 다른 통과의례를 보여줬다. 이번에 쫓아갔던 새내기 ‘오티’의 체험은 두 가지 다른 차원에서 나에게 충격을 줬다.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선배들이 주도하는 ‘오티’는, 학과 소개, 선배 소개, 신입생 소개, 교수 소개와 같은 공식 행사를 끝낸 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소주를 따라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돌아가며 노래시키기, 게임 하다 걸린 사람 소주 먹이기, 얼큰하게 취한 뒤 어깨동무하고 함께 춤추기. 그 다음은 건물 밖으로 나가 눈싸움을 하거나 기마전을 하거나 집단 군무를 벌인다. 내가 새삼스럽게 놀란 이유는 이들 새내기들의 ‘입사식’ 풍경이 원시 부족의 ‘성인식’ 풍경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들은 ‘젊은 피’를 기존 공동체의 戰士로 만들기 위해, 알코올이라는 약물을 투여하여 假死 상태까지 몰아가고, 다양한 신체 훈련을 통해 육체 강화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대학이나 학과의 신화와 전통과 관습을 전수하고, 몸을 서로 부대끼고 토하는 이의 등을 두들기고, 정신 잃은 후배들을 들쳐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나 나를 더 놀라게 했던 사실은, 이번 ‘오티’에서 목격한 ‘입사식’이 20여년전 내가 경험했던 신입생 환영회와 달라진 게 너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머리가 채 자라지도 않은 더벅머리 신입생은, 어느 날 느닷없이 선배들 앞으로 불려 나갔고, 내 신상명세서를 읊조린 뒤 되지도 않는 노래나 춤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 했으며, 나를 변호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수십 잔의 소주를 몸 속에 처박아야 했다. 나는 심하게 토했고, 비틀거렸고, 낙담했고, 결국에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내가 왜 이 대학 이 학과를 지원했는지, 대학 생활에서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어떤 지식인으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 받지 못했다. 다음날 망가진 몸과 엉망이 된 정신으로 나는 당당하게 한 부족의 戰士로 태어났다.

부족을 지키기 위해 기존 계층은 ‘젊은 피’를 수혈 받아야 하고, 입사식에 참가하는 이들은 선배들의 관습과 전통과 전투 기술을 전수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피를 나눠 마시는 원시 부족의 단일성으로 봉합될 수 있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다양한 이질성, 외면돼서는 안 되는 차이들, 어떤 세력에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욕망들로 꿈틀거리는 시대가 아닐까. 또는 그러한 시대가 돼야 하지 않을까. 내년 ‘오티’ 때에는 20여년전 내가 결국 받지 못했던 질문들을 새내기들에게 던져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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