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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문학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學而思]문학교육의 패러다임 전환
  • (김현주/경희대·고전문학)
  • 승인 2001.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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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19 16:26:07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진보는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처럼 해묵은 이론을 새로운 이론이 대체하는 혁명적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물론 변칙이 성행하고 혼란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혁명의 여건이 성숙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 패러다임을 내몰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학 혁명의 이론은 비단 과학 분야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패러다임을 하나의 사유체계라고 할 때, 사유체계의 전환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할 터이다.
토인비 역사 이론의 키워드는 ‘도전’과 ‘응전’이다. 문명은 외부의 조건들이 인간에게 도전해오고, 인간이 이에 적절하게 응전하는 곳에서 성립된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지 않으면 발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 내지 충격이 주어져야 인간은 창조적인 변혁을 위한 내면적인 결의를 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운명은 외부의 도전에 여하히 유효하게 응전하느냐에 달려 있다.
쿤과 토인비의 이론을 글머리에 얘기한 것은 거기 들어 있는 어떤 기본 정신이랄까 하는 것이 요즘 문학 교육에도 절실하지 않나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문학이 강의실에서 외면받고 서점의 서가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난 지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학의 위축은 문학이 추구하는 정서 구조가 靜的인 데 비해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정서는 動的으로 너무 변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대 사회가 변화의 주기를 빨리하는 데 열광하고, 역동적이고 즉각반응적인 흥미를 추구하는 메카니즘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동안, 문학은 빛바랜 무대 뒤에서 옛날의 영광을 생각하며 손톱이나 깎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무튼 문학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는 위상이 위축된 것은 현대 사회의 여러 도전에 대해 문학이 적절하게 응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문학 교육이 현대 사회가 요청하는, 또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맞춰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여러 방면의 도전들에 일일이 응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학 교육에는 나름대로의 불변하는 지향과 본질적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을 통한 감성 교육이거나, 삶에서의 정신적인 풍요이거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사색적 반추를 제공하거나 하는 등등의 것일 터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학적 지향점의 성격상 타협이나 잖은 궤도 수정과 같은 흔들림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문학의 지향점을 받쳐주는 축은 언제나 중심에 서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중심축의 불변이 오해되고 간혹 오도되면서 보수주의나 현실 안주 의식, 또는 이기주의 성향을 낳는 것이 문제이다.
문학 교육의 지향은 만고불변한다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거기에 이르는 길은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한다. 오늘날 문학이 맞은 위기의 성격상 현대 사회가 내미는 도전장에 문학 교육은 분명 어떤 식으로건 응전해야만 한다. 그러나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응전에 그쳐서는 안된다. 보다 전면적이고 본질적이어야 한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에서 쿤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학 교육이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학을 보는 사유체계가 종전과는 사뭇 달라져야 한다. 여러 가지 방향이 있겠지만 그 중의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하나의 방향은 문학을 ‘사상이나 이념을 적재하는 도구’가 아닌 ‘문화를 담지하는 그릇’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는 문학에서 작가, 주제, 사상 등의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거나 그런 것들을 향한 목적론적 독법에서 벗어나 문학을 통해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문제들과 대화하게 하고 사유케 하는 문화론적 독법으로 옮겨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문학에서 무엇을 추출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해방되게 해주고, 풍요롭고 다양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문학을 자유롭게 향유하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상실된 문학 교육의 미덕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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