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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대학 밖의 도서관, ‘原本’ 발견의 숨은 즐거움을 찾아라
[문화와 생활] 대학 밖의 도서관, ‘原本’ 발견의 숨은 즐거움을 찾아라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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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대학가의 헌책방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책들. 책을 한 권 잡고 펴니, 누군가가 꽂아놓은 책갈피가 눈에 들어온다. 책 모퉁이를 접은 흔적도 없는 걸 보니 누군가에게 귀한 책이었나 보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벅찬 복도의 끝에도 어김없이 책이 쌓여있다. 책방 주인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댄스가요가 흘러나오지만, 아무리 봐도 이 곳에는 정태춘의 구수한 목소리가 그만이다. 새 책의 칼칼한 맛과 신선함은 시간과 함께 희석돼 버렸지만, 그 만큼 누적된 오래된 향기가 남아있는 곳.

ㄱ 강사는 수업을 마친 후 학교 근처에 있는 헌책방에 들렸다. 비록 원했던 책은 없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이미 연구실에 2권이나 있는 책이지만 그 곳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앉게 내버려둘 바에는 차라리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도서 경매에 붙이자는 심산에서다.

최근 ㄱ 강사처럼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가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동호회도 생겨났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이거나 이미 절판된 책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헌책방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찾고 싶은 책이 있을 경우에만 헌책방의 매력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들른 차에 어린 시절 읽었던 기억 속의 저편에 놓여진 책을 발견하게 되거나, 평소 잊고 지냈던 책을 들었을 때의 기쁨이란 시간을 뛰어넘는다.

고서 매니아이자 인터넷에서 한국학, 인문학 도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고서점 ‘노마드북(http://www.nomadbook.co.kr)’을 운영 중인 엄동섭 씨는 “요즘 세대는 ‘영인본 세대’라 아직 원본의 중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학문을 하다보면 점차 원본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듯 하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고서들은 일반 서점에서는 유통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노력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책 매니아들이 1차적으로 행하는 것이 ‘발품팔이’이듯 원하고자 하는 책을 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헌책방에 들르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발품을 팔 수는 없는 노릇. 최근에는 “지방에 비해 높은 가격에 유통되는 서울로 중고서적의 집중화 현상이 심해져 중요한 책들은 서울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 중 동작·관악 지역에는 노량진에 위치한 진호 서점(전화:02-815-9363), 강북·은평·서대문 지역에는 연신내에 위치한 문화당(전화:02-823-5204), 청계천·장안평 지역에서는 경안서점(전화:02-2235-1343)이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있는 서점들이다. 비교적 크고 연륜이 쌓여 있는 이 헌책방들은 그간의 노하우를 통해 책을 사고 고르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고, 이에 따라 가치가 높거나 희귀한 책들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소서점’들이 취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군소 헌책방들도 나름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다. 아직 책의 가치를 매기는 데 취약한 서점들이라 종종 귀한 책을 헐값으로 구하거나 에누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경우는 신촌 현대백화점 맞은편에 위치한 ‘숨어있는 책’(전화: 02-333-1041)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책방의 경우 각 분야별로 세심하게 책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원하는 책을 금방 체크할 수 있다. ‘재야 대학 도서관’이라 할 만한 대학 주변에 들어서 있는 헌책방들도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구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헌책방들이 많이 문을 닫고 있어 원하는 책을 구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IMF 이후 많은 헌책방들이 구조조정을 한 탓도 있지만,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탓도 크다. 가정에서 내놓는 많은 책들이 바로 폐기 처분돼 고물상을 통해 책방으로 재유통되는 구조가 사라졌기 때문. 헌책방 거리로 유명하던 청계천 역시 복원사업 등으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다.

혹여 헌책방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라면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행해지고 있는 경매에 참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디지털 감각의 세대들을 위해 많은 헌책방들이 인터넷에도 보금자리를 틀고 있으니 수시로 사이트에 들려 도서목록을 체크하는 것도 헌책방을 이용하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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