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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시장의 불완전성 점점 커진다?
[쟁점서평] 시장의 불완전성 점점 커진다?
  • 이병천 / 김영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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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이행론의 기본요소 제시…‘가버넌스’ 문제 해결 강조

한국 경제가 제2의 IMF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지난 1997년의 악몽을 함께 겪은 동아시아 경제블록 전체가 위기라는 말도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질서를 금융주도의 시스템으로, 자국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 놓은 미국도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전세계 자본주의가 공황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의 맏아들이 쥐고 있는 것 같다. 그 블랙홀 같은 시장의 질서와, 속성과, 특징을 향해 분석의 시선을 던질 때다.

●스티글리츠 깊이읽기 : 『시장으로 가는 길』(강신욱 옮김, 한울 刊), 『스티글리츠의 경제학』(김균 외 옮김,  한울 刊), 『세계화와 그 불만』(송철복 옮김, 세종연구원 刊)

최근 ‘시장으로 가는 길’이 출간됨으로써 한국에 스티글리츠(J.E. Stiglitz)의 주요 저서 세 권이 번역돼 나왔다. 번역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세 권 중 특히 ‘시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전문적인 서적일 뿐만 아니라, 용어와 문장도 난삽해 번역자의 고통이 여간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역자인 강신욱 박사의 노고를 치하하며 격려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세계 경제학계의 선도적 경제학자 중의 한 사람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는 센(A.K.Sen) 과 더불어 몇 되지 않는 진보적 경제학자의 학문 세계를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마샬과 사뮤엘슨을 넘어서는 경제학 교과서

‘시장으로 가는 길’(원제목은 사회주의는 어디로Whither Socialism이다)은 좁게는 정보경제학, 넓게는 제도경제학의 기반 위에서 원리론적 수준에서 신고전학파 자유시장 패러다임―과 그 쌍둥이 형제인 시장 사회주의론―의 근본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시장경제 패러다임과 시장 경제 이행론의 기본 요소를 제시한 책이다. 스톡홀름 경제 대학에서 했던 빅셀 기념 강연의 내용을 확장한 저자의 이론적 주저다. 여기에는 20여년 간에 걸쳐 축적해 온 그의 연구 성과의 주요 내용들이 온축돼 있다.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자신의 눈으로 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변화상과 낡은 교육 현실의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학 입문자들이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여진 현대 경제학 원론서다. 여기에는 1백년전의 마샬, 50년전의 사뮤엘슨의 교과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교과서 체계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화의 ‘깨어진 약속’에 대해 비판한 그의 가장 최신 저작이다.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IMF의 글로벌 구조조정 프로그램 즉 안정화, 규제 완화, 민영화, 그리고 개방화=자유로운 자본 이동으로 짜여진 정책 패키지와 정책 수립 및 결정 방식의 불투명, 무책임성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세계화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주의적 좌파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근본주의적 우파는 자유시장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주 강고한 이론적 성채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시장적 삶의 고통과 고달픔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 시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이론 세례의 마술 효과 및 그 전염 효과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시장 유토피아를 떠받치는 신고전학파 패러다임의 중핵을 깨트리는 것은 대안적 패러다임 수립의 기본 관문이다.

원리론의 수준에서 스티글리츠 경제학의 핵심은 바로 이 과제를 끌어안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현대판이라 할 신고전학파 패러다임에 따르면, 자유 경쟁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 시장이 청산되는 일반 균형을 낳는다. 이 균형은-파레토-효율적이다(후생경제학의 제1정리). 그리고 경쟁 시장의 효율성의 문제와 분배의 문제는 깔끔하게 분리될 수 있다(제 2정리).

스티글리츠는 이 정리가 깔고 있는 완전 정보의 가정, 그리고 미래시장과 위험 시장을 포함한 완전한 시장 집합의 가정이 비현실적임을 문제삼아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그래서 알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으며 그 때문에 볼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티글리츠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단지 후생경제학의 기본 정리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한층 더 광범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신고전파가 誘因, 할당을 비롯한 비가격기구, 경쟁, 혁신, 분권화와 집권화, 그리고 소유권 제도 등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와 관련된 일련의 핵심 문제군에 대해서, 그 진정한 의미와 폭넓은 역할을 거의 해명하지 못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정치경제학의 논의와 겹쳐지는 소유권 문제에 대한 견해만 보면, 그는 널리 퍼져 있는 ‘소유권의 신화’, 즉 사적 소유권을 잘 정립하면 경제 문제가 잘 풀린다고 보는 코즈의 정리―이는 노스의 제도경제사학으로도 발전됐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국공유 기업의 민영화보다도 경쟁 규율의 창출과 주인 대리인 문제에 내포된 경영 유인 문제, 더 넓게는 가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견해다. 이점은 교과서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에서도 여러 곳에서 힘주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노동자 참여 늘리는 경제 조직형태 연구필요

대안 경제질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견해는 무엇인가. 그는 사회주의 실험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구사회주의 경제들은 부의 평등을 달성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위치에 있다. 그것은 아마도 시장경제에서는 이뤄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룰 수 없는 정도의 평등이다. 그들은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 “정부 소유는 분명히 만병통치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실험의 여지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노동자의 참여와 소유를 더욱 더 허용하는 경제적 조직형태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평등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견해는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논의에서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경쟁 구도보다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경쟁 구도가 많이 등장하며, 사회민주적 시장경제가 옹호된다. 얼마 전 한국 방문에서도 그런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보통 스티글리츠는 경제학 이론 계보상으로는 뉴케인지언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 분류법은 같은 뉴케인지언에 속한다고 하는 멘큐가 최근 부시의 진영에 가담한 것으로 본다면, 스티글리츠의 일면만 가리키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보의 불완전성과 비대칭성에 초점을 맞추는 스티글리츠의 이론이 정보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시장경제의 불안정성, 투기성을 강조하는 포스트케인지언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스티글리츠가 그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는, 평등주의적 자산 분배에 기반한 대안의 길을 제시하는 급진 제도정치경제학 진영(보울스와 진티스 등), 나아가 시장 사회주의 진영(뢰머 등)이 나타난다. 법적 소유의 사회화를 우회하는 점에서는 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더 급진적인 ‘계급권력 없는 자본주의’의 대안(블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시장주의를 비판한다 : 『자유와 법치』(한국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지음, 에머지 刊),
『시장경제인가, 반시장경제인가』(박동운 지음, 자유기업센터 刊)
“實事求是하는 시장주의 논리 아쉬워”

김영두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경제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도 경제적 자유주의의 창달을 외치는 논의들이 한층 많아졌다. 이 논의들의 일부는 구조조정기에 정부 내에서 적잖은 목소리를 내면서 기업구조개혁을 통해 재벌들과,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노동자들이나 시민사회세력과 척을 지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이런 정부의 시장구조 개혁에 대해서조차 반시장적 개혁이라고 규정하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는데, 여기서 살펴볼 ‘자유와 법치’와 ‘시장경제인가, 반시장경제인가’는 후자의 입장에 서 있는 논의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책은 모두 급진적인 경제적 자유화의 관점에서, 지난 정부의 구조개혁을 평가하거나 차기 정부의 과제를 논하고 있다.

“시장은 자생적 질서가 될 수 없다”

‘시장경제인가, 반시장경제인가’는 지난 정부의 구조개혁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 개혁이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 것이었다고 단정짓고 있다. 필자에 따르면 4대 개혁 가운데 노동부문 개혁은 노사정위원회나 노동법 개정으로 외려 노동시장 경직성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기업구조개혁은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빅딜, 워크아웃 및 부실기업 퇴출, 소액주주운동 등의 시장원리를 무시한 개혁에 의해 전반적으로는 시장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했다.

또한 공기업민영화는 정치논리 때문에 진전이 부진했으며, 금융개혁은 시장원리 대신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정부주도에 의해 진행됨으로써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안은 시장원리에 의거한 상시적 구조조정이다. ‘자유와 법치’는 ‘시장경제 창달을 위한 차기정부의 과제’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법치주의, 개혁정치 방법론, 부패, 재정적자, 노동시장, 기업관 및 기업지배구조 등 논의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주제들은 하이에크류의 자유주의를 논리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특징을 담고 있고 있다. 모두 7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여기서 주제별로 요약하기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개혁과제들이 ‘자생적 질서’ 개념에 근거해 점진주의적으로, 시장과 개인의 역할을 확대하고 인위적 규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개선돼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는 결국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필자들은 모두 시장중심주의적 입장에서 시장의 ‘자생적’ 조정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주장은 경제위기 전까지 존재해 왔던 시장의 왜곡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우리가 시장을 논할 때 두 가지 현실감각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하나는 너무나 엄격해서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듣곤 하는 자유경쟁시장의 가설이 만드는 ‘신화’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비판적 인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장과 다른 사회제도, 시장가치와 다른 사회적 가치와의 관련 속에서 시장을 어디에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점에 유의하지 않는 시장논리는 기계론적 논리나 관념론이 돼 남을 설득하기 어렵다.

현실감각 잃은 관념적 논의

    아쉽게도 두 책은 시장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해 그런 현실감각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효율적인 시장은 재벌체제와 양립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의 논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구조화’라는 현실적인 고민거리에는 거리를 둔다. 심지어 이를 ‘자생적 질서’의 일환으로 미화하는 대목까지 눈에 띈다. 또 시장거래와 자유를 등치시키고는 자족적 생계능력을 잃어 타율적으로 시장에 내몰린 임금노동자의 존재에 대해 극구 참여의 자발성과 그들이 누리는 자유를 강변한다. 일반적 시장거래와는 달리 시장참여가 지배-종속관계로 이어지는 노동력 거래관계에 대해서는 무지하기조차 하다. 우리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시장논리가 번창하려면 최소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시장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사구시’ 하는 시장논리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책들의 풍경 :  로만 로스돌스키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전2권)』(양희석 옮김, 백의 刊)을 읽고
트로츠키주의자의 자본론 이해…맑시즘 개념 논쟁은 계속된다

김호균 / 명지대·경제학

마르크스의 사상은 가장 난해한 사회과학 분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론체계가 대단히 복잡할 뿐만 아니라 40여 년에 걸친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이 꾸준히 수정, 보완됐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체계에서도 ‘자본론’, 특히 제1권은 가장 완성도가 높은 저술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론’의 형성과정은 곧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과정을 대부분 보여준다고 하겠다.

1960∼70년대 정치경제학 논쟁 이끈 역작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이론가면서 실천가였다. 그에게 ‘자본론’은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 운동의 결실이었다. 자본주의 운동법칙을 탐구하는 이론은 그에게 실천을 위한 도구였다는 평가가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론을 실천 속에서 부단히 검증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적 관심 자체가 언제나 실천과 직결돼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저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천을 통해 부단히 검증되는 탐구의 결과가 변화를 겪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정 또는 반전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로만 로스돌스키의 역작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은 ‘자본론’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됐는가를 치밀한 문헌고증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가령 로스돌스키는 각 장마다 정치경제학의 주요명제가 마르크스의 주요 저술에서 어떻게 상이하게 설명되고 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그 명제의 발전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1970년대 서구에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서술체계 변경과 ‘자본론’ 형성과정에 관한 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로스돌스키 이후에도 투홀스키, 만델, 브이고츠키 등이 ‘자본론’ 형성과정을 분석한 저술을 발표했다.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는 ‘자본론의 형성’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제1부부터 제5부까지의 전반부에서는 대부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의의를 규명하고 ‘자본론’, ‘잉여가치학설사’,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등과의 연관성을 해설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제6부와 제7부로 이루어진 후반부에서는 로스돌스키 자신의 정치경제학 이론을 개진하는 한편 힐퍼딩, 로자 룩셈부르크, 뵘-바베르크, 조안 로빈슨, 오스카 랑게 등의 이론에 대한 논평도 이뤄지고 있다. 이로써 로스돌스키는 1960년대 척박했던 마르크스주의 연구환경에서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진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거한 현실사회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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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년대 후반 처음으로 공개된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특별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로스돌스키의 시각은 2차대전 후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비판적이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동조를 받았다. 이들은 소련에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공개가 지연된 사실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면서 ‘자본론’에서와는 다른 획기적인 내용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일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들 저서를 근거로 마르크스를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헤겔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로스돌스키도 마르크스가 사용한 개념과 연구방법이 헤겔의 논리학과 다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헤겔의 ‘합리적 알맹이’를 취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인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반비판을 받았다. 또한 로스돌스키가 분석의 중심에 두고 있는 ‘자본일반’ 개념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나 이 개념과 평균이윤율, 경쟁 등과의 관계가 해명되지 않은 채 논쟁은 중단된 상태다. 이는 ‘추상으로부터 구체로의 상승’이라는 마르크스의 서술방법이 정확히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로스돌스키가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을 저술한 것은 당시 대부분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 의거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려는 실천적 관심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스돌스키의 이런 관심이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본정신은 현실을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관찰하던 마르크스의 이론적, 실천적 관심과 맥을 같이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고정된 결정체’가 아니라 ‘부단히 전환가능한 유기체’로 파악한 마르크스의 기본인식과 로스돌스키가 이 책에서 보여준 엄밀성을 계승하는 것이 21세기 정치경제학 연구에 임하는 기본자세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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