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전의 핵심 이슈는 ‘보수 대 진보’, ‘세대교체론’, ‘부패정권 심판론’, ‘낡은 정치 청산론’ 등이었다. 이 중 세대교체론, 낡은 정치 청산론이 호응을 얻었다.”
대선이 끝난 12월 23일 ‘주간조선’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이를 전후해서 이른바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일제히 세대교체, 아니 세대간의 균열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세대갈등을 사회의 주요 이슈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신세대의 환호와 구세대의 침묵과 볼멘소리도 대단했다.
최근에는 세대교체의 자리를 주류교체가 갈아치우고 있다. 장관인선을 전후로 해서 ‘新주류’라는 조어까지 생겨나는 등 ‘신주류 대 구(비)주류’라는 갈등구도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조선일보는 3월 18일자 사설에서 “주류와 비주류간의 힘의 균형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류란 노무현호의 엘리트들을 의미한다. 동아일보는 3월 초반 10차례에 걸쳐 ‘문화의 주류가 바뀐다’는 연재기획을 통해 사회 각분야에서 주류교체의 현상을 다룬 바 있다. 며칠 전까지 세대교체를 외치던 신문들이 이젠 주류의 자리까지 내놓고 뒤로 물러앉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석은 쏙 빼놓은 채 규정과 주장만 펼쳐지고 있으니 더욱 의심이 간다.
일간지의 지면을 통해 형성된 주류교체 여론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권의 주류교체가 사회 전반의 그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만흠 가톨릭대 교수는 “노무현호의 참모진과 장관인선이 과연 김대중 정부때보다 개혁적인 것인지, 아니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걸친 정치세력으로 타협적으로 구성된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해 최근 강금실, 이창동 등으로 집중된 시야를 넓혀서 전체의 그림을 보라고 주문했다.
그렇다면 주류담론이 왜 이렇게 설레발일까.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인선은 검찰로 표상되는 기득권력집단의 서열주의, 나눠먹기식 배타주의의 기반을 공개적으로 흔든 효과를 발휘했다. 이 사건은 주변부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 가장 강력하게 주류세력을 개혁코자 한 시도였다. 검찰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집단이기주의라는 원성만 샀을 뿐이다.
일간지들이 나선 것은 그 직후다. 언론은 노-강 연합을 주류의 위치로 급히 자리매김하고 개혁대항세력을 구주류라는 다분히 측은지심을 섞어 넣은 수사적 영역으로 피신시켰던 것은 아닐까. 검찰개혁을 통해 주류개혁을 시작하고 그것을 단계적으로 관철시켜나가야 할 판에, 상황종료와 게임아웃을 외쳐대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신주류 담론은 우리 사회의 계급적, 지역적, 성적 불평등과 지배-피지배 관계를 최소화하는 장치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 같다.
여론을 독과점한 언론의 담론정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한 일간지는 생활기사, 연예기사, 패션기사 등 가릴 것 없이 새로운 주류의 등장이라는 포맷을 사용하고 있다. 가히 주류에 세뇌당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실제 의원수가 많은 당이 ‘야당’이라는 것과, 구독자수가 압도적인 일부신문이 ‘비주류’가 됐다는 것처럼 맞고도 틀린 말이 어디 있을까.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는 요즘 여론을 가리켜 “3대 언론이 의존하던 기존 시장은 아직 크다. 이들 신문의 논조는 그런 사회세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고, 그런 목소리가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통해 쉽사리 바뀔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흙탕물을 튀기며 1백년 동안 흘러온 한국의 메인스트림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영화감독이 관료사회를 당황케 하는 모습은 변화의 시작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시작점이 완결점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것이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보수의 물결이란 넓고도 깊고, 그리고 세찬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진보다 보수다에 얽메이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노예 아님니까?
더구나 한국의 정치체제는 사람중심이고 이념(원래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중심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단어로 글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