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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교육개방을 해부한다
WTO교육개방을 해부한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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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양허안 제출로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서비스 협상이 초읽기에 들어선 가운데, 교육서비스 분야 개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 국제포럼, 비상시국선언, 33인 범국민 대표단 발족, 철야농성, 문화예술인 지지성명, 지식인선언, 범국민대회 등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교육은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교육 개방이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내용의 피켓과 구호들이 대학로, 시청,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의 대학과 도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인가. 교육개방이 공교육의 포기로 이어진다는 교육시민 단체들의 목 쉰 외침, 그 한 복판으로 들어가본다.

교육개방,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현대판 ‘트로이의 목마’

다가올 파고를 일찌감치 예상한듯 교육시장 개방을 놓고 교육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WTO 교육개방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상임대표 박거용 상명대 교수, 이하 공투본)는 지난 해부터 7개월이 넘도록 “교육의 상품이 아니다”라면서 교육 분야의 양허안 제출을 전면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양허안 제출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위와 다름 없다는 것.

공투본은 ‘교육개방’이 △교육의 상품화 △공교육의 붕괴 △교육불평등의 심화 △교육주권 상실 등으로 이어진다며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공투본에 따르면, 교육개방으로 인해 사립학교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 외국의 기업형 학교가 진출하고, 상업형 사학이 난립하게 되면 공교육은 심하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 로비가 판치는 교육 서비스 협상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에 의해서 WTO 내 교육 서비스 분야 개방이 진행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공투본은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한다. 2001년 미국이 각국에 전달한 협상 제안서마다 교육평가서비스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최근 진보교육연구소가 ‘교육개방을 반대하는 국제네트워크(E.I.N.F.S)’를 통해 입수한 미국의 교육 서비스 분야 ‘개방요구서’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타 국가에 “고등교육과 직업훈련, 성인교육, 그외 교육평가서비스에 대한 완전한 시장접근과 내국민대우를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투본은 미국이 교육평가서비스 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평가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의 ‘로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국제 무역 협상 담당 행정부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서비스기업연합(CSI)’이 평가·시험서비스 전문 기업 ‘국제 교육의 질 평가센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이들 기업의 요구가 협상에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또 기업에 의해 주도된다고 할 때, 한번 물꼬를 튼 교육 개방은 공교육의 시장화, 곧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국제교육포럼에 참석한 루이 베베르 프랑스 교원노동조합 교육연구소 소장과 로제 페라리 교원노조연맹 의장이 지적한 내용도 이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
루이 베베르 소장은 “미국의 서비스기업연합이 설치한 ‘전미 국제교육무역증진위원회’는 협상을 진행하는 미국 무역대표부를 지원하고 있으며, 평가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와 함께 작업한다”라면서 “서비스 교역의 세계화는 주로 기업에 의해 주도된다”라고 주장했다. ‘WTO’의 목적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설명이었다.

송권봉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은 “교육평가서비스 개방으로 기업에 의한 교육평가서비스가 국가에 의해 인증되면 자연스럽게 초·중·고등 공교육부문과 결합될 뿐 아니라, 외국의 기업에 의해 우리나라의 교육기관과 학생들의 학력이 평가되고 재단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충분한 검토없이 개방될 경우, 의도하지 않은 교육 종속 상태가 벌어진다는 주장이다. 이는 교육평가서비스 뿐 아니라 고등교육·성인교육 등에도 해당된다.

천보선 공투본 연구국장은 “WTO 내의 GATS가 ‘상업성’을 목적으로 교육을 다루는 것에 대해 전세계적인 거부감이 형성된 마당에, 부정적 의미의 교육 국제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논리는 근거가 빈약하다”라며 교육개방이 대세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교육이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교육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등 정부 기관은 난색을 표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허안을 내지 않더라도 협상에는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양허안 제출 거부가 여타 다른 국제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타냈다.

“교육 개방은 대세가 아니다”

김응권 교육인적자원부 국제협력담당관실 과장은 “교육개방이 곧 공교육 붕괴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미 현실적으로 거의 다 개방돼 있는데도 단지 양허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또 양허안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WTO 회원국으로서 협상에서 참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김 과장은 “미국이 교육평가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협상 테이블에 들어가야 개방 여부를 결정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개방의 실질적인 효과가 미지수인데다 개방에 따른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육 개방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정부와 교육시민단체들 간의 의견대립이 과연 조율의 문제인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하는 문제인지 검토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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