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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구조
여남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구조
  • 고정갑희 한신대·영문학
  • 승인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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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제도의 실행자인 정부의 성 인지적 관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새정부는 여남불평등 구조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역대정부에 비하면 강하다. 대통령은 대선 당시 호주제폐지를 위한 특별대책기구를 설치하고 보육료 절반을 국가지원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수위는 여성정치할당을 비례대표 50%, 지역 30%로 규정하고 민간기업 여성채용 촉진을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제안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실행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과제들이다.

건국이래 여성장관의 수가 가장 많다고 하지만 2명 더 늘어 4명이 됐을 뿐이다. 차관은 여전히 34명 모두가 남자들이다. 여성권한지수 64개국 중 61위인 우리 사회에서 정부개혁의 과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지면상 근본적으로 짚어야 할 몇가지만 이야기 해보겠다.

현재 여성계는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성매매문제는 방지법을 제정하는 것으로만 그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매매가 가능한 구조적인 모순들을 해결하지 않고 성매매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삶의 물적,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이 변화돼야 한다. 법제정과 함께 논의돼야 할 문제가 현재 성매매 피해여성들과 잠재적 피해여성들이 경제적 주체와 성적 주체로 설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여성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성매매 근절은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에 대한 구조적 개혁으로 먼저 비정규직 차별철폐가 실행돼야 한다. 그 이유는 여성노동자 5백60만명 중 비정규직이 70.7%가 되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죽은 중앙로역 세 명의 청소부 여성들은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하철공사 공동분향소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와 같이 여성노동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감수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는 법규가 필요하며 근로기준법도 고쳐야 한다. 기간제 고용의 폐혜를 극소화시키고 임시 노동자에 대한 균등처우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공공부문부터 명목적 혹은 탈법적 비정규직을 일소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을 축소하는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모성보호나 해고제한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법률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 동안 정부측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직종이 광범위해 법 적용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말만 계속해 왔다.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임금지급이 돼야 한다. 현재는 이혼할 경우에만 재산의 30%로 계산이 되고 있다.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현 남성가장중심의 경제는 전업주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문제를 거론하면 현실적으로 개혁가능한 것을 제안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여남평등을 위한 구조적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 여성들을 경제적 주체로 세우지 않으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능하다. 현재의 조세제도만 봐도 가사노동과 관련한 불평등요소를 볼 수 있다.

여성노동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성 인지적 관점에 입각한 개혁이 필요하다. 교육부와 여성부가 주축이 돼 여성차별철폐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전 교과과정과 교과내용에 대한 개혁에 정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남자다움·여자다움과 가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수정하고, 남성중심의 역사와 도덕 교육을 개혁하고, 교육환경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성차별을 막을 수 있는 성교육을 초등학교부터 정규과목으로 포함하는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성교육이라 함은 기존의 “순결에서 피임까지”식의 현행 성교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확대된 개념의 성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교육자 육성책도 새롭게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성정책 실현, 평등사회로의 첫걸음

참여정부 20대 기본정책 중 하나는 차별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지원하고 성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의됐던 단골메뉴지만 변화는 더뎠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이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녀평등이 가시적으로는 한발짝 나아간 것 같다. 4명의 여성장관, 게다가 여성 법무부 장관 기용이라는 파격적인 인사는 여성계의 파워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정폭력 문제는 여성문제에 양지와 음지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계의 주장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돼 왔다. 다른 어떤 사안들보다 현실화·법제화될 수 있는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에 이미‘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현실적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남녀고용 및 직무 평등화 주장은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고용안정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인력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성매매방지법 제정 및 호주제 철폐다. 이 두 사안은 한국 사회의 평등 문화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호주제 철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때부터 조기 폐지될 가능성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 때 제시된 대안은 개인별 신분등기제인 1인1적제. 지은희 여성부 장관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호주제 철폐에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현실화 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고정갑희 한신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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