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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봄을 만나다
해남에서 봄을 만나다
  • 안치운 /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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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3월 초 전남 해남을 다녀왔다. 해남에는 야트막한 산과 바다가 실매듭처럼 붙어있다. 매듭과 매듭 사이가 우리나라 지도의 맨 가장자리가 된다.

바다가 눈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다 싶으면 커다란 방죽들이 마을과 마을 사이에 손거울처럼 가로놓여 있다. 여기서는 마을도 시도때도 없이 물에 거꾸로 잠긴다. 삼월 초하룻날, 마을이 방죽 겉면에 봄바람에 가지떨 듯 흔들리고 있었다. 저수지의 테두리는 밭과 붙어있다. 배추밭과 파밭 사이사이에 죽은 이들의 영원한 집인 무덤들이 있다. 여기서는 만나는 모든 것이 서로 포개져 납작해진다.

길과 사람, 마을과 산, 죽은 자와 물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붙이처럼. 나는 수직으로 산을 오르는 경험과 다른 평면적 경험을 여기서 처음 해본다.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 따라서 내가 지금 등반이나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을.

나는 해남 달마산과 마을들을 ‘홍길동전’의 율도, ‘허생전’의 공도로 여기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해남을 비롯한 다도해는 변방에 우짖는 민중들이 살던 곳이었다. 중심으로부터 멀어졌고, 지방 관리들의 탐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뭍에서 바다로 도망치는 곳이기도 했으리라.

해남 옆 강진에 유배되었던 정약용은 그의 ‘다산시선’에서 ‘哀切陽’이라는 시로 백성들의 고통을 읊었다. 해남 땅을 구석구석 가보기 위해서는 한 마리 낙타처럼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한다. 제 스스로 길이 돼 삶의 옥답과 사막을 두루 걸어가듯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 허약한 두 발은 짐승의 네 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 소설가 정찬의 말은 해남 바닷가를 걷는 내게도 다가왔다. 혹독한 부역과 진상에 시달린 민중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삼자면 해남 달마산에서 바닷가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세워 신라인의 자치부락을 만들고 백성들을 구휼한 곳이 해남 옆 완도가 아니었던가.

만약 따뜻한 봄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나는 단연코 해남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해남하면 다들 윤선도, 녹우당, 두륜산, 땅끝을 떠올리는데 해남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해남은 알려지지 않은 달마산 아래 산자락 마을과 어란, 해원과 같은 이름이 고운 바닷가 마을에 있다. 어란(혹은 어란진) 마을은 달마산 앞에서 산정으로 미끌어지듯 이어지는 길 끝에 있다. 문득 내 나이가 마흔을 넘었다는 것을, 참으로 봄바람, 봄볕이 맛있고 살찌운다는 것을 어란리 마을 노인정 앞마당에 서서 건너편에 있는 어불도와 김양식장이 널려있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느꼈다.

해원리에 있는 해원 저수지를 둘러보면서 내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봄바람과 봄볕에 내 몸이 경황없이 떨고 있었다. 아, 참 좋다. 호흡…숨이 차다. 숨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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