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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 고조…알렝 델리셍 주도
한국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 고조…알렝 델리셍 주도
  • 파리 = 김정아 객원기자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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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계 동향 : 프랑스의 한국학 현황②-한국학, 대학에서 자리잡기 시작하다

동아시아에서 부르주아 계급을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올해 프랑스사회과학대학원(EHESS)에서 진행 중인 수업 ‘동아시아 사회사’에서 제기하는 질문이다.

지금 프랑스에서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은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은 7대학과 동양어문대학, 한국어 수업이 개설된 대학은 리옹3대학, 보르도3대학, 르아브르대학 등이다.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이다. EHESS에서 수준 높은 한국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동시에 이례적인 일이다.

EHESS에 정규 한국학 강의가 가능해지기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과 정성배 교수를 비롯한 재불 한국인 학자들의 공이 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이 미국에 편중(30개 이상의 교수 급여 지원)돼 있는 상태에서 EHESS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기관이다.

아쉽게도, 프랑스가 주체가 된 한국학 및 한국인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만 EU 국가 중심의 아시아유럽재단이 아시아 국가와 유럽 국가가 공동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유럽한국학협회가 정기적인 학회 개최와 뉴스레터 발간, 그리고 유럽어권 대학의 한국 관련 학술논문 정리 작업 등을 통해 연구성과를 정리하는 정도이다.

프랑스 학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미미한 것은 현실적·역사적 정황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지금 프랑스의 일차적 관심사는 유럽연합과 미국이고, 다음은 여전히 실리와 분쟁이 오가는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다. 동아시아로 관심을 돌린다 하더라도, 중국을 통해서 동양과 만났고 일본과 식민지 동업자 관계를 맺었던 프랑스가 한국에 대해서 중대한 연구 동기를 찾기는 어렵다.

바로 이런 정황이 프랑스 한국학의 가능성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실용적이고 타산적인 지역학 연구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은 이념적 사유를 전개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EHESS의 한국학 수업들은 바로 그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아시아 사회사’ 진행자인 알렝 델리셍 교수는 동 대학원에서 ‘식민지 한국의 사회문화사’와 ‘다학문적 한국연구 세미나’를 함께 담당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한국학자다. 최근 학회에서 ‘한국인 학살과 1923년 동경 대지진’, ‘식민지 한국의 초기 대중 문화’ 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EJEAS’ 특집호 ‘20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초기 대중문화’를 편집하는 등 프랑스의 취약한 한국학계에서 고군분투하며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EHESS에서는 매년 새로운 강의안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접근 방식의 쇄신과 자료 발굴은 세미나 진행자의 지속적인 과제이다. 델리셍 교수 역시 6년여에 걸쳐 한국의 근·현대를 강의하면서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해갈 수 있었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한국의 민주적 역동성이다. “프랑스 사회가 정체돼 있고 프랑스 시민 정신이 사라졌다”라고 판단하는 그는 최근 한국의 대선 결과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한국의 지식인이 프랑스의 민주적 인프라를 동경하는 것은 일종의 ‘신비화’다. 그런 식의 옥시덴탈리즘이 한국 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이 될 수 있는가 여부는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한국사회의 개혁이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학자로서 그는 한국 내의 한국학 연구방향에 대해서 불만도 갖고 있다. 그가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에 대해서다. ‘선악구도를 전제하는 한국의 국사 기술’에는 특히 난감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가 추구하는 한국사회의 역사기술은 유럽의 미시사 방법론과 일맥상통한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료 분석을 통해서 밝혀진 미세한 관계 변화 속에서 사회 변화의 흐름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정한 방법론의 이면에서 연구 대상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프랑스인들이 한국을 동시대적 존재로 느끼게 된 것은 88올림픽 이후였고, 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 한국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 프랑스의 한국학자들은 대부분 특이한 개인적 이력을 갖고 있다. 결혼 등의 사적 관계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편 델리셍 교수의 경우에는 80년대 후반의 한국 체류 경험이 학문적 이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민주화 열기에 동참하며 “한국의 민주적 열정을 목도하고 역동적 사회변동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회상이다.

비서구 사회에 대한 분석을 서구 사회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델리셍 교수의 한국학 연구도 프랑스 인류학 전통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한국 모색을 비롯한 최근의 프랑스 한국학은 동양의 신비에 기초한 이국적 전통문화에 대한 동경과는 확실히 달라 보인다. 그가 한국사회에서 프랑스 시민정신을 고무시킬 정치적 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동아시아의 특수한 상황을 과대 평가한 오리엔탈리즘의 정교한 변이형에 머물 것인가. 그 답은 한국이 지금 만들어 내고 있는 오늘의 역사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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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 2004-03-22 22:14:07
그의 세미나를 들었던 학생입니다. 별 얘긴 아닙니다만, 이름의 발음은 모두가 부르는대로 지켜야 할 것 같아서 한 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