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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피하는 수줍은 학자 “이슬람 본연을 가르치겠다”
언론 피하는 수줍은 학자 “이슬람 본연을 가르치겠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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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스케치 : 7년만에 서는 강단, 정수일 교수의 첫수업 풍경

"이슬람교도가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입니다.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 다음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나아지리아, 이집트 순이지요. 이라크에 있는 이슬람교도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6일 오후, 고려대 인문강의동에서는 ‘서양사특강Ⅱ’ 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한창이었다. 이 수업은 97년 단국대에 재직하던 중 간첩혐의로 체포된 이후, 7년만에 다시 강단에 서게된 정수일 교수의 강의. 비록 일주일에 세 시간, 시간강사의 신분이지만 그가 다시 강단에 선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기자가 강의실을 찾아갔을 때는 수업 시작 바로 직전이었다. 조교가 강의계획서를 나눠주고 학생들은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강의실과 하나 다를 바 없는 풍경. 오후 2시, 정 교수가 강단에 섰다. 50여명이 넘는 학생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자신이 예전에 단국대에서 강의했었다는 것만을 말했을 뿐, 다른 부차적인 설명 없이 수업 설명에 들어갔다.

16주로 짜여진 수업 중 이슬람사원을 견학할 것을 계획한 것을 제외하면, 강의와 토론으로 이뤄진 일반적인 수업이다. 교재는 그가 쓴 ‘이슬람 문명’(2002, 창작과 비평사). 그는 학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이슬람문명’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지, ‘왜’ 이슬람에 대한 강의를 듣는지 학생들에게 묻고 또 귀 기울여 대답을 들었다. 강압적인 종교, 남녀차별, 전쟁, 폭력, 테러 등을 떠올리는 학생들의 대답 속에서 일그러진 이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양사학과의 전공과목으로 개설됐지만, 이 강의에는 서양사학과, 동양사학과, 한국사학과 등 역사학 전공생들을 비롯해 정치외교학과에서 화학공학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학 내에서는 좀처럼 개설되지 않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수업이기도 했거니와, 이라크전에 대한 긴장고조도 큰 원인이었다. 정교수 개인에게 쏟아지는 관심도 적지 않았다. 왜 이 강의를 듣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이 “저는 이슬람 문명에는 관심이 없는데요, 선생님께 관심이 있어 수업 들어왔어요”라고 다소 당돌하게 대답했다.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없으면 어떡해”라며 너털웃음을 날리는 정 교수.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려니,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말을 건넨다. “첫 수업은 일찍 끝나는 것 아닌가요?” 정 교수는 예의 웃음을 지으며 “여유가 없어, 당장 전쟁이 일어날 판인데”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슬람 문명의 특징과 개념부터 설명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에 말투 구석구석에는 북한식 억양이 나타났다. 되짚어보면 12년을 아랍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이번 수업은 그가 유창한 한국어로 강의한 첫 시간은 아니었을까.

는 강의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바로 이슬람 문명의 본연을 강의하겠다는 것. 일부다처제이면서 정교일치를 주장하는 특유한 문화를 가진 이슬람.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문명이 혼재하고 있는 이슬람 현재의 모습을 조명하기보다는, “이슬람문명에 대한 왜곡된 오해를 바로잡고, 타자를 이해하는 지평을 넓혀나가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라크와 북한, 당대에 마주한 두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낮은 목소리 탓인가,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1시간 수업 후 쉬는 시간,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기자는 정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번도 그의 입에서 직접 이번 강의에 대한 말은 들은 적이 없었기에, 그가 직접 말하는 감회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정교수는 완곡히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강의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의 학교에 와서 강의를 하는데, 미안해 죽겠어요. 계속 과사무실에 문의전화 오고, 내가 불편해요”라며 손을 내젓는다. “행여나 언론에서 와있으면 어떡하나 계속 마음 졸였어요. 학생들과 한 약속을 처음부터 깰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관심 가져주는 것은 고마운데, 그냥 모른척 해 주세요.” 큰 웃음으로 기자를 대했지만,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자신에게 강의를 준 학교에 피해가 갈까봐 조심스러워했다. 아직 법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그는 계속해서 이슬람 문명에 대한 개론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3시간 연강인 수업 중 2시간을 채우고서 수업을 끝냈다. 몇몇 학생들은 강의에 대한 질문을 건네고, 또 많은 학생들은 썰물처럼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길, 정 교수에게 강의를 끝낸 첫 소감을 물었다. “오래간만에 수업을 하니 힘들지만 그래도 학생들을 보니까 좋지요. 고려대에서는 처음 수업을 하는 것이라, 학생들과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 모습은 교정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학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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