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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푸르게? 아니면 명성을 푸르게?
세상을 푸르게? 아니면 명성을 푸르게?
  • 번역·정리= 이지영
  • 승인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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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가논쟁 : 대학으로 지원되는 기업 자금, 과연 득인가 실인가

연구비가 필요한 대학과 연구성과가 필요한 기업 사이의 산학협동 사례는 찾기 어렵지 않다. 프린스턴대와 포드사, MIT와 듀퐁사의 관계는 오래동안 지속된 대표적인 사례. 최근에는 스탠포드대와 미국 최대의 석유 회사 엑손사가 대형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최근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에 자세히 보도됐다.

사실 대학과 기업의 협동 프로젝트에 대해 그 장단점을 정확히 언급하기는 어렵다. 스탠포드대의 새로운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순수 지원금액만 2억2천5백만달러(한화 약 3천억원), 10년간 지원될 이 프로젝트는 지구의 기후와 에너지와 관한 것이다. 주요 투자 기업은 엑손사. 그야말로 ‘혁명적인’ 지원인 까닭에 대학관계자들은 두손 들어 환영하지만, 일부 연구자들과 환경 운동가 사이에는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대학의 입장으로서는 엄청난 연구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연구인력 수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수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탠포드대 안팎의 학자들은 왜 엑손사가 이 연구에 막대한 돈을 지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비록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지금까지 지구 온난화 현상에 관심이 없었던, 오히려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결과에 대해 반론을 제시했던 기업이 태도를 바꾼 듯 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엑손사의 플래너리 씨는 “여전히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불확실하다’라고 생각하는 회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경제적인 효용성이 충분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에너지 문제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창출했을 때, 그 대안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는 충분히 상업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이 프로젝트는 ‘기후 변화’를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태양열, 연료 전지 등의 대체 에너지는 경제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에너지 수요도 충족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엑손사는 연구팀에서 이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동시에 화석연료를 가장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했다. 순수한 과학적 연구와는 완전히 다른, 상품화 될 수 있는 획기적인 뭔가를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많은 학자들은 스탠포드대가 연구 조건과 이후 연구 성과 운용에 대해 분명한 약속을 맺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오얼 교수는 “매년 엑손사가 연구의 주제와 연구비를 결정하고, 세부적인 주제 결정과 연구팀 결성은 대학이 담당한다”라고 밝혔다. 스탠포드대가 학문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 연구 방향을 수정하는 교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 현실. 스코로우 프린스턴대 교수는 “만약 기업체들이 연구 방향에 대해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된다면, 오히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뿐만 아니다. 환경단체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 자문위원회로부터 찬사를 받은 이 프로젝트가 생산할 결과만을 믿고 현재 이산화탄소 방출에 대한 적극적인 법률안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학 내부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바디는 “엑손사가 연구 방향 설정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불과한 이 프로젝트가 기후 변화와 관련 있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라는 입장을 대학신문에 밝혔다. 이것은 학생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스탠포드는 기후 연구의 사기꾼이 돼 가고 있다”라는 비난의 여론이 일어났다. 

또한 대학의 연구 결과 상품화될 수 있는 특허를 따냈을 경우, 5년 동안은 특허에 대한 권리는 기업에게 있다. 물론 기업은 특허에 대한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는 “환경에 관한 특허가 5년 사이에 결실을 볼 수 없기에 대학의 입장에서 손해볼 것이 없다”라는 입장을, 기업에서는 “5년 동안의 권리는 합리적인 보상”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양자의 이득을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학문적 영역이 침해되고 있다고 느끼는 학자들이 있는 이상, 기업의 지원을 받은 연구가 장미빛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눈앞에 닥쳐온 대학의 재정문제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업과의 관계에서 연구 영역에서 대학이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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