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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참여 위한 고육책?…객관성 없는 평가될까 우려하기도
수업참여 위한 고육책?…객관성 없는 평가될까 우려하기도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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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둘러싼 시각들

“한문 수업 들으려면 꼭 ㅇ 선생님 과목 들으세요. 정말 대학 와서 이런 선생님 처음 봅니다. … 선생님은 가운데에서 돌아다니시며 수업을 하세요. 학생들이 쭉 돌아가면서 본문 읽고 해석하고(예습 필수) 또 나름대로 파악한 의미 같은 것 토론한답니다. 특히 시 배울 때는 직접 우리가 시도 쓰구요.…싫어했던 고문도 이제는 다시 보게 되었어요. 초강추(초강력 추천의 준말)!” -국립S대 인문계열학과 게시판에서 -

“툭하면 휴강이고, 일찍 보내고. 학생 입장에선 크게 나쁠 게 없나? 결국 중간고사도 건너뛰더니, 기말고사 하나 가지고 한 학기 성적이 결정됐음. 하여튼 강사가 별로 성의가 없어 보여서 굉장히 실망했던 수업입니다. 그땐 자기가 바빠서 그랬다고 그랬었는데. 이번 학기엔 좀 다르려나.”

“강의시간 대부분이 자기 자랑, 부인 자랑, 딸 자랑이죠. 그리고 교과서를 대충 읽습니다. 혼자서 그냥. 우리 나라 1호 ○○학 박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학점 따려고 하면 충분히 들을 만하죠. 시험은 교과서 목차만 외우면 됩니다. 큰 문제 3~5개를 내고 서술하라고 하는데 목차내용을 순서대로 쓰고 한 줄씩 대충 문맥만 맞추면 됩니다. 그리고 출석률 1백%면 시험점수로 받은 성적에서 한 그레이드를 올려주지요. 1학년 때 필수전공 중에 그냥 학점 메꾸기에는 최고의 과목이라고 할만하죠.” - 사립 S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새 학기를 시작할 무렵이면 학생들은 자신이 이번 학기에 들어야할 과목들에 대한 정보와 입소문들을 챙기느라 바빠진다. 이번에 수강할 과목이 자신의 생각했던 내용과 다르거나 기대했던 수업 방식이 아니라면 다른 과목으로 대체하거나 수강을 취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에 대한 정보는 그간 선배들의 입을 타고 전해져오는 ‘傳’의 형태가 전부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젊은 세대들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개인적으로 취해오던 사담들은 가상공간으로 모여 하나의 장을 이뤘다.

선배 한마디에 신입생 대부분 수강포기

강의에 대한 정보 제공의 일환으로 강의계획서가 수강 신청 전에 제공되지만, 강사가 늦게 배정되는 교양과목이나 일부 전공과목은 수강신청기간이 끝나가도록 백지 상태로 올라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강의명이 모호해지는 최근의 추세도 이에 한 몫 한다. 퀘퀘 묶은 냄새를 주는 듯한 과목의 명칭을 새로이 바꿔 언뜻 강의명만 보고서는 내용을 추측할 수 없는 과목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업 방식과는 전혀 다른 수업 방식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신입생의 경우는 더욱 의존적이다. 같은 과 선배의 한 마디로 상당수의 신입생들이 미리 신청했던 과목을 수강 취소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종종 벌어진다. ㅈ대의 김민재 군(신문방송학과·4)은 “대학에서 강의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교양 과목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수업 방식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과목이라도 교수에 따라 내용과 한 학기 수업의 질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개인에서 총학생회 차원으로의 ‘강의 바꾸기’ 운동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에서는 ‘내 수업은 내가 가꾼다(이하 수업)’라는 모임을 결성, 강의정보를 모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강의마다 자원한 모니터 학생을 중심으로 강의 분위기, 교수법, 강의 방식 등의 자료를 취합한다는 것.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학생들에게 참고 자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 정진경(인문계과학군·3) 대학개혁국장은 “자신이 듣고자 하는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 욕구가 점차 높아가고 있다. 학생들의 욕구 충족의 일환으로 텍스트, 강의 진도 등을 기재한 강의계획서가 제공되고 있기는 하지만 교수의 강의 스타일, 수업 분위기 등을 알아보기에는 불충분함을 많이 느낀다”라고 수업 모임을 갖게 된 이유를 밝혔다.

한양대 총학생회도 학생들이 강의에 대해 느낀 점을 자유토론식으로 정리해 책자로 낼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서강대는 정보 포탈 커뮤니티에 ‘강의평가’, ‘교수 평가’ 등의 게시판을 따로 개설해 놓았다. 중앙대 역시 커뮤니티에 ‘좋은 강의 만들기’라는 게시판을 마련해 학생들이 강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모두 취지는 보다 질 좋고 알찬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자는 것.

본질흐리는 주관적 판단 자제해야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가장 손꼽히는 것은 객관적인 기준 마련이 어렵다는 점. 개인의 감상에 그치는 평가는 강의를 선택하는 잣대가 아니라 오히려 강의와 담당 교수와의 괴리를 넓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강의 평가란에도 객관적이기보다는 ‘재미없다’, ‘발표를 너무 많이 시킨다’, ‘교재가 너무 어렵다’, ‘수업 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적다’, ‘시험을 못 봐도 점수는 잘 준다’ 등의 이유를 들고 있어 강의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고 능동적으로 강의에 참여한다는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종종 교수에 대한 인신공격 등의 비방도 일어나 적잖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인기 위주의 강의에만 학생들이 몰리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ㄱ 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주로 가치를 두는 것이 ‘강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농담을 얼마나 잘하는지, 레포트와 텍스트의 양을 학생들의 구미에 맞게 던져주는지 등 주변적인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강의 평가라는 이름 아래 학점 이수가 쉽고 공부를 덜 하는 학문을 고르는지도 모른다”라고 꼬집으며 “사실 강의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연구가 직업인 대부분의 교수 입장에서 엔터테이너의 역할까지 하기란 솔직히 버거운 일”이라며 심경을 털어놓기도 한다. 화려한 언술 뒤에 강의가 부실한 경우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학생들의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실적에 쫓겨, 잡무에 밀려, ‘강의라는 기본적 책임에 소홀하지 않았는가’라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물음표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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