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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의 창으로 보는 세상
알콜의 창으로 보는 세상
  • 이재열 경북대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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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술의 경제학’

“양주는 노, 소주는 오케이, 오십세주까지는 그런 대로…”

이것은 서민의 이미지로 떠오른 노무현 대통령의 술에 대한 생각이다. 누구든 혼자서야 어떤 술을 마시든 관계할 바는 아니지만, 공인의 자격으로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미리 예방하자는 뜻에서 평소에 갖고 있는 대통령의 생각을 귀띔해주는 정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듯하다.

술이란 즐겁게 그리고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보면 해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정도를 스스로 자제하기 어렵다. 누구나 힘들고 괴로울 때에는 술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흥겹거나 즐거울 때에는 더더욱 많이 마시며, 그러다가 정도를 넘으면 망신살로까지 이어진다.

분위기에 따라 술을 마시다 보면 스스로 자제하기 어려워지고 나중에는 몸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쯤에 이르게 되면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을 개시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해로운 물질을 빨리 바깥으로 배출하려는 생리작용이 그것이다.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거나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몸밖으로 내보내려 애쓴다. 이러한 생리작용은 사람이 식중독을 얻었을 때에 구토와 설사로 몸을 지키려는 현상과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는 방법은 물론 술의 이용과 그 효과에 이르기까지 술과 관계하는 모든 과정이 문화로 이어져왔다. 술의 종류와 그에 따른 문화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그리고 지리적 환경과 생활관습에 따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분화됐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 술이 갖고 있는 분명한 공통점은 모든 술은 미생물인 효모의 발효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과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인공적으로 술을 합성해내지는 않는다. 술은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로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제까지 사람들이 발전시킨 발효공학 덕분에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 주위를 잠시만 둘러봐도 술을 비롯한 모든 문화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생각 또한 술을 즐기는 멋보다는 오히려 시간과 돈의 영향에 따라 술을 마시고 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 하더라도 내일 일을 걱정해야 하고 또한 자신과 가족을 생각해 주머니 사정까지 헤아려본 후에야 비로소 시간적인 여유와 돈에 맞춰 술을 마시게 되는 경향이 크다. 이처럼 술의 문화에 있어서도 경제적인 조건이 술의 종류는 물론 술을 마시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변해가고 있다.

모든 술은 효모의 발효로 얻는 것이므로 곡식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그대로 마시는 것을 발효주라 한다. 대표적인 발효주는 막걸리를 비롯해 맥주 그리고 포도주를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발효주는 알코올의 농도가 비교적 낮으므로 알코올의 농도를 높이고자 증류 과정을 거쳐 증류주를 만든다. 증류주라 하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것이 아니라, 저장과 가공 과정의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므로 이들의 경제적인 가치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말하는 양주는 증류주를 가공 처리해 경제 가치를 높인 것을 말하는데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오기에 그렇게 부른다.

이에 비해 소주는 증류 알코올을 희석시켜 만든 것이기에 경제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물론 알코올의 농도는 양주가 소주에 비해 두 배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구입가격 차이는 10~20배에 이르고 더 나아가 어디에서 마시느냐에 따라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맨 앞에서 인용한 이야기는 술의 종류나 알코올의 농도보다는 술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언급한 것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태어나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있는 술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문화로까지 크게 발전했다. 우리 문화 속에도 수많은 종류의 전통주가 살아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 속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양주가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역사와 함께 지켜져 내려온 술 문화가 있다 하더라도 술의 경제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화라 하겠다. 굳이 술의 경제성만 앞세울 것이라면 차라리 “반주는 오케이, 2차는 노”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건전한 술 문화를 바라는 것이 오늘날의 술 문화에서는 그저 희망에 불과한 것일까.

이재열/ 경북대·미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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