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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여성의 적은 여성?
문화비평 : 여성의 적은 여성?
  • 윤형숙 목포대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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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가부장적 담론의 족쇄에서 벗어날 때

윤형숙
목포대·문화인류학

노무현정권의 내각인사에 ‘파격’이라는 반응이 크다. 성, 연령, 서열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4명의 여성이 장관으로 기용됐다.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장관의 기용은 노무현정권이 여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역대정권의 여성장관 기용 때에 으레 한번쯤은 거론되는 행정과 실무경험의 미숙이라는 비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여러 측면의 ‘파격’에 정신이 팔려 여성장관의 자질문제까지 미쳐 생각할 틈이 없어서인가. 이유야 어쨌든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는 말이 벌써 현실화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실천은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몇몇 고위직 여성의 기용이나 ‘여성의 세기’라는 ‘구호’에 의해 쉽게 해결될 수 없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지만 여성의 외모와 옷차림 등에 대한 공치사를, 심지어는 성희롱적 발언을 ‘친여성적’이며 ‘양성 평등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아가 여성들을 갈라놓기 위해 일부 여성에게 ‘친여성적’ 아부성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참 좋은데 그 여자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등 자신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는 동료여성을 칭찬하면서 다른 동료여성을 비난한다. 이런 언행은 때로 여성을 길들이는 당근과 채찍으로 기가 막힌 효력을 발휘한다.


얼마 전에 만난 중견급 은행간부인 한 여성은 자신의 부드럽고 여성적인 행동 덕분에 한번도 차별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부드러운 태도에 남성동료들이 호의적으로 잘 대해 주는데 오히려 동료여성들이 빡빡하게 굴 때가 많단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있지 않아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말이다. 고백컨대 여자동료에게 너무 화가 나고 섭섭했을 때 나도 몇 번은 무심코 써 본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은 너무나 억압적이고 교묘하다. 아직도 아침 TV 드라마에 단골 주제로 등장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혹은 시누이와 올케의 갈등관계처럼 적대적인 여성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여성문제의식에 투철하지 않더라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올케와 시누이간의 갈등을 보면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을 연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의 공적활동이 제한된 전통적 가족구조 안에서 남성의 애정과 충성심이라는 동일한 자원을 두고 벌이는 여성들간의 경쟁의 결과라는 것쯤이야 여성뿐 아니라 ‘골치 아픈 집안 여자들 싸움’에 애써 무심해지려 하는 남성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것이다.


여성의 공적활동이 늘어나면서 공공영역에서 여성들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다음과 같은 여자 강사들의 경험담은 교수사회에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전임 여교수 밑에서 몇 년 동안 그 교수가 맡기 싫어하는 강의를 열심히 맡아준다. 나아가 전임 여교수가 책임연구원으로 된 프로젝트의 제안서 작성에서 연구수행, 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딱갈이 노릇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런데 막상 신규전임을 뽑을 때는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이런 경험담을 이야기한 후 후배들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라고 말한다.


비슷한 사례는 모르긴 몰라도 남자교수 수가 몇 배 더 많으니 남자 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는 남자의 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신규임용에 영향력이라는 권력을 가진 기성교수가 학교에 자리를 찾고 있는 힘없는 강사들을 이용하는 못된 사례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경우도 많은 부분은 권력자와 피권력자, 기득권자와 언더독의 관계가 성립되고 유지되는 방식으로 설명돼야 한다. 젠더는 이 둘 사이의 불평등한 구조적 관계에 개입하는 중요한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무관한 이야기 같지만 노무현정부의 여성장관 임명문제로 돌아가 보자. 남성들이 여성장관들의 임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행정경험 미숙’이란 말로 딴지를 걸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이제 여성들이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무조건 환영하는 것에서 진일보해 이들이 과연 임명된 고위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가를 활발하게 공론화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 여성의 현실에서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그래도 이런 바람을 가져보는 것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가부장적 담론의 족쇄를 능동적으로 풀어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기대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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