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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조와 자생풍수에 대한 학계 평가
최창조와 자생풍수에 대한 학계 평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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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술에서 사상풍수로…선언에 그친 이론

자생풍수에 대한 학계 평가를 정리하는 일은 실로 지난하다. 이 어려움을 몇가지로 나눠보는 것도 자생풍수의 위상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첫째, 제도권 풍수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도 거의 모두 최창조의 직계 제자이거나 사숙한 이들이다. 둘째, 그러다 보니 풍수를 ‘부전공’으로 하는 인접학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지리학, 역사학, 윤리학, 조경학 등 연관자들의 목소리는 한계가 있다. 동어반복적인 인상적 코멘트는 가능하나, 더 이상의 비평적 목소리들은 없다. 셋째, 최창조의 풍수사상이 학문(사이언스)의 언어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전언에 가깝기 때문에 분석적인 접근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은 자생풍수를 잇는 후속타를 불발하게 만드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학문적 구체성을 요구하는 제도권 학자들의 배척심리를 키우는 원인을 제공해왔다.

학문화의 길 스스로 포기
풍수사상에 대한 제도권의 냉대는 전통이 깊다. 1994년 ‘한국사 시민강좌’ 제14집에서 역사학계와 지리학계에서 최창조의 풍수작업에 맹공을 퍼부은 이후, 최근 이기백 전 서강대 교수는 저서 ‘한국전통문화론’(일조각 刊)에서 “최창조가 ‘풍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상, 그가 배척하는 ‘잡술 부스러기 풍수’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게 명백하다”며 배척론을 편 바 있다. 또한 자생풍수 자체의 학문적 성격에 대해서도 의문의 눈초리가 던져지고 있다. 중국의 이론풍수를 우리의 풍토에 맞게 수용한 도선풍수에서 자생의 연원을 더듬는 역사적 작업, 풍수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꿈꾸는 사상이라는 점을 裨補풍수를 통해 역설한 초기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진정한 명당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식의 아포리즘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이다. 그것은 최창조가 1991년 학계를 떠나 풍수학의 학문적 제도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공감을 사고 있는 부분도 많다. 김기현 전북대 교수(윤리학)는 “풍수사상을 전통 지리사상이나 환경철학과 연관시켜 살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는 입장이고, 이문종 공주대 교수(지리학)는 “과거로 올라갈수록 우리의 생활과 정신세계에 미친 풍수의 영향은 크다. 최창조로 인해 역사적 작업에서 풍수사상의 존재를 더욱 고려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풍수강사로 더 이름이 높은 김두규 우석대 교수(독문학)는 “풍수를 땅에 대한 전통적인 지혜라고 하는 자생풍수의 논리는 국토 전역을 유기체로 파악, 환경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한다. 조용헌 원광대 교수(불교학)는 “최창조에 의해 풍수는 학문적 영주권을 얻었다”며 “풍수 가운데 인간의 영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부분이 있는데, 최 교수가 건강과 영성이라는 풍수의 밝은 부분을 되살려” 풍수의 이미지를 쇄신시켰다고 본다.

자생적 환경철학의 가능성
서구에서도 지난 10년간 풍수에 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 풍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윤홍기 오클랜드대 교수 등 한국학자들도 풍수이론가로 활약중이다. 해외의 풍수는 인테리어 풍수라 해서, 정원가꾸기 등 삶의 보다 나은 조건과 건강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양택풍수를 주장하는 최 교수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세계사적인 흐름과 같이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평가를 종합해볼 때, 자생풍수의 功過는 몇가지로 나눠진다. 우선 음지에서 기형적으로 자라온 풍수를 양지식물로 거듭나게 해, 전통사상을 계승했다는 점, 그리고 지리학, 조경학, 윤리학 등에서 풍수적 요소를 고려하게 함으로써 학문의 영역을 넓힌 점, 또한 땅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현대인의 삶과 죽음의 문화를 성찰적으로 만들고, 이를 자생적 환경철학이라는 측면으로 이끌고 있는 점이 긍정적인 측면이다. 다만 자생풍수라는 나무가 좀더 세부적인 뿌리와 이파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샤머니즘화한다는 비판도 여기서 제기되는데, 과거 여러 문헌에 흩어진 전통 풍수사상을 발굴해서 합리적인 이론과 체계로 만들어나가는 측면은 약하다는 게 대체적인 충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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