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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티 번역 오류 많다…핵심용어 왜곡 전달해
퐁티 번역 오류 많다…핵심용어 왜곡 전달해
  •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 승인 200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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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메를로 퐁티의 『지각현상학』(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刊)에 대한 유감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강사

작년 12월에, 그러니까 번역출판된다는 소문이 난 지 7년 정도가 지나서 드디어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Ph nom nologie de la perception)이 완역 출판됐다. 현상학의 핵심 고전인 이 책이 드디어 한국어 독자층에 다가가게 된 것이라, 우선 역자 류의근 교수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필자는 역본에 대해 괴로운 심사를 감출 수 없다. 그것은 첫째, 메를로-퐁티 사유의 흐름에 대한 역자의 입장이 필자와 맞지 않은 대목이 꽤 있기 때문이고, 둘째 원전과 대조해 볼 때 드러나는 역본의 확실한 오역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몇 가지 역본의 번역문 실례들을 원문과 대조해 분석함으로써, 필자의 불편한 심사의 원인을 드러내고자 한다(빗금 앞의 예컨대 'II 하4'는 원문의 쪽수와 시작 줄수를, 빗금 뒤의 예컨대 '15 상 15'는 역본의 쪽수와 시작 줄수를 각각 나타낸다).

예1) II 하4 / 15 상15.   
원문) "Tout ce que je sais du monde, mme par science, je le sans   partir d'une vue mienne ou d'une exp rience du monde sans laquelle les symboles de la science ne voudraient rien dire."
역본) "나는 내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비록 학문적 인식이라 할지라도, 나의 관점 또는 학문적 상징들이 의미없는 것으로 되지 않는 세계의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①우선 'science'를 '학문'이라고 새긴 것이 문제다. 바로 아래의 문맥을 보면 이 science에 해당되는 것들로 메를로-퐁티가 '동물학', '사회심리학', '귀납적 심리학' 등 흔히 우리말로 봐 인과적인 사실 과학으로 인지되는 이른바 '과학'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굳이 퐁티 자신의 철학마저 포함되는 뜻을 지닌 '학문'으로 번역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는 퐁티의 현상학이 기본적으로 인과결정론적인 과학적 사유와 대결을 벌인다는 점을 짐짓 도외시하거나 놓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②'science'를 '학문'으로 번역하다 보니 '학문적 상징들(symboles de la science)'이 의미 없는 것으로 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해석의 방향이 원문의 뜻과는 정반대로 엉뚱하게 '의미없는 것으로 되지 않는'이라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③관계대명사 'laquelle'의 선행사가 단수이긴 하지만 'une vue mienne'와 'une exp rience du monde'가 'ou'(또는)로 연결돼 있어 둘 모두인데도 따로 분리해서 후자만이 선행사인 것처럼 잘못 번역돼 있어 원전의 뜻을 흐리고 있다.
재번역)"나는 내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심지어 과학에 의해 안 것조차  세계에 대한 이러한 나의 관점이나 나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이나 나의 경험이 없이는 과학의 모든 상징들은 아무 것도 의미할 수 없을 것이다."

예2) III 상19 / 16 상18.
원문)"Les vues scientifiques selon lesquelles je suis un moment du monde sont tourjours naives et hypocrites, parce qu'elles sous-entendent, sans la mentionner, cette autre vue, celle de la conscience, par laquelle d'abord un monde se dispose autour de moi et commence   exister pour moi."
역본)"내가 세계의 계기로 되어버리는 학문적 관점은 언제나 소박하고 위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관점, 즉 의식의 관점을 함축하기 때문이고, 세계는 우선 이 의식에 의해서 나의 주위에 배치되고 나에 대해서 존재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①여기에서도 'scientifiques'을 '과학적'이라고 새기지 않고 '학문적'이라고 새기고 있어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②'par laquelle'에서 선행사가 'celle de la conscience' 즉 '의식의 관점'이고 따라서 '의식의 관점에 의하면'이라는 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의식의 관점)은 …하기 때문이고, 세계는 …하기 때문이다."라는 두 등위절로 처리돼 있다. 즉 '의식의 관점'과 '세계'가 동등한 주어로 따로 놀고 있다. ③'d'abord'와 'et commence'의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퐁티의 입장에서는 나와 세계가 동시에 이미 같이 공존하는 것인데, 과학적인 관점 혹은 의식적인 관점은 나를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는 즉자적인 세계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나의 의식적인 활동에 의해 나에 대한 세계가 마련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재번역)"나를 세계의 한 계기로 여기는 과학적인 관점들은 항상 소박하고 위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급은 하지 않지만 은연중에 다른 관점 즉 의식의 관점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의 관점은, 먼저 세계가 내 주위에 배치돼 있고 나중에 세계가 나에 대해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3) III 하22 / 16 상12.
원문)"Revenir aux choses mmes, c'est revenir   ce monde avant la connaissance dont la connaissance parle tourjours, et   l' gard duquel toute d termination scientifique est abstraite, signitive et d pendante, comme la g ographie   l' gard du paysage o  nous avons d'abord appris ce que c'est qu'une fort, une prairie ou une rivi re."
역본)"사물 그 자체로 복귀한다는 것은 인식이 언제나 말하는, 인식 이전의 세계로 복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숲, 초원, 강이 무엇인가를 맨 먼저 배우게 되었던 시골 풍경으로부터 지리학이 시작된 것처럼, 모든 학문적 규정이 추상적이고 파생적인 기호 언어로 되는 그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① 여기에서도 'science'를 역시 '학문'으로 새김으로써 뜻이 애매해진다. 퐁티가 자연과학주의적인 관점을 비판하고 특히 몸을 토대로 한 현상학적인 관점을 강조한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가 없다. ②관계대명사구인 'et   l' gard duquel'에서 'et'는 앞의 관계대명사 'dont'과 여기의 관계대명사구를 연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대명사 'duquel'을 받는 선행사는 앞의 'ce monde avant la connaissance'이다. 그러니까 '  l' gard duquel'는 '인식 이전의 세계에 비추어 보면'이라는 뜻이다. 이런 문법적인 요소를 무시함으로써 '모든 학문적 규정이 추상적이고 파생적인 기호 언어로 되는 그 세계'라는, 우리말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번역돼 있다. ③아울러 그 결과, <'지리학' vs. '풍경' = '추상적이고 기호적이고 의존적인 과학적 규정들' vs. '인식 이전의 세계'>라는 비유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식으로 번역됐다. 이렇게 번역하게 된 데에는 'la g ographie   l' gard du paysage'에서 ' ' 앞에 'est abstraite, signitive et d pendante'가 생략돼 있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번역)"사물 자체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인식이 늘 언급하는 인식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세계에 비추어 보면, 과학적인 모든 규정들은 추상적이고 기호적이고 의존적이다. 이는 지리학이 우리가 숲, 초원 또는 강이 무엇인가를 배웠던 곳인 (실재의) 풍경에 비추어 볼 때 추상적이고 기호적이고 의존적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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