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9:10 (금)
알게마이너 차이퉁이 조사한 독일의 ‘가장 주요한 지식인- 베스트 50’
알게마이너 차이퉁이 조사한 독일의 ‘가장 주요한 지식인- 베스트 50’
  • 강진숙 독일 통신원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 지식인, 정치적 표명과 활동 따라 위상 달라져

해외통신원 리포트

 

지식인에 대한 지명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1년 전 독일의 권위 있는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이하 FAZ)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독일 지식인들의 랭킹 순위를 자체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FAZ의 ‘지식인 리스트’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독일 지식인들의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운동이 표면화되면서 지식인들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FAZ는 이러한 리스트 조사를 두 번째로 실시했다.

양적 빈도가 질적 평가로?
지난 2월 2일자 FAZ는 독일의 ‘가장 주요한 지식인-베스트 50’을 선정한 결과에 대해 보도했다. 조사방법은 1년 전의 방법과 동일하게 검색엔진 ‘고글’과 ‘올더웹’에 근거해 ‘지식인’의 수식어가 붙은 빈도를 조사한 것이다. 이는 양적인 빈도를 질적 평가로 연결시켜 조사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비판도 많았지만, 일단 FAZ의 입장은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현재 공식적인 타이틀이 아니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편집진의 자체 평가에 따라 재검토하기도 했다. 또한 1회 때의 조사와 달리 오늘날 여전히 회자되고 공공의 의식 속에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만 이미 타계한 지식인들은 기록에서 제외시켰다. 가령, 지난 2002년 3월 13일 타계한 해석학의 정초자이자 여전히 높은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가다머의 경우 지난 해 12위에서 현재 2만2천1백97건을 기록해 11위로 올랐고, 같은 해 11월 7일에 타계한 ‘슈피겔’지의 발행인이자 진보적 언론인이었던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의 경우는 이번 조사에서 18위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3위(1만3천6백93건)에 오른 바 있다.
이번 조사 결과 ‘가장 주요한 지식인-베스트 50’에서 13위(1만8천62백0건)는 우리에게 ‘위험사회’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그리고 7위(2만7천3백40건)에는 ‘어느 비평가의 죽음’의 작가이자 독일 통일 과정과 민족감정에 대해 귄터 그라스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마틴 발저가 각각 올라와 있고, 2위(6만3천6백69건)에 독일의 철학자이자 대사상가로 평가되는 위르겐 하버마스가 선정됐다. 1위(6만3천7백73건)를 차지한 이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로서 FAZ의 조사결과에 따라 ‘가장 중요한 지식인- 베스트 50’의 1위를 점하게 됐다.
이러한 FAZ의 조사결과는 흥미로운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하게 한다. 일단 ‘지식에 대한 가치’를 양적인 측정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각각 1위와 2위에 위치하여 ‘가장 주요한 지식인’들로서 조사, 평가된 귄터 그라스와 하버마스의 경우를 볼 때 FAZ의 조사결과가 ‘지식인들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서 유효하다’는 일부 비평가들의 견해는 곱씹을 만 하다. 물론 비단 노벨 문학상이나 평화상을 수상한 그들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계와 사상계의 두 거장은 현재까지도 왕성한 지적 활동뿐 아니라 상징성에 있어서 파급력이 큰 사회적, 정치적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하버마스와 귄터 그라스의 경우 초지일관 반전의 입장을 피력하며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면서 세계적인 반전 연대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경우, 지난 1월 24일자 FAZ의 문화면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등과 함께 ‘늙은 유럽’에 대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의 발언과 이라크 전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고, 이후 지식인 및 문화예술인들의 공동 연대 투쟁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월 26일 귄터 그라스와 마틴 발저를 필두로 한 19명의 독일 예술가 및 지식인들은 슈뢰더 독일 총리와 외무부장관의 반전에 입각한 대 이라크 방침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무고한 이들을 천 겹의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에 반대하고 슈뢰더 총리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비방과 반미주의에 대한 질책”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질책이나 비난을 거부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비판은 관계의 파괴가 아니라 굳건한 우의를 전제로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명서를 통해 그들은 “민주사회의 가치를 옹호하고 보존해야 할 독일인으로서의 ‘특별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강조하고 있다. 이 ‘특별한’ 책임은 한편으로 1939년에 시작되어 1945년에 종전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역사적 원죄의식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책임일 수도 있다.

영향력 큰 지식인들, 물망에 오르다
여하튼 이러한 독일 지식인들 및 예술인들의 행위는 다각도로 평가가 가능하고, 유럽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접근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위르겐 하버마스를 비롯해 귄터 그라스와 마틴 발저 등은 독일 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상징적 존재이며, 때문에 그들의 반전에 대한 결의와 호소는 독일 국민의 반전 의지와 맞물려 막강한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FAZ의 ‘가장 중요한 지식인-베스트 50’에 대한 조사 결과는 단순히 빈도상의 조사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생한 사회적, 정치적 표명과 활동을 통해 현대 지식인의 상에 대한 관심과 문제를 던진다는 점에서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강진숙 독일 통신원/ 라이프치히 대학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