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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사회통합을 바라며
감동의 사회통합을 바라며
  • 김규원 경북대, 사회?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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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 /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개혁은 성장의 동력이고,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임을 선언했다.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해 동북아 시대의 개막에 따른 그 중심 역할을 새 정부가 수행하려는 의지에 대해서 국민이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런데, 말꼬리를 잡는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개혁과 통합은 서로 한 자리에 어울리기엔 쉽지 않은 사이인 것 같다. 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은 적어도 일정 부분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평등 구현은 남성 집단의 기득권 회수를 출발점으로 삼고, 지방분권 달성은 수도권지역의 자원 축소를 요청하며, 계층간 격차의 완화는 가진 자의 몫을 제한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이미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을 회수, 축소, 제한하는 조치는 일시적이나마 사회갈등을 낳고 그 만큼 사회통합은 멀어지기 쉽다.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소수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정책적 선택인지 모른다. 그리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한 기획으로써 한시적인 사회갈등은 감내할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이 힘과 논리로 뒷받침된 사회통합은 과거의 정부가 선전하던 것과 과연 속살까지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다시 말해서, 사회통합의 디딤돌을 잘못 고른 듯하다.

사회통합은 사회구성원의 동조를 디딤돌로 삼고 있다고 본다.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동조를 이끌어 내는 방식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사회통합의 디딤돌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는 압력에 의한 동조인데, 이것은 다수로 위장한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힘으로 밀어붙여 사회통합을 이루는 방식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즐겨 동원했던 사회통합 유형이다. 민족중흥, 국가발전 등의 수사가 각종 정부정책을 포장했던 기억이 새롭다.
둘째는 설득에 의한 동조인데, 이는 집권한 소수가 정치적 다수에 대해서 명분 있는 논리를 앞세워 사회통합을 구하는 형태이다. 민족화해, 국민화합 등의 구호가 등장하던 시대와 같이한 정부에서 주로 활용한 사회통합 방식이다.
셋째 유형은 감동에 의한 동조로서 가장 바람직한 사회통합의 디딤돌이다. 왜냐하면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해 상호 교감을 통해 사회통합을 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힘과 논리에 의한 동조는 가식과 위선을 개입시킬 여지가 큰 반면에, 심정적 동감에 의한 동조는 자발적이며 지속적인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사회통합의 디딤돌이 감동에 의한 동조일 경우에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국가는 毛聆?이해집단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힘으로 획일화할 수 없고 논리로 표준화할 수 없는 사회이다. 각양각색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산을 거듭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상이한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제도의 틀 안에서 각자의 역할분담을 통해 유기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현대사회 질서유지의 관건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는 의지는 의욕이라기보다는 욕심이다. 더군다나 대중으로 표방되는 익명적 집단의 동조세력화는 정치목표의 전일성이 강할 경우에는 파시즘을, 그리고 약할 경우에는 포퓰리즘을 낳았던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까닭에 시민사회의 성숙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시민사회단체를 통한 사회통합을 사회개혁의 목표로 삼는 것이 마땅한 줄 안다.

개별 시민사회단체에 따라서는 정권창출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제공했을 수도 있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고 배려하는 것이 국민통합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려본다면, ‘우리’라는 수식어로 가장된 무형·유형의 구속과 간섭으로써 ‘나’와 ‘너’의 고유한 차이마저 ‘왕따’시키는 사회이다. 경쟁과 성장의 가치가 상생과 형평의 가치를 압도하는 규범체제로 가장 빠르게 구조화한 결과이다. 또다시 참여정부마저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 사회개혁을 목적시하고 사회통합을 수단시하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물론 성장과 도약을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를 짚어보고자 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 가운데 국민을 감동시킴으로써 사회통합을 일궈낼 것을 새 정부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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