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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위한 나의 싸움
인권을 위한 나의 싸움
  • 김동우 조각가
  • 승인 2003.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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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련 연속기고7-해직교수 복직투쟁기

나는 전업작가로 활동하다 1998년 쉰이 다된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 처음 느껴보는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임용직후 학교측이 요구한 것은 전임교수 책임시간 부족분을 작품제작으로 충당하라는 것이었다. 학교와 작업장을 오가며 1년 세월을 보내며 20톤짜리 검정 화강석으로 학교측의 주문인 모자상을 제작했다.

1999년 2월경 재단 이사장이 완성된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해서 총장 및 동료교수와 함께 작품 사진을 듣고 이사장을 면담했는데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인체 비례가 틀렸다는 것이다. 머리가 크고 다리도 짧아 5등신 정도 밖에 안되니 8등신으로 고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김 교수, 옛날에는 여자가 머리가 크면 시집도 못 갔어 왜 이렇게 머리가 커, 머리는 줄이고 좌대를 없애 다리를 늘리시오”라며 구체적인 지도까지 해 주었다. 돌을 깎아 인체를 표현하는 조각가로 나는 대한민국 최고다. 아니 2류, 3류라도 좋다. 최선을 다한  예술가의 작품을 누가 감히 고치라고 하는가. 나는 작품을 그대로 학교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나는 4년 후(2001년 12월)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처음에는 연구업적(제작년도와 발표년도가 동일하지 않다고)이 부족하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조소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재임용 탈락 사유이다. 봉급에선 수업이 부족하다고 매달  27만원씩 공제하고, 수업부족 등의 이유를 들어 조소가 할성화 되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편리한 논리인가. 수업시간 부족이란 명분으로 작품을 하게 하고, 봉급을 공제하고,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대학이 21세기 한국의 사립대학의 모습인 것이다. 결국 나는 한푼의 작품료도 없이 3점의 대작(싯가 3~4억)을 세종대학에 빼앗기고 쫓겨나게 됐다.

나는 1인 시위라는 외로운 투쟁을 시작해 지난 1년(2002년)을 거리에서 보냈다. 나의 이러한 투쟁을 같은 대학 영화과 교수이자 영화감독인 황철민 선생이 다큐멘터리영화 ‘팔등신으로 만들라 굽쇼’로 제작, 부산 국제 영화제에 출품해 호평을 받았다. 황 선생은 나와 함께 98년 세종 대학에 교수로 임용됐으나, 4년후 대학의 비민주적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15년 각고의 유학 생활이 아깝다며 사표를 던졌다. 결국 나와 같은 해에 교수가 돼 같은 해에 대학을 나오는 묘한 인연이 됐다. 우리는 영화를 CD와 VIDEO로 제작해 세종대 전 낵熾“?보냈는데 학교측은 이를 알고 조교를 통해 모두 반납하라고 지시하고 수거해 갔다.

나는 세종대학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사회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맑스가 말했듯이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 내 존재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내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는가를 알게 됐다. 아니 저항한다는 행위가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는 새삼 진리, 정의, 권력, 지성, 상식 등의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예술가로서 아름다움이라는 본연의 가치추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듯 했다. 사립대학의 제왕적 재단이사장의 독단 때문에, 대학의 공공성은 물론 교수들의 전문성, 구성원(교수, 학생, 교직원)들의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조차도 침해받고 있다. 나의 투쟁은 교권이라기보다 차라리 인권 차원에 있다.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학자와 현자의 차이는 도덕적 기초일 것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이성이란 권력과 자본의 끝없는 욕망의 도구일 뿐이다. 이성은 무엇에 봉사하는가에 따라 천사와 악마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사회에 상식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소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라는 평범한 용어 속에는 사실 전 인류의 인문학 전통을 관통하는 핵심적 요소로서의 철학적 의미가 숨어있다. 상식이란 공통감각(SENSUS COMMUNIS), 혹은 양식(BON SENS), 도덕적 이성을 뜻하며 모든 앎의 원천으로서 인류문명의 보편적 가치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특히 비코는 공통감각을 모든 인간에 있어서 살아있는 올바름과 공공의 복리에 대한 감각이며 공동의 삶에 의해 획득되고 삶의 질서와 목표에 따라 결정되는 감각이라 했다. 남을 배려하고 내적 규제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내적 힘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을 회복시키는 일이라 믿고 나는 투쟁을 계속한다. 지성인이란 추방자라는 사이드의 말을 위안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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