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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드십니까, 실컷 우세요”
“얼마나 힘드십니까, 실컷 우세요”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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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모임-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 상담하는 자원봉사단
▲상담을 하고 있는 전종국 영남대 교수. 참여자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곧 유인물 배포에도 나설 예정이다. /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나 이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눈물을 삼키는 주위 사람들은 대구시민회관 밖에 있는 작은 부스에 도움을 청해봄직하다.

전종국 영남대 교수, 김진숙 경북대 교수,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교수, 이수연 경산대 교수, 배정규 대구대 교수, 홍종관 대구교육대 교수, 정현희 계명대 교수, 최선남 영남이공대학 교수 등의 상담 및 심리치료학 전공자들과 대구지역 사설상담연구소 13개 등이 주축이 돼 무료 상담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부짖고, 토로하고, 넘어지고, 실신하십시오. 지금 단계에서는 그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이들은 지금 시급한 것은 보상이나 사후대책보다 피해자들을 보듬는 따뜻한 관심이라고 말한다.
“뒤엉킨 군중속에서 살아나온 사람들 중에는 붙잡는 손길을 뿌리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남을 밟고 지나온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죄책감과 고통을 하루빨리 풀어줘야 이들이 두 번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전종국 교수의 눈에는 1079호 기관사나 방화범 김씨도 도움이 필요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억울함과 죄책감으로 뒤범벅돼 있을 겁니다.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한 온전히 사회로 돌아오긴 힘들겠죠.”

그러나 정작 피해자는 울 때가 아니라 흘릴 눈물마저 없을 때 더 위험하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딸의 졸업식에 가다 차가 막히자 딸만 지하철 편으로 먼저 보내고 오열하는 부모를 보며 지금보다 6개월 뒤, 1년 뒤가 더 걱정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95년도 대구 가스폭발로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몇 년 뒤 끝내 자살을 택했다는 기사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두 번 죽였다는 섬뜩한 사실을 증언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고 신음하다 무너져가는 현실이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고.

‘사회적 안전장치’가 두 겹 세 겹 채워져 있는 사회였다면 이런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설사 99명이 안정을 찾더라도 한 명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다면 비극은 또다시 어떠한 형태로든 재발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후유증은 앞으로 더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럴수록 이들의 어깨는 무거워 질 것이다. 이미 1년 뒤까지 무료상담봉사활동을 각오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참사의 피해자라면 기꺼이 어깨의 짐을 나눠볼 일이다. 고마움은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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