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50 (금)
百花齊放은 있는데 百家爭鳴은 없다
百花齊放은 있는데 百家爭鳴은 없다
  • 배연해 / 한국일보 국
  • 승인 2003.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렌드비평 : 중국관련 서적의 범람

‘중국’이란 단어가 부지불식간에 한국사회의 키워드가 된 느낌이다. 지난해 4/4분기부터 중국이 한국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자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잡은 마당이니 이런 인식도 무리는 아니다. 출판계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최근 중국 관련서의 출판 붐은 百花齊放을 연상시킨다. 문화, 역사, 정치, 경제분야를 비롯해 돈버는 법과 친구 사귀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수한 중국 관련 책들이 출판시장에서 어느 정도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책 역시 상품인 만큼 출판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취사선택될 수 있다. 이것은 출판시장이 완전 경쟁 시장으로 전제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시장은 취사선택을 위한 독자의 정보부족과 자본의 논리가 가득 차 있는 불완전 경쟁 시장이다. 출판의 시의성과 함께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특히 광고력이 판매량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내용보다는 포장이 판매의 관건이 된 셈이다.

독자 입장에서야 많이 읽고, 그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나름의 인식체계를 세우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들이 책의 범람 속에서 취사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출판시장 안팎에서 중국 관련서에 대한 백가쟁명, 즉 토론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출판시장에서는 중국 관련서들의 개별 주장만 넘쳐나고, 이들 주장의 옥석을 가리기 위한 토론은 별로 없다.

토론 없는 출판시장은 거품을 낳는다. 거품은 낭비를 초래하고, 더 나아가 독자의 인식을 그르치는 해악을 낳는다. 특히 중국은 있다느니 없다느니, 가짜니 진짜니, 새로운 패권국이니 아니니 하는 극단적인 일반화는 독자의 인식을 편향적으로 고정시키기 쉽다. 책은 중국이란 실체와 이 실체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매개하는 중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책과 출판계는 중개자의 기능을 넘어 인식을 강제하는 문화폭군으로 군림하는 예가 종종 있다.

백가쟁명의 부재는 문화적 피식민주의를 낳는 원인이 된다. 중국문화와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무턱대고 칭찬하거나, 일방적으로 인정해야 할 대상으로 승격시킬 경우 폐단은 더욱 커진다. 비전문가들이 쓴 경험담 수준의 이야기에다 중국 비즈니스를 위한 바이블이란 과대포장을 한 책이 적지 않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중국문화와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 ‘콴시(關係, 비공식적 친분)’만 있으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라는 그릇된 인식이 한국에서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화적 피식민주의는 경제적 피식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 중국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옳든 그르든 우선 중국의 룰에 맞춰야 한다는 식의 편견이 앞서다 보니 대등한 파트너십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한국인이나 업체끼리 중국 협력상대를 놓고 불공정 경쟁을 벌이는 양상은 이래서 나온다. WTO 가입 후 중국의 화두가 국제적 룰에 적응하자는 것인데도 일부 한국인은 여전히 시대착오 속에 빠져있다.
번역서에도 함정은 있다. 중국을 잠재적 패권 경쟁국으로 보거나 중국 위협론을 주장하는 책들은 나름의 이념적, 전략적 의도를 배경에 깔고 있다. 이 같은 책은 자칫 중국을 보는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중국 관련서에 문제가 있다 해서 출판업계의 상업성만 탓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지나친 상업성의 해악을 견제하고 출판시장의 불완전 경쟁을 보완할 메커니즘이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중국 연구가 일천한 한국에서 독자적인 중국관을 정립하고, 불필요한 수업료 없이 중국과 관계하기 위해서는 출판시장의 백가쟁명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