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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와 이라크 전쟁
발렌타인 데이와 이라크 전쟁
  • 신광영 /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3.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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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2월 초순 어느날 달콤한 초콜렛으로 장식한 발렌타인 데이 선물세트가 백화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흑갈색의 초콜렛을 파는 백화점 점원은 사랑의 전도사인양 발렌타인 데이가 가까이 왔음을 소리 질러 환기시키고 있다. 백화점 다른 층의 전자 매장에 전시된 거대한 디지털 TV에서는 전의에 불타는 조지 부시가 이라크 공격을 공언하는 연설 장면이 뉴스로 방송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 교차되는 백화점안의 이질적인 모습들이 오늘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의 덕택(?)으로 발렌타인 데이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알려져서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는 순수한 마음들이 이를 상품화하는 대기업의 광고와 맞물려 새로운 세태를 만들고 있다.

발렌타인 데이는 정월 대보름을 제치고 새로운 사회적 명절이 된 듯하다. 반복해서 부르는 노래나 기도문이 사람들의 질문과 분석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처럼, 대중들에 의해서 암기되고 되뇌어지는 발렌타인 데이는 슬며시 그 기원과 주체를 지워버렸다. 이제 발렌타인 데이는 ‘미국 젊은이의 날’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날’이 됐다.

다른 한편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세계 여러 나라 뉴스 가운데 미국에서 만들어진 뉴스가 한국의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어서 우리는 매일같이 미국의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단연 부시와 그의 각료들이 만들어 내는 전쟁 담론과 영상물을 보게 된다.

반복되는 이라크 공격 담론과 전쟁 위협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격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기가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TV에서 반복적으로 방영되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공격 장면과 사막전투 장면들은 ‘어떻게’ 공격하는 것이 효과적인 공격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반복적인 TV 전쟁 장면들로 인해 전쟁 그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접어두고 공격의 시기와 방법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의 영혼이 영상으로 각인된 전쟁의 이미지에 포로가 됐다. 

발렌타인 데이와 이라크 전쟁은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모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발렌타인 데이의 상징이라면, 부시에 의해서 전달되는 상징은 파괴적인 공격성, 증오심, 호전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적인 현실은 관습과 일상화 단계를 거쳐서, 이제 더 이상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모순적인 현실이 부조리로 인식되지 않을 때, 인간 사회는 광기와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권력도 국가적인 광기와 폭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현실의 부조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이성적인 사회로의 발전에 필요한 지적 기반이다. 이성적인 국민만이 이성적인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다. 발렌타인 데이와 이라크 전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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