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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의 가능성에 눈돌려라
보이지 않는 위험의 가능성에 눈돌려라
  • 안성우 과학객원기자
  • 승인 2003.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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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논쟁] 세계포럼에 보고된 나노기술에 대한 경고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과 함께 새로운 기술의 총아로 떠오른 나노기술에 대해 최근 잇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자가 싹을 틔울 수 있는 능력을 단 1회로 제한해 종자를 매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유전자 조작 기술은 종종 ‘터미네이터 기술’이라 불린다. 이 기술에 ‘터미네이터’란 이름을 붙이고 반대운동을 해온 단체는 RAFI(국제농업진흥재단). 캐나다에 위치한 이 재단은 최근 ETC 그룹(Action Group on Erosion, Technology and Concentration)으로 명칭을 바꾸고 나노기술의 위험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이 단체는 브라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서 ‘거대한 축소: 원자기술, 나노 수준으로 수렴되는 기술들’(The Big Down: Atomtech, Technologies Converging at the Nano-scale)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책담당자들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나노기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개진했다. UN과 같은 기구가 개입해 전세계적인 규약을 만들어, 안전이 확보되기 전에 나노소재 및 나노소자의 제작을 잠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 유전자에서 원자 수준으로까지 더욱 연구 대상이 ‘축소’되고 있는 지금,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기술의 예측불가능한 위험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토론이 필요함을 이들은 특히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영국의 정부 자문기구인 ‘규제개선 위원회’에서는 ‘과학연구: 규제를 수반한 혁신’이라는 보고서에서 줄기세포 복제 연구 등과 함께 나노기술을 독립된 장에서 다뤘다. 보고서는 대중에게 나노기술에 따르는 위험이 있음을 알리고, 정책결정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수행해야함은 물론 어떤 위험한 사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정부에게 주문하고 있다. ETC 그룹과 같이 환경적 위험에 대한 경고는 분명하지 않지만, 불확실한 위험의 존재를 현재 존재하는 위험과 함께 취급함으로써 이를 사전에 경고하는 의미를 띄고 있다.

미국의 2004년 국가과학기술 예산 편성에서 다른 기술에 비해 높은 비율인 9.5%만큼 증액된 나노기술 예산은 총 8억 4천만 달러이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나노기술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EU의 경우도 올해부터 4년간 총 13억 유로(1조 4천억 원)를 나노기술에 투자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2010년까지 2조 3백91억 원을 투입키로 결정한 상황. 그러나 나노기술이 가져다 줄 기술혁신의 가능성과 경제적 과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이 기술로 인한 위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노기술로 인해 오존층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고, 미세모터 및 미세의료기기 개발에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대량살상 무기가 나노기술로 인해 가능해지고 있다는 군사전문가 및 관련 산업계의 예측 또한 현실성 있어 보인다. 그리고 당장 식물성 나노입자를 이용해 피부에 영양분을 보다 잘 공급해준다는 화장품이 국내에서도 출시돼 화제가 됐다. 나노기술로 인해 초소형 부품의 제작이 가능해져서 새로운 컴퓨터가 탄생한다거나 생명기술과 나노기술이 결합해 생물학적 나노기계를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 개발에 나노기술을 활용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가능해질 것인가’보다는 ‘언제 이것이 가능해지느냐’가 문제일 뿐이며, 그 시간은 투입되는 자원에 따라 점차 단축되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친화적이고 의료 및 에너지 문제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제공한다는 나노기술의 환상 뒤편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짚어나가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ETC의 우려대로 유전자 수준에서 조작된 물질들의 생태오염 가능성에 비해 나노기술을 통해 ‘원자수준에서 조작된’ 물질들이 가진 파괴력이 더욱 클지도 모른다. ‘경제성장’이 아니라 ‘사회의 안전’과 위험의 ‘사전예방’을 위한 다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했다고 모두가 느끼게 되는 순간은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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