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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특수성 토대로 ‘우리 여성학’ 일궈…정치적 결단 중시
한국적 특수성 토대로 ‘우리 여성학’ 일궈…정치적 결단 중시
  • 이재경 이화여대
  • 승인 2003.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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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의 ‘여성사회학’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성을 학문적 주제로 다루는 작업은 ‘서구의 이론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는’ 식민지적 학문하기의 전형으로 비판받아 왔다.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에서 외국의 이론이나 개념을 빌려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여성연구 분야에 대해서는 ‘서구의 학문’이라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여성 연구의 구체적 내용에 淪?평가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성격을 비판하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 담론에 대한 사회적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이효재 교수의 여성사회학은 ‘서구’의 관점이 아닌 우리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여성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실천을 학문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즉 실증주의에 근거한 가치중립의 과학적 사회학이 아닌 과학적 탐구와 정치적 결단을 강조하는 가치개입의 사회학 또는 진보적 사회학의 지형에서 한국 여성을 위치시킨다.

삼중의 여성억압에 대한 구조적 분석 시도

이 교수는 유교적 가부장제에 기반한 국가권력,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의 역사, 그리고 강대국 주도의 국제정치의 산물인 분단의 현실에 대한 도전을 통해 한국사회가 민주화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한 가부장적 국가권력, 식민통치, 분단의 현실은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며, 이로 인해 여성들은 이중, 삼중으로 억압당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문제를 구조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여성해방, 가족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는 평등과 주체라는 공통된 이념적 토대를 가지며 따라서 함께 해결해야할 역사적 과제이다. 지난 40여 년간 이 교수가 이뤄낸 여성과 가족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여성사회학의 지식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족법 개정, 정신대 대책, 그리고 소외된 여성에 대한 실천적 관심과 적극적 개입은 이후 우리사회 여성운동의 방향설정과 확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40년대 말부터 제도화된 한국 사회학에서 여성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며, 그 이전의 사회학 연구에서 여성은 중요한 학문적 주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단지 60~70년대 연구가 활발했던 인구학, 가족사회학, 농촌사회학 분야에서 여성은 조사연구의 대상으로 포함되곤 했는데, 이들 분야는 주제의 성격이 개인의 사적 생활과 연결돼 있어 여성을 배제하고 논의하기 어려운 연구영역이다.

한편 1960년대 시작된 국가주도의 경제개발과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의 증가는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불러 왔으며, 1970년대 말 여성학의 도입은 사회학에서 여성연구의 기폭제가 됐으며, 여성 사회학이라는 분과 영역이 가시화 됐다. 이 교수는 1970년대 중반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여성사회학 과목을 개설함으로써 보수적인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국여성을 분석하는 이 교수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이론적·실천적 논의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이 교수의 초기 연구는 전통적 사회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영역으로 연구 주제를 확대함으로써 사회학적 사고와 통찰을 풍부하게 해 왔다. 이전의 사회학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성의 삶과 경험을 주요 주제로 분석하는데, 이는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경험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으로 연구 영역의 확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여성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일천하던 60~70년대 다양한 영역의 여성들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가족 내 여성의 삶, 여성 단체 및 지역사회활동, 여성 취업 및 노동을 주제로 한 연구들이다. 가족연구에서는 중산층 주부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강조하는 한편, 가사노동과 농업생산을 담당하고 지역사회활동에 동원되는 농촌여성의 과중한 역할수행에 대한 비판을 한다.
또한 일제하 여성노동사와 산업사회 여성의 경제활동 및 취업 실태 등을 분석함으로써 생산영역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가시화 시키고 있다. 여성을 가족 내에 위치시키는 전통적인 시각을 탈피해  한국 여성의 다양한 역할과 활동을 가시화 시키고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여성사회학의 학문적 쟁점을 도출하고 있다.

‘평등사회구현 주체로서의 여성’

다음은 여성억압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이론적 인식에 관한 논의이다. 이 교수는 여성의 문제를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연결시켜 분석한다. 이 교수는 주요 저서인 ‘분단시대의 사회학’(1985)과 ‘한국의 여성운동’(1997)에서 한국 여성의 존재와 삶이 뿌리깊은 가부장제 전통을 유지하는 계급구조와 분단의 현실에서 이중, 삼중으로 규정 당하고 억압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인식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성차별을 인지함과 동시에 각 민족의 역사적 국가체제나 권력의 성격에 따라 여성 억압이 특수성을 지니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즉 사회·역사적 맥락에 의한 여성들 간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한국여성 정체성’을 도출하는데, 한국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민족적 동질성을 갖는 남북한 여성 모두를 포함한다. 분단시대를 李?있는 남북한 여성들은 고조되는 전쟁의 위험이나 강압적인 가부장적 권력의 불안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들이다. 따라서 남북한 여성들은 정신대 문제를 포함해 조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통일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해결해야 하는 주체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교수의  여성사회학은 ‘우리 이론’이다. 이 교수는 한국 여성의 희생이 구조적으로 강요되고 있음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을 단순히 구조의 수동적 피해자로서만 위치시키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여성문제의 해결, 또는 여성의 인간화를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평등사회구현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제안하면서 실천적 행동을 촉구한다. 여성이 민족과 사회에 대한 민주적 주인의식이 심화될 때, 각 영역에서 피해 당하고 있는 여성의 문제에 더욱 민감해 지며 그 구조적 모순과 원인을 더 예리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추진해 온 가족법 개정운동, 지역사회 시민운동, 여성노동운동, 여성농민운동, 성폭력의 문제 및 여성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전략 등은 사회의 민주화라는 거시적인 변화와 직결돼 있다.

예컨대, 이 교수는 가족법개정 운동을 분단사회의 보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에게 강요되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하고 있다. 이 교수에 의하면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가족법 개정운동은 가정의 민주화와 동시에 한국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이다. 가부장제도가 민주화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되고 있음을 인식할 때, 가족법 개정은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일차적 과제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여성운동에서 뿐 아니라 통일운동, 환경운동, 소비자 운동,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 산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에 따른 지위 향상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왜곡된 경제발전으로 인해 여성은 수동적 소비자로, 저임금 노동자로, 성문화산업의 피해자로 전락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들 특히 중산층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와 가족에 대한 보살핌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주체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여성 운동과 학문의 밑그림

사실 이 교수의 학문적 영향력은 사회학 분야에 한정됐다기보다는 우리 사회 여성연구와 여성운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돼야 한다. 이 교수의 이론적 분석과 실천적 전략들을 밑그림으로 두고 우리 이론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후학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성문제와 구조적 맥락에 대한 이론적 정교화의 과제이다. 여성억압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이 교수의 이론적 인식은 민족국가를 경계로 하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보여준 점에서 보편적 여성을 상정하는 60~70년대 서구 페미니즘 논의와 차별화 된다.
그러나 후기 근대사회에서 민족국가의 경계가 모호해질 뿐 아니라 한 민족국가 내에서도 여성들 간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단일하다기보다는 다중적이며 유동적이다. 여성들간의 차이와 다중적 정체성을 고려한다면 이 교수가 제시한 미시와 거시의 연결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쉽지 않다. 남북한 여성, 중산층 여성과 빈민층 여성, 또는 여성노동자와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억압의 문제는 그들의 사회·문화적 위치와 이념적 지향의 차이를 고려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돼야만 이들이 같이 또 따로 해결해야할 목표와 전략을 구체화할 수 있다. 

둘째는 여성들이 구조의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가부장적 사회 재생산에 기여하는 행위자라는 점이다. 개인 여성은 자신이 처한 구조적 제약 안에서 전략과 협상을 구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며 적극적 도전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교수가 비판하는 ‘맹목적 모성’이 그 예이다. 다른 예로 최근에 소비의 주체를 강조하는 매스컴과 상품광고의 영향으로 중산층 여성들은 자신들이 주체적 삶을 살고 있다는 허위의식을 갖고 있음도 볼 수 있다. 한편 호주제나 군가산점제 폐지에 대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저항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이 어머니들을 호주제 폐지운동에 주체로 참여하도록 하는 운동의 전략은 무엇인가. 이러한 여성들을 주변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민주통일운동에 주체가 되도록 하는 방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이론적 탐구와 전략적 논의가 후학들이 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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