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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이론을 깁어낸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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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영기자
  • 승인 2003.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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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회학에 대한 학계 평가

이효재 교수의 여성사회학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일관돼 있다. 척박하기 이를 때 없는 국내 여성학·여성운동의 텃밭을 그야말로 맨발로 다듬고 골라냈던 인물이라 감히 공과를 매기기 어렵다는 것.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여성사회학의 대모로서 최초로 이론적인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김영화 경북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 교수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것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라고, 조주현 계명대 교수(여성학) 또한 “이 교수는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이미 큰 스승이셨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라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학문에서도 삶에서도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시는 분이다. 평생을 그렇게 보내신 에너지가 놀랍고, 뵐 때마다 또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라는 것이 조 교수가 덧붙인 말이었다. 
“여성사회학의 기본적인 방향, 이론적 제시뿐만 아니라 실천적 방향까지 제시했고 한국여성학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대다수의 여성학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이 교수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라는 것은 조옥라 서강대 교수(사회학)의 평. 

정강자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지금 활동하는, 1987년 이후 나타난 여성 단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이 교수와 연결이 돼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역시 이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학문적 선배로서, 여성운동의 대모로서 지금까지 그 역할을 마다 않고 실천적 작업과 총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현재 활동하는 여성계 인사 대부분이 이 교수의 후배와 제자이다. 신혜수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 이미경 민주당 의원, 장하진 한국여성개발원 원장, 지은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도위원 등이 대표적인 인사들. 뿐만 아니라 이 교수가 1970년대 중반 이화여대에 여성학 강의를 신설한 이 후, 그곳을 거쳐간 많은 학생들이 여성학 연구자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국내 여성학 연구자의 대부분이 이 교수의 세례를 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계층의 제자들이 있는 이유를 김주숙 한신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 교수의 인품에서 찾는다. “학문적으로 인간적으로 이렇게 깊고 넓은 학자는 드물 것”이라는 말이다. “제자도 부르주아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있다. 그만큼 편견 없이 사셨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제자들에게 물질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으셨고, 나 역시도 도움을 받았다. 월급의 대부분을 각종 단체 활동 및 제자들을 위해 선뜻 내놓으시며 실천하신 분”이라며  “60~70년대에 이미 환경 문제, 생태 문제, 지역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 되돌아 봐도 선진적인 문제들을 제시했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이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지은희 지도위원도 같은 견해이다. “가족 제도에 대해서도 다양한 유형의 가족 형태가 필요하다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후학들이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라고 아쉬워했다. 학자로서 실천을 담보했기 때문에, 학문과 운동의 괴리가 없었던 것도 이 교수의 학문이 가지는 특성으로 꼽힌다. “지금까지도 여성운동이 중앙 중심·활동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하신다”라며 “여성운동이 여성 대중과 괴리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테제는 아직도 유효한 가르침”이라고 의미를 매겼다.

김진균 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우리학계에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변수를 도입한 점, 여성학에서도 역사적 이해를 도입해 토종이론을 만들어 낸 것, 분단사회학을 개척한 점” 등을 학문적 업적으로 꼽았다. 이 교수의 영향력이 여성학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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