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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좇는 ‘호모 로또리우스’의 神經症…기금 운용 감시 철저해야
‘대박’ 좇는 ‘호모 로또리우스’의 神經症…기금 운용 감시 철저해야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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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복권 권하는 사회 ‘로또 열풍’

2003년. 새해 벽두부터 전국은 태어난 지 갓 두 달을 넘긴 복권 ‘로또’로 들썩거렸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당첨금액 때문에 신년 아침에 세뱃돈 대신 로또 티켓을 주는 가정이 있었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로또 계, 번호조합모임이 우후죽순 마냥 솟아올랐다. 추첨 전날, 벼락 맞는 일보다 16배 가량 더 어렵다는 당첨을 ‘해바라기’하는 ‘호모 로또리우스(로또에 중독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들로  복권방 및 판매소 앞이 마를 틈이 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로또 태풍이 지나간 한국 사회. 그러나 아직 그 여파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고대로마시대 제비뽑기에서 유래하는 복권이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400년대. 미국·캐나다·호주·대만 등 세계 60여 개국에서 발매하고 있는 로또(lotto)의 기원은 153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서 수십 명의 정치가 중에서 5명의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추첨을 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복권은 조선 후기의 작백계 또는 산통계 등 일종의 민간협동체인 ‘계’에서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복권의 효시는 1947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 복권.

순식간 돈버는 것이 능력인 사회

신병현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로또 과열 현상을 두고 “제도 도입의 초기라 이러한 과열 현상은 당연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이후 구조조정 등을 통해 대중의 삶이 더 어려워진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신 교수의 생각이다. 이전에는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졌지만, IMF 이후 벤처사업 성공사례 등 순식간에 돈을 버는 것이 오히려 능력이 돼버린 소위 ‘카지노 자본주의’ 사회의 탓도 크다.

새 제도가 시행될 때 자리잡기를 위한 시행착오로서 로또 신드롬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한국’이라는 사회·문화적 특성을 빼놓을 수 없다. 허태균 한국외대 교수(심리학)는 ‘손익을 밝히는 것은 천박한 것’이라는 한국 사회에 배어있는 인식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복권 역시 다른 놀이와 마찬가지로 돈을 소비하고 즐거움을 얻으면 되는 것”이라는 허 교수는 “양반 사회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 사회는 어려서부터 ‘계산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한 위험을 계산하는 것에 있어서도 매우 서툴다”고 말한다. 대다수가 잃을 수밖에 없는 복권의 생리를 계산하지 못하는 것은 수십 장을 구입하더라도 그 천문학적인 확률이 체감 확률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드는 기제의 역할인 셈이다.

여기에는 복권을 일종의 승부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한다. 복권을 ‘상상의 즐거움’을 주는 대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복권이 주는 상상의 즐거움은 그 양에 비례하지 않음에도, 이기지 못하면 더 큰 투자를 해서라도 이기겠다는 그릇된 승부 근성의 표출도 여기에 기인한다. 또한 ‘집단 의식’이 강한 우리 사회의 풍토를 고려해 볼 때, 거액의 상금과 너도나도 복권을 사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보도해 대거 동조현상을 불러일으킨 언론 역시 복권 과열붐의 원인이다 라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한국학)는 “2∼3만개에 달하는 점집과 교회들은 한국인이 자신의 문제를 밖으로 투사해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복권 열풍 역시 자신의 문제를 바깥에서부터 해결하려는 성향이 드러난 것”라고 밝힌다.

‘서민의 돈’ 서민에게 되돌아가야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권의 수익금 사용 여부 역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0개 부처가 함께 공동참여해 발행하고 있지만, 각 부처별 배분율만 명시했을 뿐,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돈은 계속 들어가지만 어디로 나가는 지 모르는 블랙박스와도 같은 형국.

이에 대해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정부가 나서 복권 권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사회적 공공성을 구축해야 하는 책임을 국가가 외면해서는 안된다. 가난한 다수로부터 돈을 모아 조성한 기금은 다시금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못박는다. 신 교수 역시 “수익금이 투명하게 활용된다는 전제가 없는 공공성을 위한 복권 사업은 오류 자체일 수밖에 없다”며 수익금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에 입을 모은다. 결국 목적성 복권이 제대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기금 운용방안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철저해야 한다는 것.

배회하고 있는 ‘화수분’ 향한 열망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는 허공에 떠있는 천금을 찾아 헤맸다. 금을 향한 욕망은 연금술의 시대를 거쳐 마르코 폴로를 동방으로 콜럼버스를 신대륙으로 이끌었고, 미 캘리포니아 계곡들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19세기 골드러쉬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유정의 ‘금따는 콩밭’, 이기영의 ‘광산촌’, 채만식의 ‘금의 정열’ 등의 작품에도 동네 뒷동산을 쳐다보면서 금맥이 터지는 즐거운 상상을 하던 1930년대 우리의 ‘노다지’ 황금광 시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택기금 마련의 소박한 꿈에서 인생역전의 꿈까지…. 현대판 화수분, 복권에 대한 욕망은 아직도 그 명을 이어 우리 사회를, 인터넷 대륙을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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