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1:05 (토)
學而思-사학과를 없애는 공상
學而思-사학과를 없애는 공상
  • 유재건 부산대
  • 승인 2003.0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대 유재건 교수 /

학과 강의의 기본 메뉴인 사학개론 첫 시간은 대개 역사학이란 학문이 무엇을 연구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는데, 내 경우는 다소 ‘황당한’ 질문들을 덧붙이곤 한다.

과연 사학과가 있을 필요가 있는지, 또 사회대 아닌 인문대에 소속된 것이 타당한지, 나아가서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나뉘어진 것이 타당한지 등등. 딱딱할 것으로 예상되는 과목에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고 무슨 모범답안이 준비된 것도 아니지만, 이런 것은 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학파를 창시했던 역사가 뤼시앙 페브르는 19세기의 일부 철학자들이 ‘사회학’이란 말을 만들어 원래 역사학에나 걸맞을 이름을 훔쳐갔다고 애석해 했다고 한다. 그의 후배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전하는 말이다. 그럼 페브르가 바랬던 것처럼 만약 근대 학문체계가 성립할 때 지금의 역사학에 ‘사회학’이란 명칭이 붙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우선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라는, 그가 보기에 너무나 불합리한 통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 공통점이 되는 이런저런 현상을 합리적 지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과거와 현재를 연결지어 사고하는 발상이 두드러지면서 사회를 연구하는 과학에서 보편적 법칙 정립과 구체적 사실 기술이라는 그릇된 이분법도 없어졌을 것이다.

세기 유럽에서 성립한 근대 학문체계를 자명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페브르의 바람도 그리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당시 소위 ‘문명세계’였던 유럽의 각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과학문으로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이 독립하고 유럽 국가들의 과거를 다루는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역사학이 등장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소위 ‘원시세계’를 연구하는 인류학과, 한때 고도의 문명을 이뤘으나 정체해버린 동양을 연구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로 복잡하게 분화된 것이 곧 문명의 징표로 여겨졌고, 이런 구분이 서구중심주의적 학문체계의 근간을 이뤘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학이나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발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면, 또 과거연구와 현재연구를 분리시킨 학문제도가 기존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리한 기제였다면, 또한 사회라는 것을 시장·시민사회·국가로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근대 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라면, 이러한 구분법의 타당성을 근저에서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의 분과학문들이 하나씩 생겨나던 시대를 살았던 칼 맑스는, 자기는 오직 하나의 과학, 즉 역사과학만을 인정하며 이것은 인간사와 자연사, 두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칼 맑스의 주장이 근대 학문체계의 대세가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공상해본다. 그러면 물론 사학과라는 학과는 생길 리 없으며 대학교의 이름이 모두 무슨무슨 ‘역사대학교’가 되고 자연사와 인간사를 다루는 두 개의 큰 단과대학 안에 여러 분과학문들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또 나름대로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반면 학제적 공동연구를 한다면서도 각기 백화점 가게 하나씩 내놓듯이 따로 놀다가 결산만 같이 하는 오늘과 같은 폐해는 적어지고, 각 분과학문이 시공간 속의 현실을 다루는 역사과학의 일부일 뿐임을 자각하는 일은 쉬워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학제적 연구는 으레 당연한 것이자 어느 분과학문에나 내재화되지 않았을까.

브로델이 들었다는 페브르의 그 말을 동료 역사가 블로크도 들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페브르에게 헌사를 바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블로크가 ‘역사’라는 명칭을 변호한 것은 페브르를 의식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에 따르면 시간 속의 인간에 관한 과학은 오직 하나 존재하며, ‘역사’라는 그 명칭은 “다른 어느 것보다 함축성 있고 가장 덜 배타적이고, 몇 백년 이상에 걸친 노력의 감동적인 기억으로 충만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페브르의 ‘사회학’이든 블로크의 ‘역사’이든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탐구라면 그것이 하나의 분과학문이 된 오늘의 상황은 이상하지 않은가.

유재건/ 부산대·사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