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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 ‘공론의 場’임을 보여준 ‘NYR’
서평이 ‘공론의 場’임을 보여준 ‘NYR’
  • 한기욱 인제대
  • 승인 2003.0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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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뉴욕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을 만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내겐 서평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나의 독서범위는 전공인 19세기 미국소설의 텍스트와 비평, 그리고 당시 민주화열기에 고무돼 읽은 사회과학 서적과 주요 계간지 한두 종이 고작이었다. 온갖 종류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공과 ‘상관없는’(?) 책들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1990년대 초반 대학에 취직하면서 차츰 시야를 넓힐 필요를 느꼈지만 그런 요구를 서평이 충족시킬 수 있다는 건 깨닫지 못했다.

당대의 중요 텍스트에 대한 논의

서평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는 영미문학 학술지 ‘안과밖’ 편집일에 참여하면서였다. 영미문학 전공 연구자의 실제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영미문학 ‘공론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태어난 이 잡지에서 서평란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公論’이란 것이 책상물림들의 추상적인 이론이나 말 자랑과 같은 ‘空論’이 아니라 뜻깊은 토론이 되려면 무엇보다 당대의 중요한 텍스트들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서평은 쏟아져 나오는 책들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텍스트냐를 가려내고 그런 텍스트에 대한 ‘믿을 만한’ 독자의 첫 반응을 소개함으로써 그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서평의 수준이 곧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과밖'과 그후 국내의 한 계간지에서 편집일을 경험하면서 말로만 듣던 '뉴욕서평'을 실제로 찾아보려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세기 미국소설 전공자인 내게는 우리 당대 미국의 문학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뉴욕의 문인·지식인들을 중심으로 1963년에 창간된 격주간 '뉴욕서평'을 보니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인터넷 덕분에 '뉴욕서평'을 읽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www.nybooks.com'을 치고 들어가면 매호마다 예닐곱 편의 글들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e'자로 표시된 좀더 본격적인 평문들-가령, D. H. 로런스의 ‘여우’에 대한 도리스 레씽의 최근 비평(2002/12/5)-까지 다 읽으려면 인세본이나 '전자본'(1년치 구독료 62달러) 구독자로 가입해야 하는데,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평론들을 모두 볼 수 있기에 구독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www.nybooks.com’을 치고 들어가면 매호마다 예닐곱 편의 글들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e’자로 표시된 좀더 본격적인 평문들까지 다 읽으려면 인세본이나 ‘전자본’(1년치 62달러) 구독자로 가입해야 하는데, 창간호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평론들을 볼 수 있기에 구독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번호에는 존 업다이크가 오키프 등과 함께 미국 모더니즘 회화를 개척한 하틀리의 전시회 관람 소감을 쓴 글이 눈에 띈다. 일급의 작가가 일종의 미술평론을 쓴 것이 부러울 따름이다.

몇 호를 훑어보면 얼마 전 ‘통역자’를 출간한 재미교포 소설가 수키 킴의 북한방문기가 이채롭고, 때가 때인지라 테러와 이라크,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기사가 많다. 몇 개월 전 여기서 유럽사 전공의 토니 저트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서 이스라엘 군은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서 한동안 치열한 설전이 오가던 일이 있었는데, 이런 논쟁은 이곳이 공론의 장임을 보여준다. 최근의 논쟁은 ‘제국’의 저자 가운데 하나인 네그리와 그의 행적과 사상을 공격한 알렉산더 스틸 사이에서 벌어졌다.

당대 최고급 필진이 참가해

하지만 이 서평지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홈페이지 왼쪽 상단의 ‘아키브’를 클릭하고 거기서 창간호의 목차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 서평 필자들 가운데 로월, 매리 매카씨, 존 베리먼, 수전 손택, 노먼 메일러 같은 제1급의 소설가, 시인은 물론 어빙 하우, 앨프레드 케이진 같은 당대 최고급의 비평가들이 망라돼있다. 창간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서평지가 문학 중심의 문예서평지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I. F. 스토운, 랠프 네이더, 한나 아렌트, 갤브레이스 같은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경제학자 등 온갖 분야의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공론의 장에 참여함으로서 이 서평지는 어느새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문학예술은 물론 현대의 지성사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잡지가 됐다.

한기욱 / 인제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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