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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탈민족시대, 도전받는 민족문학론
[학술동향] 탈민족시대, 도전받는 민족문학론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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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절대 준거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의 절대 준거 ‘상상의 공동체론’
일반론이 다양성 대신할 수 있는가?

‘인문학 위기’에 대한 논의가 끊이질 않는다. 위기의 원인을 둘러싸고 말들이 무성하다. 시장논리의 확산 때문이라는 주장이 우세한 듯하지만, 시대에 뒤쳐진 대학의 학제나 기존의 이론과 방법론을 지탱하던 19세기 패러다임의 낙후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돼 왔던 인문학의 상식과 전제들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래로 한국문학의 이념과 실천을 실질적으로 견인해왔던 ‘민족문학론’ 역시 마찬가지다. 초민족/탈민족 이론의 위세를 빌어 민족문학론의 퇴장을 종용하는 ‘대세론’부터 ‘파시즘’과의 연루 혐의를 추궁하는 ‘원형 파시즘론’까지, 주류의 문학담론을 겨냥한 비판의 칼끝이 제법 매섭다. 제기되는 비판의 수위와 강도를 감안할 때, 지금의 논란이 ‘진영갈등’과 ‘세대간 인정투쟁’이 결합된 전면전의 양태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족문학론 비판: ‘대세론’에서 ‘원형파시즘론’까지

민족문학론 비판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에서 시도되고 있다. 우선 관찰되는 것이 조동일·임형택으로 대표되는 국문학계 주류의 민족문학론을 겨냥한 비판이다. 비판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황종연 동국대 교수(국어국문학과)를 위시한 40대 소장학자들로, 주류 민족문학론에서 발견되는 정서적 ‘반이론주의’와 ‘반서구주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국문학은 자명하게 주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한 어휘·개념·범주를 생산하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어떤 것”이라는 진술 안에 집약돼 있다. 그런데 국문학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고쿠분가쿠(國文學)를 통해 수입된 유럽의 실증주의 문헌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고 보면, 국문학을 전통학문의 연장으로 보면서 국문학 연구에 서양문학이론의 도입을 거부하는 조동일·임형택의 입장은, 명백한 史實 조차 도외시한 맹목적 ‘반서구주의/반이론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두 번째 비판은 ‘창작과 비평’이 대변하는 ‘진보적’ 민족문학론을 겨냥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논의가 대표적이다. 우선 그는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문학사의 역사적 과제와 합법칙성을 규명하려는 민족문학론이 “텍스트들의 동적 관계와 문학성의 변이를 문학사 기술의 중심에 두지 않음으로써, 문학사를 사회사의 하위범주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빚었다”고 비판한다. 어딘지 80년대 정과리 연세대 교수에 의해 수행된 바 있는 ‘해체주의적’ 비판을 상기시키지만, 그것을 민족문학론에 내장된 위계적 서열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씨의 비판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그는 민족문학론이 ‘민족적 위기상황의 극복’이라는 ‘목적론적 대서사’에 의해 인도되는 한,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몇 가지 도식과 이분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은 ‘근대문학=민족문학’이라는 제1원리와 거기서 파생되는 ‘리얼리즘/모더니즘’ 혹은 ‘민족문학/순수주의 문학’, ‘민족문학/자유주의 문학’이라는 이분법적 틀이다. 이씨는 이 같은 도식과 이분법이 “다양한 텍스트들을 단순한 몇 가지 범주 속에 분류해버린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근대문학=민족문학’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 그것의 결여형태로서 ‘모더니즘 문학’ ‘순수주의 문학’ ‘자유주의 문학’을 상정하는 억압적인 서열체계를 내장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세 번째 비판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비판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고 그만큼 논쟁적이다. 민족문학과 파시즘의 연루 가능성을 탐문하는 김철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논의가 흥미를 끈다. 김교수의 비판이 겨냥하고 있는 일차적 표적 역시 창비의 민족-민중문학론이다. 그는 민족-민중문학론의 민족관이 “민족을 영구불변의 실체나 지고의 가치로 규정하는 국수주의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민중에 대한 이해 역시 파시즘 문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낭만주의적/인민주의적 현실인식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실체로서의 민족(의 영원성, 단일성, 그리고 그것의 회복)과 민중(의 순결성, 무구성, 위대함)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민족-민중문학 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지탱하는 유일한 원천”인 까닭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민족-민중문학(론)의 논리가 “파시즘과 뒤섞이고 그것과의 진정한 차이가 모호하게 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파시즘’과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김교수의 해석방식이다.

‘원형파시즘론’ 설명과 분석 누락된 ‘아날로지’

김교수의 파시즘 이해는 주로 사회심리학적 관점에 기초해 있다. 파시즘을 특정한 역사적 체제로 간주하는 것보다 “인간 보편의 심리적인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파시즘의 외연과 적용범위를 그만큼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빌헬름 라이히와 에리히 프롬, 융의 논의를 종합, 파시즘의 특징을 ‘피’와 ‘땅’에 대한 신경증적 집착, ‘모성’의 신화화, ‘민족’의 순결성과 위대함에 대한 강조, ‘새로운’ 도덕과 윤리로 ‘새로운’ 근대를 건설한다는 ‘재생의 신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계기를 부정하는 ‘독특한 시간관’ 등으로 요약한 다음, 이러한 파시즘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서의 한국의 근대사와 그것의 문화적/문학적 구현물로서 김동리의 문학작품을 분석해 들어간다. 간과해선 안될 사실은 김교수가 문제삼는 것이 ‘본격적인’ 파시즘이 아니라, 파시즘의 등장을 가능케 한 역사적/사회적 연원으로서의 ‘원형 파시즘’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 ‘원형 파시즘’이 “민족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극도로 관념화·추상화되고, 강력한 욕망의 형태로 내면화되면서 나타난 것”이라 파악하는 한편, 이것의 사상적·문학적 구현태를 1930년대의 근대초극론과 김동리의 소설작품에서 발견한다.

그런데 김동리의 소설작품과 파시즘의 연관성을 드러내려는 김교수의 작업은 초기의 골드만이 ‘숨은 신’에서 보여준 변증법적 비평방법을 연상시킨다. 작품(‘황토기’)에서 단일한 의미구조(주인공의 가학-피학적 충동/강렬한 야수성)를 추출한 다음 이것을 동시대의 철학적/사상적 세계관(근대초극론)에 끼워넣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사회정치적 구조에 연결짓는 수법은, 라신의 비극작품을 쟝세니즘이란 철학적 세계관을 매개로 법복귀족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연결시키는 골드만의 방법과 여러모로 유사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회적 현실의 시계열적 변화가 세계관과 작품의 의미구조에 어떠한 변화를 동반하는지를 분석하는 골드만과 달리 김교수의 논의는 지나치게 일회적이고 정태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설명과 분석이 누락된 단순한 ‘상동성’의 유추(아날로지)에 머물고 만다.

유사한 문제점이 민족문학론과 파시즘의 연루가능성을 따지는 대목에서도 발견된다. 김교수는 민족문학론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형상적으로 유사한 것을 추출하고, 그것을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에 일대일로 대응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담론을 그것이 놓여있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체로서의 담론을 구성하는 관계성을 사상한채 각각의 부분들을 고립되고 고정된 개체들로 추상화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문화론적 민족이해에 대한 과도한 의존

민족문학론에 대한 각각의 비판들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1980년대 서구에서 등장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들, 특히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론’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앤더슨의 ‘상상적 공동체론’에 대해 “근대성 비판이라는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따라 역사적 사례들을 선택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거나 “인용된 사례들조차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비판들이 역사학계와 사회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듯하다.

민족/민족주의 논쟁의 복잡한 지형을 감안한다면 “역사적 맥락이나 민족/민족주의의 복합적 성격을 무시한채 문화론적 민족이해를 일반화하는 것은 또 다른 서구추종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박명규 서울대 교수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민족의 ‘역사적 구성성’과 ‘문화적 상상성’을 승인한다는 것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보다 객관적이고 탄력적이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것이 민족/민족주의의 역사적 무게와 다양한 함의를 ‘일반론’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닌 까닭이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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