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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획일적인 해법이란 없다
교육에 획일적인 해법이란 없다
  • 송재룡
  • 승인 2003.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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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학개혁--영국편? 다양성의 조화

로라스펜스양 사건과 이모양 사건

2000년 옥스프드대는 영국 대학입시에서 10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지방 공립학교 출신 로라 스펜슨양(18세)을 애매한 이유를 들어 면접시험에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이 지방 출신 수재는 미국 하버드대에 다시 응시해 1억3천만원의 장학금까지 약속받으며 당당히 합격했다.

이러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자 영국 노동당 각료들은 “재능보다는 타고난 특권을 더 중시하는 옛날식 체제를 종식시키고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등 전통적인 명문대학을 연일 공격하고 나섰으며, 보수당은 “노동당 정부가 위선적이고 계급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옥스퍼드대학을 항변했다.

2년 뒤인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불합리한 대학입시 탈락을 두고 논란이 인 바 있다. 2003년 서울대 입시에서 이모양(19세)이 수능점수를 소수점 반올림하는 계산방법 때문에 더 높은 점수를 받고도 탈락했다가 법원 소송을 통해 결국 서울대 합격증을 받은 것이다.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논란은 영국의 대학이나 한국의 대학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자율성이 철저하게 보장된 영국의 대학과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속에 자율성이 제한된 우리의 대학은 풀어야할 과제와 그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계의 대학개혁 시리즈 첫 번째 영국 편에서는 영국 대학들의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들이 고민하는 개혁의 지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우리 대학에 주는시사점을 찾아 보고자 한다.


영국 대학교육의 특성인
다양성, 독립성, 자율성이야 말로 제도적
또는 프로그램적 해법의
추구에 절망해 버린 한국적 교육 현실에
새로운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영국 대학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 또는 비획일성이다. 마치 영국의 법 제도와 마찬가지로 통일된 기준이나 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일한 중앙집권식 통제 기구와 같은 획일화된 조직이나 질서도 없다.

예를 들어 교육을 전담하는 정부 부처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 등 세 곳이 서로 다르다. 당연히 서로 제도 및 정책의 기준과 룰, 방법론상에 차이가 있게 된다. 각 부처는 대학기관에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지만 구체적인 통제나 관리는 극히 최소화돼 있다. 곧, 교과내용, 수업방식과 길이, 학생선발에 관한 조건, 시험 및 평가 방식, 학위수여 등에 있어 개개의 대학들은 우리가 보기에 이해 안 될 정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는다.

다양성은 학제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미국이나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나라가 6-3-3-4제와 같은 단일 학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에 비해 영국의 경우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또는 거주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단계를 거쳐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대학의 수업연한도 마찬가지인데 3년 9학기제와 4년 8학기제가 공존하고 있다.

또한 다양성은 교육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조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곧 다원주의 교육 이념과 종교 교육이 공존하고 있으며 엘리트 교육의 전통과 공교육 기반 확장을 위한 종합학교 제도가 공존한다.

다원주의와 종교교육의 공존

이와 같은 영국 대학의 다양성의 전통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전통(습속)과 떼놓고 이해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유럽의 대학들이 그러하듯이, 영국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적 배경을 갖는다. 오래된 각종 학교들은 거의 모두 교회가 설립 운영하던 학교들이었다. 개개 교회들은 마치 수도원과 같이 자체의 독자적인 학교를 가지고 국가와 세속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권한을 유지하려고 했으며, 이를 반영하는 조직, 체계, 룰 등이 자리를 잡았다. 

잉글랜드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합쳐서 옥스브리지),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중세 대학들의 기원은 이의 전형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와 경향은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되면서 지금까지 영국적 대학(교육)의 위상과 정체성이 뿌리내리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는 관련 정부 부처들이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면서도 불간섭한다는 것을 하나의 불문율로 고수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독립성과 자율성은 개개 대학의 제도나 체계, 학과의 운영에서도 작용한다. 한 예로 영국인들도 옥스브리지를 명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명문’이라는 의미는 우리식의 명문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명문이면 ‘A’부터 ‘Z’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명문이다. 곧 획일적 명문인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명문의 의미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담보한 장소(옥스포드라는 곳과 캠브리지라는 곳)라는 의미가 우선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옥스브리지 각각 30~40여개의 컬리지를 채우고 있는 모든 학과들이 ‘자동적으로’ 영국 最高의 학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영국인치고 이를 부정하는 바보는 없다.

실제로 영국의 대부분의 대학들은 차별화가 잘 정착돼 있어 대학 캠퍼스가 런던과 같은 큰 대도시에 있든 지방 소도시에 있든 전공 영역에 따라 유명한 교수가 포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년 이뤄지는 영국 대학들의 평가는 학교 전체 수준이 아닌 개별 학과별로 이뤄진 것의 종합이다. 때문에 이들을 우리식으로 서울대와 같다느니 연·고대와 같다느니 하는 식의 획일적 순위 매김은 유치한 것이다. 

다양성은 대학(교)의 조직 체계의 기능과 위상, 그리고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옥스브리지 경우 각 컬리지들은 우리의 개념처럼 ‘대학교’의 하위체계 개념이 아니다. 초기 기원이 그러하듯이, 마치 개개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독립된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인정받으며 숙식, 기도와 예배, 학업을 수행하던 것과 같이 이들 개개의 컬리지들은 완전히 분권적 위상과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각 컬리지 별로 동일 학과가 겹쳐있어도 별개의 교수진, 학과 운영의 비통일성, 독립된 재정, 독자적 입학사정 등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000년 영국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로라 스펜스양 사건은 당시 많은 비난의 화살에도 불구하고 맥덜린 컬리지 의학과의 독립적 및 자율적 권한 행사의 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소한 차이는 있지만 이 점은 19세기 초에 설립된 런던 대학이나 더럼대학에도 해당된다. 

다양성은 다른 대학들의 조직 체계에도 나타난다. 곧 영국에서는 종합대학을 구성하는 단과 대학의 크기(주로 학생 및 교수 숫자)에 따라 하위조직 체계의 명칭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각 단과 대학 영역의 크기에 불문하고 모든 종합대학이 획일적으로 동일한 ‘OO대학’ 명칭을 부여해 획일적으로 명분상의 보직(학장)을 부여하지 않는다. 필자가 공부한 브리스톨대의 경우에도 각 학문분야의 크기에 따라 컬리지, 패컬티, 스쿨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해 하위조직 체계를 구성하고, 그 위상에 적합한 보직을 합리적으로 부여한다. 

유명한 교수가 대학수준 결정

마지막으로 영국 대학교육의 다양성은 도제제도와 유사한 개인교습식 강의에서 보여 진다. 이는 교수의 일방적 강의(강연?)로 끝나 버리는 우리의 집합식 강의와는 다르게, 지도교수와 소수의 학생으로 구성돼 공부할 주제를 가지고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강의 계획에 따라 교수가 미리 주제를 주면 학생이 미리 준비를 해 토론을 한다. 때문에 준비가 부실하면 강의에 참여하더라도 적극적인 토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학습 성취능력과 잠재력이 지도교수에 의해 면밀하게 파악된다.

따라서 이미 학부 때부터 전공 공부를 대충 대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석·박사 과정은 미국이나 우리식의 코스웍 없이 오직 지도교수와의 학생 개인 간의 튜토리얼을 통해 이뤄진다. 교수들의 지도력 수준이 높고, 그 권한과 평가는 절대적이다.

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두 개의 잣대를 갖고 문제를 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겉으로는 백년지대계식의 신중론과 자율성 보장에 대한 견해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만, 이른바 한국적 현실에 관한 구체적 사안이나 이해관계와 관련해서는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 해법에 즐겨 의존한다. 때문에 제도 또는 정책으로서의 영국 대학 교육은 우리에게 의문투성이로 비춰지기 십상이고, 따라서 비관적 견해를 가지기 쉽다.

하지만 거꾸로 바로 이 부분, 곧 영국 대학교육의 특성인 다양성, 독립성, 자율성이야 말로 제도적 또는 프로그램적 해법의 추구에 절망해 버린 한국적 교육 현실에 새로운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송재룡 / 서울사이버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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