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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핵풍’ 해법 찾기 목소리 분출
한반도 ‘핵풍’ 해법 찾기 목소리 분출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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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북핵과 한미관계 다룬 두 개의 토론회

여중생 추모 촛불 시위와 젊은 정권으로의 변화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끌어낸 결과물일까. 북한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뭇 달라졌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의 말대로 “80년대 미대사관 방화사건 이후 다시 반미감정이 조성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일까. 이른바 좌파 운동권이 아닌 청소년이 광화문으로 뛰어나오는 시대, 전경과 대치하던 집회가 이제는 축제가 되는 시대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일과 10일에 나란히 열린 북핵 문제와 반미담론에 대한 토론회는 의미규정을 시도하는 학계의 대응을 일면 보여주는 듯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 뜨거워

“토론문을 1백20부 복사했는데, 다 나눠드리고 없네요.” 지난 10일 프레스센터 11층에서 열린 토론회를 찾아갔을 때 간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와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 이하 민언련)이 주최한 토론회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청중들이 들어 차 현안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는 ‘우리사회의 반미담론과 언론’. 이보다 사흘 전인 7일에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학술단체협의회(회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이하 학단협)가 공동으로 ‘북핵, 그 평화적 해법은?’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교협이 주최한 토론회가 시민단체와 함께 한 대중적인 성격을 지녔다면, 학단협이 주최한 토론회는 북핵 문제의 해법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우선 학단협에서 주최한 토론회의 내용을 살펴보자. 박선원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교수는 ‘북핵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중재자가 아닌 주도자로서의 외교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요구안을 제시할 뿐 양보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라며 “북한이 스스로 대미순응을 선택할 경우 한국은 기존의 대북정책을 유지하면서 발언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은 체제안전담보와 핵폐기선언을 동시에 맞교환하도록 중재할 수 있지만 제3자가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의 중재이므로 북한이 먼저 움직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북한이 최소한 폐연료봉과 재처리시절에 대한 감시장치 재가동과 사찰요원의 접근을 허용해야 북한과 미국의 협상개시가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
이에 대해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는 “너무 실무적인 접근이 아니냐”라며 북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북미제네바 합의 미이행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남한, 러시아, 중국, 일본이 함께 다자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보장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남한을 북핵문제 타계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데, 동등한 입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북한이 인지하지 못할 경우, 군사적·경제적 압박을 혼용할 수 있다”라는 강한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편 민교협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한·미 관계 재조명’을 통해 그간의 한미 관계를 훑었다. 고 교수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과제로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는 한국과 주변국가들의 설득과 중재,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합리적 선택’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즉 미국이 ‘선 핵개발 포기 후 대화’ 입장을 ‘대화를 통한 핵개발 포기’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북한에 핵포기와 관련한 명분을 주면서 핵개발 포기와 관련한 전향적 조치를 들고나올 때, 북한의 ‘요구사항’과 미국의 ‘우려사항’ 사이에 일괄타결이 가능하다는 전망.

의식 공유 위한 일차적 합의단계

북핵과 관련한 한반도 전쟁 위기설, 그리고 북한과 미국과의 외교마찰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1994년 미국의 북폭계획과 1998년 북한의 대포동 실험발사와 금장리 핵의혹 시설문제로 긴장감이 고조됐었다. 그러나 강정구 교수는 “과거와는 달리 민중의 전쟁 통제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평화적 해결은 물론, 한미공조에서 남북공조로의 전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쳤다.

이런 관점은 강 교수만의 의견은 아닌 듯 했다. 그러나 앞선 토론회들은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의 말처럼 “의식을 공유하려는 시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아직은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단체 내부에서 일차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차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학계가 서로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남은 길이 더 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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