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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서평] 아렌트 르네상스? 『인간의 조건』·『폭력의 세기』,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테마서평] 아렌트 르네상스? 『인간의 조건』·『폭력의 세기』,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 홍원표 외국어대
  • 승인 2001.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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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 의미 일깨우는 참신성의 파토스


홍원표 / 외국어대 강사·정치학

아렌트! 황혼에 비상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인가? 냉전의 성벽이 무너지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성벽을 세우겠다고 외쳐댄다. 과거로 향하는 길은 성문 저쪽으로 희미하게 사라지고, 성문 앞으로 나있는 21세기의 길은 겨우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성벽이 무너졌으니 과거로 향하는 길도 미래로 향한 길도 제대로 보기에는 힘들다.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하얗게 칠한 시신을 두고 새로운 생명이라고 아우성이지만, 아렌트는 ‘아닌데’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시대는 과연 20세기의 질곡을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가? 아직은 아니다. 삶이었기에 귀중하지만 일부는 포기해야만 하는데, 참신성의 파토스는 완전히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외 학계의 아렌트 연구 붐은 낡은 정치의 유산과 신자유주의의 조류에 대한 저항을 함의하고 있다. 근대성에 도전한 아렌트의 재조명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녀의 지적 궤적에 대한 관심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 투쟁이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던 냉전시대 아렌트의 진정한 목소리는 허공에 울려퍼졌으나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가 ‘정치란 경제라고’ 요란하게 떠들고 있으나 우리의 귀에는 아렌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지 않는가? 아렌트의 정치철학에는 참신성의 파토스가 깊이 스며있다. 철학적 사유를 ‘죽음’과 연계시키는 전통과 결별한 아렌트는 정치행위와 정신적 행위를 ‘탄생’(삶)이란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였다. 탄생·시작·참신성·시도 등은 아렌트 정치철학의 독특성을 규정하는 중명사이다. 인간실존의 처절한 절멸을 목도한 아렌트에게 참신성의 파토스는 인간적 위대성을 실현케 하는 원동력이다. 언행을 통해 새로움을 모색하는 인간에게 정치영역은 권력과 자유를 확보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反신자유주의 함축한 아렌트 정치철학

‘인간의 조건’(한길사 刊)은 ‘정치적 탄생’을 봉쇄하여 인간적 삶을 부정했던 전체적 지배의 처절함을 폭로한 정신적 고뇌의 귀중한 결실이다. 여기에서 그녀는 인간실존의 조건과 그 고유한 활동양식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은 생명의 조건에 부합하는 기초적 활동이며, 작업은 인공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활동이고, 마지막으로 언행과 시도를 함축한 행위는 다원성을 심화시켜며, 결국 인간답게 사는 세계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활동이다. 물론 이 정치행위는 수동적 의미의 정치행태가 아닌 능동적이고 자발적 활동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양식과 공간의 관계를 역사적·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있다. 공공영역·사회영역·사적 영역은 아렌트의 정치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된다. 그녀는 이 범주들을 통해 현대세계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정치적인 것’을 부활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특히, 아렌트의 공공영역론은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단체들(NGO/INGO)의 사상적·실천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데도 원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서구 학계에서는 아렌트의 정치적·지적 삶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아렌트 르네상스는 그의 독창성에 대한 재평가라고 할 수 있다.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진지한 연구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김비환 교수의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20세기와 한나 아렌트’(한길사 刊)는 국내 학계의 연구 활성화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김교수는 정치행위 개념과 세계의 인간적 의미를 고찰하고, 아렌트 정치행위론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비판에 나타난 결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녀의 독특한 정치관과 현대적 함의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교수는 이 책을 통해 축복과 저주의 관점에서 아렌트의 연구궤적을 재구성하고 있는데, ‘인간의 조건’에 나타난 아렌트의 정치관은 그의 표현대로 ‘축복의 정치’를 집약하고 있다. 아울러 김교수는 현대사회의 시대적·역사적 조건과 지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잃어버린 공존 양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치 자체가 이미 인간성의 실현이며, 또한 인간성의 완전한 실현은 특별한 공존양식으로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정치의 과잉’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진정한 정치, 즉 축복의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에, 20세기의 정치적 질곡에 관한 아렌트의 주장은 다음 몇 권의 저서에 잘 드러나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혁명론’·‘폭력의 세기’는 주로 현대인들의 처절한 정치적 질곡이 왜 현대 세계에서 발생했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아렌트 정치철학의 정치적 배경뿐만 아니라 전체주의의 ‘근본악’을 이해하는데 기여하며, ‘혁명론’은 정치행위론의 관점에서 근대 혁명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해부하고, 진정한 정치의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정치의 경제화와 정치의 고유성 복원이란 두 가지 문제가 일관되게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주의가 정치적 탄생을 원천 봉쇄한 저주의 정치라면, 자유의 기초를 확립하는 창조적 행위는 축복의 정치를 가능케 한다.

‘폭력의 세기’(원제「폭력론」·이후 刊)는 정치행위론의 관점에서 60-70년대 정치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그녀는 20세기의 전쟁과 혁명을 진보의 역설로 규정하고, 기존의 이해와 다르게 권력·폭력·테러·강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폭력의 대응 개념을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으로 규정한 아렌트에 따르면,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만, 권력은 제휴하여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 조응된다. 그러기에 권력은 자유로운 공공영역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곳에서는 권력이 아닌 폭력과 테러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욕망의 정치에서 정당화되는 폭력은 인간적 위대성을 발현케 하는 권력의 소멸을 초래하며, 테러는 정치적 탄생을 원천적으로 불가능케 하다. 여기에서 아렌트는 ‘새로이 시작하는’ 능력인 정치행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아렌트는 정치행위론 및 ‘역사현상학적’ 분석을 통해 자발성에 기초한 공공영역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쇠퇴현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정치영역의 경제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조류 속에서 정치의 고유성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과거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이해와 탈근대적 안목을 반영하고 있다. 아렌트 정치철학의 역설은 정신의 삶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에서 완성된다. 소크라테스가 사유영역과 정치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듯이, 아렌트 역시 정치행위와 정신적 삶이라는 두 영역을 편안하게 넘나들면서 관찰자와 참여자간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이해의 필요성은 “정치영역에서 현상과 존재가 일치한다”는 아렌트의 주장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정신의 삶’에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아렌트는 정치적 삶과 정신의 삶 사이의 조응성을 강조하고, 사유·의지·판단 행위의 특성을 규명함으로써 내면적 공공영역의 기본 원리를 자율성·정체성·도덕성으로 규정한다. 그녀의 ‘정신의 신화’는 내면적·외재적 공공영역의 동일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현상과 존재의 일치는 ‘침묵의 소리’, 그리고 ‘누스’와 ‘로고스’의 역설적 공존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그녀는 정치적 삶과 정신적 삶의 상호성을 체계적으로 조명함으로써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창적 정치철학을 정립하였다.

“아렌트 르네상스는 유행 아닌 시대적 요청”

아렌트는 정신의 삶을 ‘시작’과 연계시키듯이 정치행위도 ‘시작’과 연계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정상/비정상의 구도에서 정신의 삶과 정치적 삶의 관계도 심도 있게 밝히고 있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유하지 않는 삶이 정당화되고, ‘일차원적’ 논리와 결정론적 판단만이 강조되며, 의지가 욕구와 동일시되는 현대의 조건 속에서 인간적 다원성과 잠재력은 발현될 수 없다. 아렌트적 의미의 권력은 위축되고, 결국은 정치의 쇠퇴현상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정치행위론과 정신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아렌트의 우려는 현재의 한국정치에도 그대로 노정되고 있다. 낡은 정치의 존속, 개인주의의 심화, 국민적 정체성의 약화, 정치의 경제화 등은 정치적·정신적 혼돈을 드러내고 있다. 근대성의 한국적 변용이 새로운 변화를 제약하고 있기에, 한국정치의 질적 도약을 위해 참신성의 파토스가 작동돼야 한다. 대립 지향적 정치가 우리의 귀중한 삶을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경쟁과 조화의 긴장적 균형을 구현하는 정치공동체는 우리의 미래이다. 그녀의 정치행위론 또는 공공영역론은 한국정치의 이해에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리라 기대된다.

그동안 아렌트에 관한 연구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심도 있는 연구는 미진한 편이었다. 물론 연구자들의 개별적인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공동연구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아렌트 연구의 활성화는 단순한 학문적 유행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렌트의 저서 약 10권이 올해 번역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독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렌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사이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항상 새롭게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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